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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서재 Dec 28. 2023

부디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애도 시 보냅니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부디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애도 시 보냅니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김소연 시집 '촉진하는 밤'에서

문학과지성사, 2023, p. 56~58



나는 나대로 상상한다

그 장면은 어떤 장소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장례의 절차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보지만

유언에 따라 형제의 의견에 따라

이것 역시 경우가 다를 것이다



나는 나대로 회상을 한다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으면

추억조차 시들어 생명이 다해버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녀도 그녀대로 생각할 것이다

변변한 영정 사진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는

하루가 있는가 하면

마지막 순간에

딸에게 건넬 한마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다

말을 고르고, 버리고, 다시 말을 고를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에 하는 말은 부디

미리 준비해둔 그 말이었으면 좋겠다

무심결에 튀어나오는 누추한

진실 같은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처음으로

그동안 궁금해왔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 이런 느낌이구나**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엄마! 엄마!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끝으로

잡고 있는 손을 놓을 것이다



그녀도 그녀대로 그려볼 것이다

소풍을 가는 가족이 있고 피크닉 매트 위에 둘러앉아

김밥을 나눠 먹고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다

이제 갈까, 하고 자리를 정리하며 떠나는

장면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는 그림과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서로 보여준 적이 없다 평화로운 그림인 것은

분명한데도 그것은 잔인한 일이다



*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물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한겨레출판, 2018. p.17)


** 존 윌리엄스, '스토너' 김승욱 옮김, RHK, 2015, p.389






내가 좋아하는 겨울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배우들의 입김,


추위에 하얗게 질린 것 같던 가는 발목,


하얀 밤 눈과 하얗게 날리던 깃털,


차가운 길 위에 누워 "오늘은 비싼 팬티가 아니야."하고 중얼거리던 말,


"착하다"라고 남에게는 쉽게 내뱉어도 본인에게는 아끼던 입이 떠올려집니다.


따뜻한 말과 장면들이 모여 마음 속 차가운 방을 뎁혀주던 드라마였는데요.


드라마 보면서도 그가 한숨을 내뱉을 때, 혼자 밥 먹으며 울 때, 세상 무거운 발걸음을 할 때,


혹시라도 역할이 아니라, 그의 그림자와 어두움이면 어쩌지 싶어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어요.


그가 그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


대중에게 보이던 모습이 무너지자 견디기 어려웠던가봅니다.


물론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세상의 잣대가 드리워지겠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보기에는 연민의 마음이 듭니다.


창작물을 소비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그에게 투사했던 이미지, 바람을


잃어버린 것은 그의 가족들이 감당할 무게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닌 거겠지요.


저는 위의 시 마지막 문단의 여운이 깁니다.



내가 그리는 그림과 그녀가 그리는 그림은

서로 보여준 적이 없다 평화로운 그림인 것은

분명한데도 그것은 잔인한 일이다


김소연,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2023, p.58




우리는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그림을 서로에게 비춰봐요.


서로 비슷하게 그린 후 보여준다 해도 똑같은 그림일 수 없습니다.



타인에게서 좋게 투사된 자기 모습만 보여주려 하면 내면 속 반대 모습은 소외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면의 그림을 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전부 보여주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 잔인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잔인하더라도, 외로운 모습과 아이같은 그림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영원히 보여주지 않으려 할 때, 피하려 할 때, '외로움'이라는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우주의 고독이 느껴질 거에요.



내가 외면한 나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으니까요.



그가 자신에게 '착하다', '아무 것도 아니야.' '나만 별일 아니면 별일 아닌 게 되는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함에 이르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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