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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y 06. 2023

나만의 손님접대 시크릿

오랜만에 지인을 초대했다.

대접할 음식을 정하고 스케줄을 짠다. 언제 장을 보러 갈지, 언제 청소를 시작할지. 어떤 음식을 어떻게 세팅할지 머릿속 일정표가 분주해진다. 


하루 전날 집안 청소를 한다. 내 청소 법칙은 정리 먼저다. 손님들은 쳐다도 보지 않을 옷장정리를 한다. 버릴 옷을 분리수거하고 침대시트를 정리한다. 부엌 찬장 속을 정리하고 구석에 쟁여놓았던 쓰지 않은 물건들을 버린다. 이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누가 보지도 않는 속이 정돈되어야 보이는 겉이 깔끔하게 느껴진다. 화분들에 물을 흠뻑 주고 시든 잎사귀들을 잘라준다. 책장에 가로로 꽂아둔 책들을 모두 키에 맞춰 세로 정렬하고 책상 위 잡다한 물건들을 쓸어 서랍에 넣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 걸레질을 싹 해둔다. 청소기는 내일 아침 한 번 더 돌리면 된다.  


이번 상차림의 주 메뉴는 연어다. 

당일 아침에 마트에 가서 회감으로 먹을 만한 싱싱한 연어를 사고, 아보카도 몇 개와 샐러드 코너에서 코올슬로를 산다. 연어는 레몬즙에 한번 샤워를 시킨 후 길쭉길쭉하게 썰어놓는다. 아보카도는 반을 갈라 씨를 뺀 후 숟가락으로 파서 껍질을 분리하고 어슷썰기 한다. 코올슬로는 소복이 담고 김치랑 밑반찬을 조금씩 접시에 덜어놓는다. 갓 지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조물조물 섞은 후 김가루를 넉넉히 넣어서 조그마한 주먹밥을 만든다. 곁들일 미소된장국은 마음이 분주하니 인스턴트 미소된장 가루로 대체한다. 후식으로 먹을 블루베리, 청포도와 커피를 세팅하면 이제 음식 준비는 끝이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식탁정리를 한다. 아끼느라 자주 쓰지 않던 식기들을 꺼내고 손님 수대로 컵과 물을 준비한다. 앞 접시와 냅킨, 수저를 놓고 나면 준비는 얼추 다 돼 간다.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꿉꿉하게 느껴지는 곳에 방향제를 뿌리고 향이 좋은 초를 켜고 잔잔한 찬양을 틀어놓으면 완성이다. 


집을 개방하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가방과 소지품이 가득 늘어져 있던 책상이 말끔해지고 노트북과 책이 널브러져 있던 식탁이 제구실을 찾았다. 찬장 속에 잠자고 있던 그릇들도 오랜만에 세상구경을 한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손님 덕에 나만 이득이다. 


문 앞에 손님들이 신을 실내화를 꺼내놓고 시계를 본다. 부족한 것이 없는지 집안을 둘러본다. 흡족하다 싶으면 식탁에 앉아 잠시 기도한다. 오늘의 대화가 진실하고 평안하기를. 모쪼록 우리 집에 오는 이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기를.  


“집이 참 깔끔하네요.”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요.”

“다음번엔 우리 집 초대 못하겠네!”

“음식이 맛있어요. 고생했겠다.”


순수한 칭찬이든 예의상 해준 말이든 기분이 좋아진다. 입 꼬리가 올라간 채로 차린 게 없다는 입바른 소리를 한다.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집안에 가득 찼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게 수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한바탕 휩쓸고 간 폭풍의 잔재가 설거지 거리가 되어 개수대를 꽉 채웠다. 접시와 컵을 하나하나 닦으며 이 정도면 그나마 잘 치렀으니 수고했다 싶다. 


뒷정리를 하고 한숨 돌리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이 어색해진다. 그러고 보니 너무 긴장했다. 사실 처음 오는 손님에게 너저분하고 게으른 민낯이 드러날까 봐 꽁꽁 포장을 했다. 빈틈이야 드러나기 마련인데 첫판부터 공개되면 낯부끄러우니 조심 또 조심하느라 진땀이 났다.  당분간은 옷장 정리할 일이 없겠지. 한동안은 아끼는 식기들을 꺼낼 일이 없겠지. 갑자기 아무 때나 벨을 누르고 라면 하나 끓여달라는 친구, 난장판인 집을 보여줘도 아무렇지도 않은 편안한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그런 편한 친구가 온다면 이런 수고는 할 필요가 없으니..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는 성경구절이 있다. 가식 조금 섞고 깨끗한 척 포장된 접대라도 괜찮을까? 좋은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은 축복이 틀림없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손님을 위한 순수한 사랑의 의도와 잠깐이라도 깔끔한 이미지로 보이고 싶은 내숭이 혼합된 결과물이다. 정갈한 지금 상태 그대로 다음 손님을 초대할 때까지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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