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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Aug 02. 2022

헤어질 결심, 리뷰 쓸 결심

한줄평 : 스마트 워치를 찬 중국 여인의 지고지순 사랑 이야기



<사진 출처 - CJ ENM>


한줄평 : 스마트 워치를 찬 중국 여인의 지고지순 사랑 이야기

탕웨이의 인어공주급 애티튜드


영화 ‘헤어질 결심’은 2022년 8월 2일 기준 167만명의 관객과 만났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심정이 어떨까? 허무할 것 같다.

“'N차 관람러들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이렇게 좀 전해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나하고 같은 종족이라는 거, 진작에 알았어요. N차 관람한다고 했을 때. 한 번은 싫다고.’”(박찬욱)


관객이 천만은 되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이다. 최소한으로 잡았던 손익분기점 110만명은 넘었으니까. 공들인 제작진 입장에서는 참담한 성적일 것 같다. 종합예술인 영화는 많은 이의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성에 비하면, 관객인 나까지도 안타까워 눈물 나는 관객 수다. 왜 그럴까? 박감독과 같은 동족인 N차 관람러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영화관에서 사라졌을 것 같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이 무색할만큼. 


미장센은 뛰어나나 시대에 뒤처지는 이야기였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무엇이 그리 안타까웠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AI와 사랑을 나누는 시대라는데, 영화 속 사랑이 시대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있단 느낌이었다. 최신 전자 기기인 줄 알고 선물을 열어보았는데, 비단 보자기로 싼, 잘만들어진 우리나라 전통 기념품인 것 같은 느낌?


내가 뭐라고, 뭐 이런 걸 쓰나 싶지만.... 이왕 감상글을 쓸 결심을 했으니, 대놓고 씁니다. ㅜㅠ 

영화의 형식, 미학은 좋았으나, 내용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서래 같은 여성이 되지 못하기에.

신선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시대와 맞지 않는 사랑 이야기여서, 최신 유머와 맞지 않는 블랙유머라서. 


어느 작가의 글에서처럼, ‘예쁘고 젊은 여성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라는 중년 남성(박찬욱 감독)’의 욕망을 이렇게 정성스레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대체 사랑이 뭐야? 뭔데 사람을 죽게도 만드는 거야?’라고 아직도 이런 질문이 필요한 시대란 말이야? 싶어 헷갈렸다. 결론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구구절절 말하다니!’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정리하면, 두 가지다. 

첫째는 사랑은 욕망의 투사체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상대를 다르게 보았다. 첫 번째 심문에서 그들이 거울과 카메라에 비춰 네 명이 보이는 듯한 장면은 좋았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세계에서 투사된 모습을 보이려면 네 명으로 보이게 한 감독의 의도가 맞았다.


해준(배우 박해일)은 자신의 의심이 관심으로 변하면서, 그녀를 피의자에서 피해자로 바꿔놓았다. 서래(배우 탕웨이)가 소파에서 담배를 피우며 고개를 숙인 채 웃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해준이 차 안에서 ‘(서래가) 우는구나.’ 읊조릴 때, 서래는 소름 돋게 미소 지었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상대를 보았다. 마치 영화 속 서래가 입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어느 때는 초록색으로, 어느 때는 파랑색으로 보이는 원피스처럼.


서래(배우 탕웨이)는 자신과 같은 족속(바다에서 사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그가 범인을 추격하는 현장까지 따라간다. 이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이상한 호흡 기계까지 끼고 있어야 하는 해준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일과 인생을 구분하지 못한다. ‘형사’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빼면 나머지는 몽롱한 잠에 빠진 상태다. 그의 잠복근무가 찐생활이고, 이포의 삶이 가수면 상태다. 


중년의 위기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기’, ‘생의 충동’을 잊은 채 사는 사람이다. 정안(배우 이정현)이 아무리 섹스가 재미없다고 돌려 말해도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이다. 지금껏 살인사건, 죽음과 본인이 가장 보기 싫어하는 피를 억지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무감각, 무감동, 무덤덤이 형사로서 적응하며 살아갈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피해자 눈동자에 자신이 비춰지는 것이었다. 영화 중반에 그는 식사 앞에 서서 피해자(배우 박정민)의 눈동자를 떠올린다. 옛 연인이 없었다면 자신의 삶은 공허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상기하며. 피해자와 형사는 동족이다. 그가 가장 생생하게 보일 때는 서래와 절에 있을 때다. 서래와 있을 때 그의 눈빛은 죽은 물고기 눈동자와 대비된다.



