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의 여성을 위로하는 시간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 삼대의 여성을 위로하는 시간
안녕하세요!
상담심리전문가 김세정입니다.
저는 지난 11월 3일 공주 올드타운페스티벌 제민천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을 보고 왔어요. 10월 25일에 개봉했는데요. 섭식장애(거식증, 폭식증)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감독 김보람
출연 박채영, 박상옥
개봉2023.10.25.
한줄평 : 세 사람을 위한 식탁, 삼대에 걸친 아픔을 위로하는 시간
영화는 야심(野心)이라는 식당에서 요리하는 채영씨를 첫 장면에 보여줍니다.
평범한 그녀의 다음 모습은 심리상담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녀는 왜 심리상담을 받을까? 궁금해집니다. 영화 속 상담사는 물어봐요.
"어떤 게 두려우세요?"
그녀는 뭐가 두려웠을까요? 영화는 그 두려움이 시작된 2007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2007년 5월 거식증 일기
백병원 입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일기장에 쓰여진 그 질문에 채영씨 엄마 박상옥 여사는 말합니다.
처음에는 딸 채영이 자신의 항복을 바란 것 같다고요. 엄마의 실패를 인정하라고요.
"내가 무릎을 꿇으면 너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채영씨가 말합니다.
엄마 마음에 들게 하려면 할수록 더 잘 안된다는 걸 알았고, 결핍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딸의 대사
"당신(엄마)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한데
근데 엄마가 인정한다고 내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
나도 길을 잃었지. 그래서......"
모녀의 대화는 익은 고구마를 젓가락으로 찔러보듯 가슴에 푹푹 구멍을 남깁니다.
엄마가 (잘못이나 책임을) 인정한다고 자신이 더 나아지지 않음을 깨닫고 허무해집니다.
상대에게 복수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거나 삶이 변할 것 같지만 진짜 삶은 드라마 같지 않거든요.
가족이 원망스러워 내 몸에 생채기를 내면 상대도 마음 아파하겠지만, 연결된 나도 함께 아픔을 공유합니다.
채영씨는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씩씩하게 2019년 9월 호주 브리즈번으로 떠납니다.
거기서 혼밥을 하기 위해 자신만을 위한 요리를 하고 다른 사람의 즐거운 외식을 위해 기꺼이 노동합니다. 한국에서 있을 때와 어떻게 달라진 걸까요?
먼저 그녀들은 어떻게 거식증이 생겼는지 이유를 찾습니다.
엄마의 대사
너랑 나랑은 영원한 평행선일까?
어머니의 질문에 영화는 서로의 궤적을 따라갑니다.
박상옥 여사는 채영이가 여덟 살 되기까지 채영이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팍팍한 현실에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에 하루하루 버티기 버거운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과외(?)로 생활비를 버느라 어린 채영이는 지인의 집에 맡겨졌고, 분명 혼자는 아니었지만 혼자인 기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에서 제일 안타까웠던 건 그림일기 속 채영이가 혼자 소파나 방 안에 있으면 지인의 가족들이 각자 잠자리로 가면서 “불 끈다!”라는 말이었어요.
어린 채영은 어두움, 혼자 있는 게 무서웠을 텐데요. 물론 다른 집 아이를 돌봐준 가족의 마음도 이해하지만요.
채영은 혼자 남겨진 공간과 시간 속에 어두운 방 안에 갇혀있고 누군가 그 방에 들어오길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 함께 있고 불을 켜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거예요.
채영씨가 말하는 이유는 엄마의 심리적인 부재였고, 어머니도 내가 정서적인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채영의 어머니는 이대로 살다가는 안되겠다는 자각과 결심으로 무주군 대안학교 푸른꿈고등학교의 기숙사 사감으로 재직하기로 합니다. 월 50만원의 급여와 숙식 제공으로 기숙사에 채영과 함께 안착합니다.
어머니는 청소년들과의 관계 속에서 고단했던 지난 삶을 위로 받고 외로움을 달랩니다. 헌신, 봉사하면서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제 2의 노동운동이 되었어요.
하지만 기숙사 사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몇 년의 시간 동안 채영이는 알게 모르게 마음이 헛헛해지고 있었습니다.
딸의 대사
"엄마는 내 엄마만 될 수 없어, 어느 순간 엄마! 라고 부르면 돌아보지 않고 사감! 이라고 불러야 나를 봤어요."
"전혀 못 느꼈어요. 그냥 보이는 게 살밖에 없는 거예요. 여기도 빠졌으면 좋겠고
<162cm, 32kg 더 마르고 싶어요> 영화 속 다큐에서.
방송에 나왔던 어린 채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아픔이 몸으로 드러나자 어머니는 당황합니다.
엄마의 대사
모든 게 저한테는 갑작스럽게
다 벌어져 가지고 그 때까지만 해도
거식증이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몰랐고...
그랬던 채영은 어른이 되어 주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합니다.
딸의 대사
"나를 유일하게 통제, 내 삶을 휘어잡는 느낌이 들었어.
사람들의 반응도 내 삶의 주도권은 내가 잡으니까."
엄마의 대사
(거식증 원인에 대해)
각본을 수백 가지 써봤는데,
지금 네가 말한 각본은 참 뜻밖이네.
어머니는 채영과 대화하고 그동안 써왔던 수많은 각본을 허탈하게 지웁니다.
그러면서 친정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지난 40년 동안 지켜봤던 친정어머니의 구토에 대하여.
엄마의 대사
"어머니 삶 속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게 그거(먹고 토하는 증상)였던 것 같아요.
박상옥님은 친정어머니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어머니를 이해하고,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녀가 같이 외할머니를 위한 제사 음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고, 생선, 나물, 반찬들을 하나씩 먹는 장면의 여운이 길게 갑니다.
삼대에 걸친 여성들의 무의식적인 대물림(제가 예상하기로는 외로움)에 대해 아프더라도 직면하고 깊은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과정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채영씨는 혼자 사는 공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 할머니께서 쪄주신 고구마를 떠올립니다.
그걸 함께 먹었던 사람들이 종종 "어쩜 그렇게 예쁘게 쪄왔냐?" 하던데 그 때는 그게 별 게 아닌 줄 알았다고.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고구마를 찌면서 떠올립니다.
고구마를 씻고 다듬어
속을 뜨끈히 익히려면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그건 손녀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위의 "..." 속 대사 출처 :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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