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거스르기 힘든 거대한 흐름에 깔려 죽지 않는 법
가끔은 우리가 바꾸기 어려운 세상의 큰 흐름이라는 게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 저항하려 하지만, 거대한 파도같이 밀려오는 그것에 우리는 휩쓸려버린다.
미디어. 숏폼과 인스타그램. 숏츠, 틱톡 등등.
언제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가.
짧은 시간 안에 관심을 끌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들은 점점 정신없어지고 말초적 기쁨을 유발하는 것으로 변모한다.
이에 더해, 고민이 많고 이를 외면하고 싶을수록 단순하고 짧은 그 숏폼에 끌린다. 또는 무의식적인, 습관적인 클릭 하나로 한 시간은커녕 두 시간 세 시간이 뚝딱 지나간다.
그리고 돌아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오늘 본 수많은 영상들은 우리의 머릿속을 곱절은 더 시끄럽게 만든다. 한 시간 반 동안 그냥 봐버린 그 숏폼은 노래와 잠깐 스친 여러 장면들로 내 머릿속을 뛰어다닌다.
맞다, 어느 정도 숏폼은 우울함을 해결해주기는 한다. 어떤 일로 기분이 다운되다가도, 재밌거나 자극적인 숏폼들을 별생각 없이 넘기다 보면 실없이 웃고 공감하면서 스크린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문제는 한 번 누르면, 시간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과, 후폭풍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를 외면하고 스크롤을 해도 다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나다. 게다가 시간은 더 줄어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더 큰 문제는 이 숏폼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멈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며칠 숏폼을 보지 않기로 해서 어딘가 지루하지만 그래도 맑은 정신을 유지해도, 다시 깔면 다시 원상태로 복귀된다. 이 거대한 콘텐츠의 홍수에 나는 그냥 힘없이 쓸려간다.
알고리즘은 나에게 콘텐츠를 추천해 주고 나는 행동의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다.
이미 이 시대에 들어선 이상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가 되었다.
또한 이 거대한 흐름에 릴스나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을 통한 공유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친구들과 재밌는 것이나 공감되는 콘텐츠, 감동적인 것 등을 공유하고 이걸 바탕으로 또 같이 웃고 채팅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것이 주는 기쁨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렇게 잠깐 친구들과 재미있는 것을 주고받는 것이 결국에는 아주 긴 핸드폰 사용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점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완벽한 최적의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현재로서 생각해 낸 최선의 방법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 일단 시간제한, 즉 스크린타임을 걸어놓는다. 그때그때 15분만 더 보겠다 한 시간 더 보겠다고 클릭하면 다시 시간제한이 풀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최소한 본인이 꽤 긴 시간을 핸드폰에 썼다는 것을 알게 되면 멈추는 것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하루 한 시간으로 맞춰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핸드폰사용을 대체할 만한 재밌는 취미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기 쓰기, 소설책 읽기, 영화 보기, 친구들 만나기, 미술관 가기 등은 좋은 대체제가 되어준다. 레고나 뜨개질, 그림 그리기 등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 뭐든 가능하다.
세 번째는 숏폼을 보고 싶을 때, 다른 사람에게 노출이 되는 장소에서 핸드폰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면 핸드폰에 너무 절여져 있는 본인의 모습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을 나오기에 더 용이해진다. 우리가 모든 것이 갖춰진 집을 놓고 굳이 카페나 도서관을 가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집을 나오기 귀찮을 땐 같이 사는 사람의 시선에 들어오는 곳에 가도 조금 나아진다.
네 번째는 이미 너무 핸드폰을 많이 사용해서 넋이 나간 것 같은 후유증이 느껴질 때의 방법이다. 단순한 것들을 한다. 샤워하기, 산책 가기, 책상정리하기, 설거지하기, 갑자기 스쿼트 하기 등등. 이런 단순한 것들은 핸드폰으로부터 잠시 멀어지게 하고, 다시 목표를 설정하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은 끈기 있는 사람이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칭찬한다. 생각은 행동을 지배한다. 계속 본인을 응원해 주면서, 나는 멈출 줄 알고 이쯤 되면 잘 놀았다 ~ 하고 핸드폰을 침대에 던진 후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다섯 가지 방법으로 중독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아직도 스크린타임은 들쭉날쭉에, 가끔 스트레스받을 때는 스크린타임이 7시간을 돌파할 때도 있다. 핸드폰을 하고 숏폼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그렇기에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다. 편리한 핸드폰은 우리를 손쉽게 바꿔놓았다.
나는 내가 중독되는 것 같은 순간에 '삶은 개구리 증후군'이 생각난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즉각 뛰쳐나오지만, 찬 물속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는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기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안주하다가 그냥 죽거나 멸명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이라고 한다.
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불을 조금씩 올리며 끓이면, 그저 따끈한 물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머물다가 조금씩 조금씩 익으면서 결국 죽게 된다는 그 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부분을 영향을 받고 획일화된 생각을 갖게 된다.
주체적으로 읽고 깨어나자. 유연한 사고를 위해, 비판적인 사고를 위해.
그 거대한 파도가 올 때 힘없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힘차게 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