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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Jul 24. 2018

차별인가 당연한 건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17년 11월 말에 회사를 설립했다. 책이나 신문을 보면 한국은 온갖 잡다한 규제 때문에 

사업활동이 힘들다는 글들이 많아 적잖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 작업들을 몹시도 귀찮아하는 천성 때문인지 첫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크게 두근거림이 없이 '이 지긋지긋한 절차는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이 컸었다. 법인 등기부등본까지 다 뗀 후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주거래 은행 선택 및 통장 개설 과정에서 누구도 갓 설립한 법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황당한데 정부에서는 청년들을 반 강제적으로 창업전선으로 내몰면서 막상 회사를 만들었을 때 은행이 통장 개설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시간이 지난 후 글로 쓰니까 차분하게 보이는데 그 당시엔 오랜만에 육성으로 욕이 터졌다. 은행들의 거절 사유인즉슨 대표통장이 너무 많아져서 절차가 까다로워졌고 특히나 신규 개설은 더욱 꺼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령법인도 아니고 자본금 3억 원이 예치된 법인인데도 이렇게 문전박대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 1 금융권에서는 다 거절당하고 겨우겨우 회사 근처 농협과 새마을금고에서 받아준다고 해서 그나마 가까운 새마을금고에 통장 개설을 했다. 이마저도 회사 운영에 꼭 필요한 법인카드는 한 달 후에 만들어준다는 조건이었다.



창업자들을 육성한다는 나라의 현실이 이렇다니 정말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문제 해결 방식이 일차원적인지 개탄스러웠다. 대포통장이 문제가 되면 처벌 수위를 높이고 검사의 기준을 높이면 될 것을 아예 통장 개설의 싹을 잘라버리다니 이 무슨 21세기에 알렉산더 같은 해법인지.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마찬가지로 장기 렌터카로 법인차량을 구매할 때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다행히 통장 개설처럼 심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나의 우상 아버지에게 울분을 털어놨는데 아버지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아버지 왈 "사업 처음 시작한 놈이랑 착실하게 오래 한 놈이랑 같은 취급을 받으면 그게 평등이냐, 공산주의지"라고 하시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닌 게 나는 3억 원을 들고 있는 신용도 0인 초짜고 아버지는 20년 넘게 신뢰도를 쌓아왔으니 은행의 대접이 다를 만은 하다. 그러나 물론 차등이 있어야 하는 게 맞지만 새싹들이 땅을 뚫고 나오기도 전에 밟아버리는 이런 일들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색이 창업가의 나라에서는. 



뭐가 됐든 이 해프닝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아버지가 주거래 은행에 전화 한 통을 넣자 다음 달 바로 그 지점에서 vip로 통장을 개설함은 물론 법인카드도 바로 발급이 됐다. 서러운 마음에 다 쓰지도 못할 법인 카드를 10장이나 만들어버렸다. 나는 다행히 능력 있는 아버지가 있어 이렇게 쉽게 풀렸지만 그러지 못한 다른 젊은 창업자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지고 씁쓸했다. 아직도 우리나라 시스템은 개발도상국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느낀 그런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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