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를린부부 Apr 24. 2023

비건? Vegan?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4월 22일 연재


비건(Vegan).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채식주의 생활방식의 하나로, 동물성 식품을 제한하고 과일·채소·곡물 등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식습관을 지향하는 생활양식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을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인이라 부른다.”


채식주의 개념에 대해 눈을 뜬 건, 바르셀로나에서였다. 단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채식 메뉴에 대해 종업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난 그게 뭔지 옆사람에게 물었었다. 그리곤 나는 "그렇게 먹으면 나중에 배고프지 않아?"라고 물었다. 나 스스로 잊어버린 그 장면을 그 친구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렇게 채식 메뉴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게 30대에 들면서였다.


한 끼의 식사를 생각하면 각자 떠올리는 양과 방식이 있다. 가벼운 샐러드의 경우, 누군가에겐 한 끼의 식사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그저 애피타이저 정도가 되기도 한다. 수프도 마찬가지다. 뜨뜻한 수프에 빵 몇 조각을 찍어먹는 것도 훌륭한 식사이고, 어떤 이에겐 거대한 식사의 서막을 알리는 시작일뿐이다.


30대가 될 때까지, 심지어 유학기간을 포함해도, 나에게 한 끼의 식사란,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든든한 포만감이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포만감이란, 어떤 식으로든 고기가 곁들여진 식사였다. 아무리 이것저것 곁들어 있을지라도 샐러드나 고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메뉴는 나에게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없었다. 육류를 특별히 좋아하고 즐기는 나에게 채식은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혼자 살며 대부분의 끼니를 집에서 해결할 때는 역시나 큰 변화는 없었다. 주말에 마음을 먹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게 일상이었다. 평일에는 물론 더 빠르게, 덜 귀찮게. 이것이 내가 먹는 음식이었다. 그러니 맨날 먹는 게 거기서 거기였다. 가끔씩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상 나에게 익숙한 재료를 특별한 가격으로 섭취를 했다. 혼자 사는 나에게 채식이란, 그저 점심시간에 여느 식당에서 잠깐씩 마주하는 ‘특별한 방식의 메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점심시간을 통해 거리에서 마주치는 채식메뉴는 그 종류나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 채식 재료의 본질을 끝까지 담은 메뉴, 채식 버거처럼 고기의 식감을 재현하려는 메뉴, 고기만 빠졌을 뿐 열량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여느 고기 메뉴와 비등한 메뉴 등등 끝이 없다.


음식점들의 모습도 갈수록 다양해진다. 비건을 위한 음료 가게, 비건을 위한 아시아 음식, 비건을 위한 마트 등등 어딘가 익숙하기도 하고, 어딘가 새롭고 신비하기도 하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살면서 만들어진, 자연스럽게 생겨난 다양성이 더 좋다. 케밥을 파는 가게에서 먹을 수 있는 콩수프나 불고기를 파는 한국 식당에서 먹는 파전이 좋다.


녹두전이나 감자전 등의 메뉴등은 채식 메뉴이다. 불교에서 다루는 음식들도 채식 메뉴이며, 김밥이나 비빔밥 등, 기존에 익숙한 메뉴를 채식을 위한 재료만으로 조리하는 음식도 채식메뉴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한국에서 지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음식들을 채식 메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채식은 단순한 메뉴가 아닌 삶의 방식이라 하는 모양이다.


베를린은 비건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한국도 많이 익숙해졌겠지만 채식주의자들이 갈만한 식당이 많이 없던 시절, 베를린에서는 어렵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작정을 하고 들어가야 될 것 같은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특별한 음식점이 아니라 일반 음식점의 같은 메뉴라도, 햄버거를 먹으러 가도 비건메뉴는 있다. 채식주의자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특별한 곳을 찾고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한결 마음이 편하다.


베를린에서 줄곧 즐기는 채식메뉴 중 중동 지역에서 온 ‘팔라펠’이라는 먹거리가 있다. 콩을 잘게 다져서 고수나 양파 등을 섞어 동그랗게 튀겨낸 음식이다. 샌드위치처럼 빵에 넣어서 먹기도 하고, 접시에 요리처럼 여러 가지 샐러드와 함께 차려서 먹기도 한다. 겉으로 보면, 튀겨낸 고기 완자처럼 생겼다. 갓 튀겨낸 고소함이 일품이다. 아내의 어학원에는 시리아에서 온 아이가 5명인 중년의 여성이 있는데 "팔라펠의 장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녀가 만드는 팔라펠에서는 정말 고기맛이 난다고 한다.


