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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Sep 19. 2023

새로운 가족의 탄생, 둘째의 베를린 출산기 2

경향신문 토요판 '다른 삶' 2023년 09월 09일 연재

지난 7월, 둘째 아이의 출산을 위해 종합병원에 다녀왔다. 예정일은 8월 말로, 출산까지 1달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았었지만, 보호자가 출산 병원에 직접 들러 서류 작업과 수속도 해야 하고 산모의 상태를 검진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가 태어난 병원에 대한 만족도가 대체로 높았기에 우리 부부는 별 고민 없이 같은 병원으로 향했다.


첫째 출산 후 4년 만에 들른 병원은 놀랍도록 똑같았다. 심지어 일하시는 분들 중 익숙한 얼굴들도 많이 있었다. 대체로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는 행정적인 서류 작업이 굉장히 간단한데, 이는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후 산모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여러 검사를 진행한다. 그중 첫 번째는 응급제왕으로 세상에 나온 첫째 출산과 관련된 검진이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기에, 이번에는 자연분만이 가능한지에 대한 진료였다. 한국처럼 처음 제왕절개를 하면 둘째도 당연히 제왕절개를 하는 분위기가 아닌, 독일은 몸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둘째는 자연분만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권유한다. 그래서 아내도 자연분만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제왕수술을 계획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난번처럼 열다섯 시간을 넘게 진통하다가 제왕수술을 해야 하는 불상사를 또 겪고 싶지 않았다.


이런 산모의 의지와 상반되게 우리 둘째 아이는 체격이 큰 편이었다. 몸 둘레, 머리 둘레, 몸무게 등이 평균치를 한참 웃돌다 못해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아이였다. 임신 기간 동안 진찰해 준 담당 산부인과 의사도, 아이의 크기와 임신 주기를 고려했을 때 38주를 넘기지 말고 출산할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출산병원의 산부인과 담당의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의 경우, 출산 전 아기가 너무 커지면 자연분만 시 자궁파열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제왕수술을 계획하기로 했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친 뒤, 수술에 대한 안내도 받고, 수속도 마쳤다. 이틀 뒤로 수술 날짜를 잡고 집으로 향했다. 38주를 막 시작하는 때였다. 왠지 예정일을 기다리며 오늘일까 내일일까를 염려하지 않고, 이틀 뒤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출산병원에서 미리 수속을 마친 그날, 우리 가족은 조촐하게 외식을 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갑작스레 양수가 터졌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는 아내의 목소리가 지금도 맴돈다. 우리 부부는 일단 급하게 첫째 아이를 주변에 사는 이웃집에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 2시. 이미 제왕수술을 하기로 진단이 내려졌고, 수속까지 다 해놓았으니, 원한다면 당장 수술로 출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산모는 결국 자연분만을 시도하기로 했고 그렇게 다시 분만실에서의 긴 진통이 시작되었다. 분만과정 내내 남편은 함께 분만실에 머문다. 어쩌면 민망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남편이 함께 하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장면은 경이롭기만 하다. 그렇다고 출산의 고통을 동일하게 느낄 수 없다. 그리나 한 공간에서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출산을 이해하는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


날이 밝도록 병원의 헤바메(Habeme, 출산에 관련된 의학적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 간호사)들이 아내와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9시간이 지나 아내는 결국 둘째 아이를 자연분만했다. 무통주사, 분만촉진제, 마취가스 등등 산모의 진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시시각각 다른 해법들을 조치해 주는 헤바메야 말로, 분만실에서는 의사보다 더 간절하고 절실한 존재들이다.


헤바메들은 끊임없이 산모를 돕는다. 감통에 효과가 있다는 허브패치를 코옆에 두기도 하고 반신욕을 권하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제모, 관장을 일부러 하지 않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먹을 것도 갖다 준다. 산모가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모든 것을 도와준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는 두 명의 헤바메와 한 명의 의사, 그리고 무통을 위한 마취과 의사가 분만과정을 함께 했다. 헤바메들은 산모옆에서 할 수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정말 수고했고 대단한 일을 해냈다며 축하해 준다.


분만실을 떠나 병실로 이동한 뒤에도 헤바메들은 지속적으로 산모와 아이의 상태를 체크한다. 우리 부부는 첫째 때와 동일하게 가족실에서 2박을 했다. 다인실은 건강보험에서 100프로 지원을 해주는데 1인실과 가족실은 추가금액이 있다. 첫째가 태어난 2019년에는 가족실이 1박을 기준으로 50유로씩 추가되었는데 현재는 1박에 150유로로, 무려 3배나 가격인상이 되었다. 그래도 병실비용 외에는 모두 보험으로 처리되어서 추가 비용은 들지 않는다.


