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데..
일 년 전부터 준비했던 교환학생.
합격하고 기뻐한 몇 달 전이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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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거 성실히 자료 보내고
(정말이지 내가 태어나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부터 증명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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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내고 (모든 절차에서 돈을 요구한다. 올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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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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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신청하고 (프랑스로 가는데.. 절차도 여러 개.. )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한 후에
정말이지 다음 주면 교환학생을 하러 떠난다.
실감이 안 나다가 갑자기 나기 시작한 건
전화를 잘하시지 않던 외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셨을 때다.
전화를 잘 안 한다고 사이가 서먹하거나 안 좋은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뵈어도 재밌으시고 MZ하신 이모할머니 덕에 늘 웃으며 대화한다.
카톡은 가끔 주고받더라도,
외할머니께서 전화를 먼저 주시는 것은 일 년에 많아야 한 두 번이기에.
뭐지 엄마가 연락 안 보셔서 전화하셨나?..
혹시나 안 좋은 일이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받은 전화.
어~ OO아~ 잘 지내냐~
밝은 듯 긴장하신 듯한 목소리.
그래도 내가 전화를 받아 기쁘신 듯했다.
네 잘 지내죠~~
어어~ 언제 가냐~?
저어 1월 2일이요~
그렇게 날짜를 세어보시는지 2초 정도 말이 없으시다.
다음 주 목요일이냐~?
네~
어엉 진짜 얼마 안 남았네~
네 할무니~
조심히 다녀와라~
비행기 오래 타느라 힘들겠네~
에이 아니에요~
기대되는 것이 더 크기에 장거리 비행은 걱정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감사히 여겨야 할 흔치 않은 기회임도 알기에.
공부하느라 고생하겠네~
에이 아니에요~
조심하고~ 위험하잖아 외국이고~ 아효~~~
사실 나도 안전은 걱정하고 있기에 조심하겠다고 답했다.
그래도 걱정해 주시는 할머니가 귀여워서 웃음이 조금 나왔다.
히ㅣ히히히
아유 야 웃을게 아니라 ~~ 이상한 애들 많을 거 아니야~~ 안그냐~
나는 할머니께서 걱정을 줄이시길 바라는 마음에 안심시킬만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할머니~~ 저 큰 소리 나는 경보기 같은 것도 샀어욬ㅋㅋㅋ
뭐어? ㅋㅋㅋ 그런 걸 샀다고??
네 ~ 엄청 큰 소리 나는 거요~~~
아유 그러냐 ~
웃음을 터뜨리시며 조금 안심하신 듯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르게 내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신 것 같기도 했다. (positive)
그리고 또 걱정을 덜어드릴 내 필살기
저 겁 많은 거 아시잖아요~~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걱정할 때마다 내가 앵무새처럼 꺼내는 말이다.
사실이기에 다들 믿어준다.
나는 정말이지 겁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도 조금이라도 무서우면.. 괴로워진다.
어느 정도냐고, 그 정도를 물어본다면,, 청년경찰도 실눈 뜨고 봤다.
아니 그 정도라고?
예..
그러다가 나온 중요한 말
남자 조심해라~~~~ 이상한 사람 많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할무니는 이게 본론인 듯했다.
ㅋㅋㅋ 할머니~~ 네 남자 조심할게요 ㅋㅋ
어어 흑인들 많고 그렇잖아~~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서, 다양한 인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어려우실 수도 있지만, 나에겐 불편한 말이다. (p.s. 축구선수 주드 벨링엄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세계시민교육 같은 걸 받은 터라 인종에 대해 이럴 것이다~하는 그런 편견이 또래에 비해서도 적기도 하다. )
이러다 나 외국인 남자친구 생기면 까무러치실텐데 어쩌나..
그래서 나는 말투와 맥락으로 드러나는 할머니의 말씀의 함의,
그러니까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걱정을 보여주면서도,
나도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도록 조금 바꿔서 말했다.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으니까요~~~
이렇게.
그렇지 그렇지~~~ 어엉~~
다행히 할머니도 이에 동의하셨다.
그러다가 옆에서 들리는 이모할머니 목소리
철~벽을 치라해라 ~~
그리고 들려오는 개구진 웃음
어어 이모할머니 바꿔줄게~~
그리고 들리는 이모 할머니 목소리
어 OO아~~
네 할머닠ㅋㅋㅋ철벽ㅋㅋ을 치라구요? ㅋㅋㅋ
어디서 그런 말 배우신 건지 또 웃음이 나왔다.
두 분은 시간이 있을 때 티비 앞에 앉아서 티비를 자주 보신다.
최애 채널이라 함은 세계테마기행,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등..
여행 가는 채널을 많이 보신다.
특히나 이모할머니는 혼자서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 멋쟁이시다.
이모할머니는 대답했다
어엉 ㅋㅋ 철벽~을 치라~~
아앜ㅋㅋㅋ 네 알겠어요 ㅋㅋㅋ
그리고 여전히 나를 신뢰하시기 어려우신지 덧붙이시는 한 마디.
그 ~ .. 착하게 해 주는 것도 안된다~~
그야말로 이모할머니는 조언을 단디 하셨다.
앜ㅋㅋ알겠어요 ㅋㅋㅋㅋ 철벽~ 칠게요 철벽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걱정하실 걸 알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그리고 진심을 넣은 선언이기도 했다.
어엉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네 할무니~~~
그리고 바로 끊기지 않고 너가 끊어라
끊겼나 하는 소리가 3초 정도 들리다가 꺼졌다.
나는 그 소리도 좋아서 할머니가 버튼을 누르시기를 기다렸다.
두 할머니께서 투닥거리는 것도 귀여웠다.
나도 나중에 그런 친구가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을 더하면서.
그렇게 귀여운 할머니들과의 통화를 마치니 실감이 났다.
와, 나 이제 진짜 가는구나.
그런데
잠깐의 이별은 힘들기도 하지만,
나의 존재를 더 각인시키게 되기도 한다.
조용히 동아리의 한 부원으로 있다가도, 교환학생을 가느라 좀 못 본다고 하면,
다들 약 반년을 못 본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축하해 준다.
친구들이랑도 교환 가기 전에 이걸 언급하며 약속을 잡으면서 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몇 명의 친구들과는 내가 교환을 가서 몇 달 정도 못 본다는 동기가 없었다면,
더 자주 못 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괜히 내가 한국을 잠시 떠난다는 생각에,
다들 따듯한 말과 응원의 말이 오간다.
나는 한 번도 기숙사에도, 자취도 안 해본... 대학생이기에
이는 큰 도전이다.
그래도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걱정보다 기대와 설렘,
잘하고 오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가서 안전하게 잘 다녀오리라.
아좌아좌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