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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Mar 04. 2024

너는 책을 읽어라 나는 수유를 할 테니

베를린그림일기

찰리는 만 4세, 그리고 폴리는 6개월.

오롯이 외동으로 살던 찰리에게 동생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과 평소 찰리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고 골라

레스토랑에서 아이의 눈치를 보며 엄마의 뱃속에 베이비가 있다고 말하던 순간 첫째는 오열했다.

베이비는 싫다는 외침과 함께.

찰리와 단 둘이 베를린의 구석구석을 놀러 다니고

시간을 보냈고 유독 엄마껌딱지인 아이에게 동생의 출현은 꽤나 위협적이었나 보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격렬하게 싫어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설득을 하면서 임신기간을 보냈다. 마지막 외동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라고 성대한 생일잔치부터 만삭의 몸을 이끌고 여름에 매일 키타(유치원)가 끝나면 바로 호숫가로 갔다.

공교롭게도 그때쯤 이직을 한 남편은 바빴고 찰리와 아침저녁으로 아이와 놀러 다닌 덕분인지 예정일보다 2주 빠르게 둘째는 태어났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이 괜찮았는지 찰리는 동생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둘째가 태어나고 보니 달라진 건 첫째의 삶뿐만이 아니었다. 첫째 때는 50일 지난 아기를 데리고 에스반을 타고 베를린의 전역을 돌아다녔는데 40대에 낳은 둘째는 내 체력이 남질 않았다.

게다가 어쩌다 보니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데 이게 참 외출이 쉽지 않다.

분유보다 챙길 짐이 없어서 편하다고 누가 그랬던가. 개월수에 비해 우량한 아기를 수유쿠션 없이 안고

수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독일엄마들은 아기를 한 손에 안아 들고 허리를 세운채 고상하게 수유하던데 현실의 나는 폴더처럼 허리가 접힌 채 아기에게 거의 뜯기는 모양새라 누가 볼까 조금 부끄러웠다.

수유텀에는 무조건 집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나가지 전에 무조건 수유를 하기 시작했다.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목 끝까지 차도록 먹이니 옷 입히다가 토하기를 반복했고 그냥 집에 있기로 했다.

하지만 매일같이 엄마와 밖으로 다니다가 동생이 태어나면서 키타-집을 반복하다 보니 첫째도 불만이 쌓였고 나 역시 답답하기 시작했다.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피곤했는데 우선 나가보자 하고 제일 처음 간 곳이 도서관이었다.

동네 도서관에 어린이 코너도 꽤 괜찮게 돼있고 주차장도 있고 쇼핑몰과 함께 있다 보니 구경도 하고 딱이었다. 게다가 겨울이면 해를 보기 힘든 독일에서 날씨와 상관없이 있을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첫째의 소아과 진료가 있던 날 호기롭게 아이 둘을 데리고 소아과-도서관-점심식사라는 계획을 세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었다.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시물레이션을 돌리고 갔는데 내 계획대로 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런데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아닌 다음번엔 이 부분을 수정해서 도전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가다 보니 도서관은 이제 좀 수월한 코스가 되었다.

키타에서 픽업해서 첫째 간식으로 빵하나를 사서 도서관으로 간다. 찰리가 이 책 저 책 잔뜩 골라서 읽는 동안 나는 수유를 한다.  비록 독일엄마들처럼 꼿꼿하게 세운 멋있는 자세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편해졌다.

그 사이 자란 폴리가 예전에 비해 수유하기 편해지기도 했고 나 말고도 수유하는 엄마들을 곧 잘 볼 수 있는데 그것도 나에게 용기가 되었다. 서로 눈 마주침으로 응원을 하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내 눈앞에 찰리가 평화롭게 책을 읽고 폴리를 안고 수유를 하는 그 순간이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났을 때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봄이 오고 있다. 물론 베를린의 봄은 여름이 오기 전까지 추웠다 따듯했다 반복하겠지만 그래도 겨울은 아니니깐. 어디 슬슬 나가볼까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수유를 걱정하면서 집 안에만 있기에는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그리고 나도 참 부지런하게도 늙고. 하루라도 젊은 날 더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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