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의 이유식

큰 아이는 이유식 하는 내내 입을 벌리지 않았다. 이래저래 온갖 시도를 하다가 "자기 주도이유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일식집 오마카세 주방장처럼 식사시간내내 하나씩 식판에 올려주었다.

말이 "자기 주도 이유식"이지 어차피 안 먹는 아이에게는 주도적으로 음식을 뭉개서 버리기 쉬운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온갖 좋은 재료를 다양하게 조리해서 매일 세끼를 줬던 것 같다.

고맙게도 지금은 참 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다.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식재료를 즐기는 어린이로 성장한 것을 볼 때면 참 뿌듯하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안 먹던 이유식이었는데도 그 당시 주지 않았던 식재료는 지금도 먹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맛살과 어묵이 그렇다. 올리브와 하몬은 없어서 못 먹는데 아이들의 최고 반찬이라는 맛살과 어묵을 안 먹는 어린이가 돼버렸다.

첫 아이의 이유식 시대가 처참하게 지나갔기 때문에 둘째에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우리 둘째는 굉장한 우량아로 성장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또 기대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첫째 때와 다른 점은 나에게 "이유식 만들기"의 의지도, 설렘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 둘을 보다 보니 시간과 체력도 없기도 하다.

일부러 한 정거장 떨어진 유기농 마트를 찾아가서 재료를 사서 만들었던 그 시절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냉장고를 열고 오늘 있는 야채와 고기를 꺼내서 이유식마스터기로 대강 찌고 갈아서 만든다.

그래서 그런가. 정말 안 먹는다. 심지어 첫째보다 더 안 먹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이유식 양을 점점 늘려서 모유수유가 줄어드는 시기라는데 이유식 몇 입에 화가 난 아이는 모유수유로 마음을 달랜다.

나도 예전 같았으면 왜 안 먹지 고민하고 걱정했을 텐데 언젠가 먹을 때 되면 먹겠지 하고 별생각이 없다.

그 와중에 우리 첫째는 이유식을 너무 먹고 싶어 한다.오늘 재료가 뭔지 물어보고 본인 꺼도 남겨달라는 말을 하고 키타를 간다. 몇 숟가락 안 먹는 둘째라 다 버려야 돼서 아까운데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 첨부터 따로 덜어둔다. 다른 간식 먹는 것보다 이게 낫지 하면서말이다.

그렇게 정성으로 하나하나 본인만을 위해서 만들어 줄때는 안 먹더니 대강 만드는 지금은 참 잘도 먹는다.  

한국은 쌀미음부터 시작하는데 독일은 당근퓌레부터 시작한다. 야채 본연의 맛을 하나씩 느끼게 하면서 알레르기 반응도 본다.

한국아기는 "김"으로 키우고 독일아기는 "힙(독일의 분유, 이유식을 만드는 대중적인 브랜드)"이 기른다는말을 종종 듣는다. 나도 만들다가 귀찮으면 사서 주기도 하는데 사실 유기농 재료 사서 만드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저렴하긴 하다. 하지만 성분을 보면 결국 주로감자전분으로 농도를 맞춘 것이 대부분이라 선뜻 사게되지는 않는다.

안 먹어도 그다지 스트레스는 없는데 6월에 단유를 하고 여름에 시원한 화이트 와인과 맥주를 신나게 마시는 것인데 이렇게 이유식을 안 먹으면 계획이 틀어질까 초조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