두 번째는 사랑에 대한 의미다.

도대체 사랑이 뭔데?에 대한 답을 여러 인물을 통해 비교, 대비해 보여준다.

처음에 해준(배우 박해일)과 서래(배우 탕웨이)는 깔끔한 동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녀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동안 견뎠을 갖은 핍박과 죽을 고비, 어머니에게 약을 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그녀의 사랑에 대한 신념까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당신이 원하면 해주는 게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많은 강박 있는 남자였다. 사랑보다 품위가 더 중요한 것처럼, 자신의 직업적인 양심을 위해 한평생 바친 것처럼. 그도 그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의 담뱃재가 떨어질 듯 말 듯 할 때 재떨이를 갖다 대준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배우 박용우)은 사랑한다고 아주 가볍게 말하지만, 그녀의 담배 연기에는 쉽게 짜증 낸다. (여담인데 배우 박용우는 이런 양아치 같은 역할이 꽤 잘어울린다. 잊을만 하면 나오는 그의 가벼움과 잔혹한 캐릭터.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이 떠오름) 하지만 그는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상대의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보았다. 


해준은 서래를 존중함으로써 그녀는 자기를 사랑할 수 있었고, 박찬욱 감독의 표현대로 서래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꼿꼿해진다. 서래는 해준의 품위를 지켜주면서 그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도록 했다.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도록 기꺼이 자신이 미결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다. 그가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 영원히 미결로 남기를 선택하는 것은, 고귀한 사랑처럼 보이나, 현실에서는 ‘바보같이 왜 그랬대.’라고 할만한 시대라는 게 통탄할 만하다.


정안(배우 이정현)이 석류와 자라를 마치 b급 영화 속 대사처럼 들먹일 때 해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안이 해준에게 정말 하고픈 말은 뭐였을까? 남편이 중년의 위기와 직업적 혼란 속에 고군분투 헤매는 걸 알았음에도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이 주임을 선택했을까? 물론 그녀가 노력하는 장면도 나오긴 한다. 해준이 쫓던 피의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그녀는 자신에게 오라고 위로의 전화를 했다. 정안은 해준의 불면증만 개선되면 부부관계가 좋아질 거라고 여겼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직관이 강한 정안(배우 이정현)은 안개 낀 이포, 곰팡이가 낀 그들의 집처럼 그들의 부부관계도 무얼 어떻게 하든 해결되지 않을 걸 알았을 것이다. 


해준이 불면증에 헤매는 사람이라면, 서래는 불면증인 그를 재우는 사람이다. 영화 속 ‘눈’이 유독 강조되는 데 그것은 자신의 삶에서 공허를 견디기 어려운 박해일의 눈과 어시장에서 죽은 물고기의 눈과 대비를 이룬다. 그 눈을 또 굳이 만져보는 부인 정안, 그의 눈빛이 더 이상 텅 비어 있지 않고 생생하기를 바라는 서래는 그녀 자신의 삶부터 생생하게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을 선택하며 해준의 음성을 무한 반복해 듣는 게 아니라.



해준이 중년의 공허함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 있다면, 서래는 큰 그림 안에서 해준이 어디로 가는지를 미리 파악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서래가 해준보다 자기 삶을 변화시킬 더 큰 힘이 있다고 봤다. 중국에서 온 그녀의 생명력은 해준보다 더 세다. 


그럼에도 자신을 살리려는 노력보다는 해준의 품위를 지켜주려는 것이 그녀가 살아온 방식이라는 것, 결국 그런 서래를 사랑한 게 해준이었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 장면 파도와 소용돌이까지도 미학이 되는 영화였다. 바다 속 소용돌이는 cg였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마다 자연도 함께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의 보물,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부디 이번 영화 흥행으로 힘빠지지 않으면 좋겠다. 

병주고 약주는 것 같지만 ㅠㅠ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창작자들의 놀이터 : 그라폴리오 (naver.com)

김현정 작가의 작품, 위의 홈페이지가 출처입니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이 그림이 떠올랐어요.

서래가 한복을 입고 죽었으면 시대상이 비슷했을 것 같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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