아이가 수요일 낮에 태어났고, 금요일 점심에 우리 가족은 집으로 왔다. 분만직후부터 아이와 아내는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고, 옆에서 도움을 주는 헤바메는 있었지만 산후조리 기간 동안 산모와 아기 모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은 이곳에 없다. '산후조리'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모두 스스로 해 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산모가 겪는 수유에 대한 시행착오나 신생아를 대하는 방법 등의 서투름도 포함이다.


독일에서는 모유수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 태어난 아기를 바로 엄마의 가슴에 올려놓고 수유를 시도하게 한다. 2-3시간마다 헤바메들이 병실로 방문해서 엄마와 아기 상태, 그리고 수유를 시도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바로 출산한 엄마의 몸에서 모유가 아기가 원하는 만큼 나올 리도 없고 아기도 힘이 약해서 사실상 병원에 있는 동안 거의 굶는다고 봐야 한다.


태어나면 하루 정도는 잠만 자던 아기는 이튿날이 되면 점점 배가 고파서 울기 시작한다. 병원에 분유가 구비되어 있지만 신생아는 하루이틀 못 먹어도 된다며 계속 수유를 시도해야 된다는 냉정한 헤바메들의 말에 첫째 때 아내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퇴원하기까지 아기는 출산병원에서 영유아검진의 첫 번째 두 단계인 U1와 U2를 진행한다. (이곳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생후 5살이 될 때까지 10단계의 영유아 검진을 받아야 한다.) 기본적인 몸무게 검사부터 청력, 시력, 배초음파, 황달수치, 당뇨수치 등까지 다양하다. 우리 아기의 경우 태어날 때 흡입기를 사용했던 이유로 퇴원 전까지 매일 뇌초음파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2박 3일 입원해 있는 동안 은근히 바쁘다. 쉴만하면 헤바메들이 밤낮으로 오고 가며 검사를 하고, 끝났나 싶으면 소아과검진으로 아기를 데리고 간다.


퇴원 후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 헤바메는 출산병원의 헤바메와는 조금 다르다. 일단 내 생활공간에서 신생아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훨씬 더 심적으로 편한 분위기다. 또한 산모의 몸이 잘 회복되고 있는지 아기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조언을 하기도 하고 병원을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 아기는 황달수치가 경계선에 있었는데 헤바메가 상태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거듭 헤바메가 집으로 오는지 확인했다. 생후 5-6주에 세 번째 영유아검진인 U3 검사를 등록된 소아과에서 받는데, 그전까지는 방문 헤바메가 아기와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는 유일한 의학 전문 인원이다. 이렇게 집으로 방문하는 헤바메는 소아과 전문의, 산부인과 전문의와 산모를 직접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출산 후 며칠 내에 기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아기와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만감이 교차한다. 본격적으로 육아를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 두 번째이지만 알기에 더 멀게만 느껴지는 100일의 기적등 몸도 힘들고 머릿속도 복잡하다. 그래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미역국과 한국 음식을 차려 먹을 수 있는 집이 차라리 낫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 아이는 출생과 동시에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현행 제도상, 독일에서 태어난 아이가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부모 중 한 명이 영주권이 있어야 하고, 독일에 8년 이상 거주를 해야 한다. 이 아이는 비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 독일 여권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 자뭇 신기할 다름이다. 출생신고는 보통 출산 병원에서 바로 처리가 가능한데, 이것마저도 첫째 때 모든 서류를 넣어 놓은 탓에 그냥 이름만 정해서 작성하면 된다. 부모의 출생신고서,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아이의 출생신고서가 필요한데 우리는 첫째와 같은 병원에서 출산해서 모든 서류가 이미 등록되어 있었다.


둘째의 출산을 위해 아빠는 육아휴직을 1달만 신청했다. 현행 베를린의 제도는 아빠와 엄마를 합쳐 14개월까지 신청이 가능하고, 회사에서는 육아휴직계만 받으면 된다.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회사에서 별도의 월급은 받지 않으며, 시에서 제공되는 육아수당을 받게 된다. 세후 월급의 80프로부터 시작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10프로씩 떨어지는 식으로 제공된다. 베를린의 육아수당은 최대 상한선이 있어, 4명의 가족이 생활비로 쓰기에는 많이 풍족하지는 않은 수준이다.


그렇게 1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아이는 쑥쑥 자라고 있다. 다행히 몸무게 등도 많이 늘었고, 이제는 눈도 제법 뜬다. 입을 오물오물 거리는 갓난쟁이를 보며, 과연 이 아이는 언제 키우나 막막하기도 하다. 앙앙거리며 울어대면 달래기 바쁘다가도 뒤돌아서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이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뭐가 보이는지 뭐가 들리는지 배시시 웃는 베넷웃음을 보며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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