‘할루미’란 치즈도 마찬가지다. 양젖이나 염소젖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꽤나 단단한 이 치즈를 기름에 튀기기도 하고, 그릴에 굽기도 한다. 생으로 먹어도 비린내가 전혀 없고, 식감이 꽤 단단한 편이라 그 자체를 다른 요리에 곁들이기도 하고, 이 치즈만으로 메뉴가 되기도 한다.


이케아(Ikea) 하면 떠오르는 2유로짜리 핫도그가 있다. 특별할 것 없이 핫도그 빵에 소시지를 넣어 먹는 메뉴다. 이케아에서도 이제는 비건 소시지를 선택할 수 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다양해지는 채식 재료들의 범위는 일상의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메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주문해서 먹어본 것이 전부였을 뿐, 그 맛이나 풍미를 즐겨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결혼 전 까지는. 나와 다르게 아내는 원래 채식을 즐겼다. 결혼 전에는 더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아내가 가끔씩 채식 메뉴를 만들어 줄 때마다 난 아주 신기하게 반응한다.


그때부터 집 밖에서나 보던 채식 메뉴들이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구입 가능한 종류별 할루미 치즈들도 이때 즈음부터 먹어보기 시작했다. 같은 세상인데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는 건 육아와 비슷한 성질이다. 전과 후가 다르듯이, 알고 보니 같은 세상에 거대한 다른 세상이 있던 느낌이다.


회사 회식에서도 채식에 대해 배운다. 매년 연말에 있는 전체 회식 때, 사전 주문을 위해서 참석여부를 조사할 때 메뉴를 미리 물어본다. 특정 음식을 미리 주문한다는 게 아니라, 채식인지, 비건인지 등을 묻는다. 채식주의 중에서도 계란이나 생선 등의 섭취 유무에 따라 비건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기타 다른 표현도 있다.


몇 년 전 메뉴를 표기하는 방식 때문에 시끌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 무심코 "채식/생선은 가능/ 정상"이라고 표현해 전체메일이 돌고 도는 일이 있었다. 고기를 섭취하는 것을 '정상' 혹은 '평범'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누군가가 불편함을 호소하며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 살짝의 발전이 있었다. 그다음 해에는 "고기/생선/둘 다 불가능" 이렇게 바뀌었다. 채식에 대한 생각이 서툰 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아이의 유치원에서도 채식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 아이가 채식을 하는지 등과 더불어 알레르기 유무도 꽤 자주 물어본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지만 이 당연한 질문을 모르고 학창 시절을 지나온 엄마와 아빠는 그저 배울 길이 멀기만 하다.


아이가 3세가 되기 전, 한국으로 치면 "어린이집"을 다니던 시절은 한 번씩 간식으로 빵을 구워가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음식을 준비해 갈 때마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따로 메모를 꼭 남겨야 한다. 꽤나 상세하게 알레르기 유무를 꾀차고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알레르기 검사를 위해 고생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런 문화가 있는 건 참 다행으로 느껴진다.


채식을 하는 이들의 사연은 참 다양하다. 어떤 이는 환경보호를 위해, 어떤 이는 익숙함 때문에, 어떤 이는 건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연만큼 그 정도도 다양하다. 단순하게 육류를 먹지 않는다는 것보다 재료를 불을 이용해 익히고 조리하는 과정을 줄이면서 에너지를 조금 쉬게 하는 것도 채식의 방법이 된다.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추만을 뿌린 샐러드를 먹는 게 한 끼 식사로 부족하지 않고 심지어 맛이 있다는 것을 슬슬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채식이란 생존이다. 유난히 고기를 많이 섭취한 다음 날에는 적어도 채식 메뉴를 먹는다. 물론, 그렇게 무리하게 고기를 먹는 것부터 조절을 해야 할 테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 여성의 날'은 베를린의 법정 공휴일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