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스타트업] no.2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끼리 작업을 공유하면 어떨까’
필디는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다 아는 커뮤니티 사이트이자 다양한 건축학도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는 플랫폼입니다. 신동윤 대표님은 2017년 필디(구.아키필드)를 창업하고 현재는 디자이너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창업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성수의 오피스를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회사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필디 대표 신동윤입니다.
아키필드라는 이름으로 2013년도에 처음으로 커뮤니티 사이트로 시작했고, 2017년에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시드투자 유치 이후 주식회사 필디가 설립되었고 최근에는 “마크헙(Markhub)” 이라는 비주얼 데이터 협업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으며, 필디스터디라는 디자인 실무교육을 하는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가 아는 커뮤니티인 필디와는 다른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계신 것 같아요.
네, 최근에는 비주얼 데이터 협업 서비스(SaaS)를 만들고 있어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신다고 봐도 될까요.
맞습니다. 기존의 커뮤니티 서비스가 완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한다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원래는 작품을 업로드하는 기능만 있었는데 중간중간 스터디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피드백, 소통하고 스토리지(Storage)하는 기능이 추가됩니다.
작품의 결과물들을 아카이빙 할 수 있는 서비스들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과정을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는 없어요. 그래서 이 과정에 리얼타임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기획했고, 최근에 투자 유치까지 받아서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Q. 그렇군요. 대표님의 창업 배경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창업을 하시게 된 걸까요?
제 학부생 때의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1학년 첫 학기를 마쳤을 때, 다른 학교 작품들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였던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 무턱대고 놀러가봤습니다. ‘가면 홍대생들의 마감작품이 있겠지’ 하면서 갔는데 진짜 있더라고요. 복도나 설계실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는데 결과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스터디 모델 만드는 방식이 저희 학교와 조금씩 달랐어요. 콘타나 조경 만드는 방법 이런 것도 달랐고요. 그 때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학교의 학생들끼리 작업을 공유하면 어떨까’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당연히 누군가가 잘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커뮤니티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학부 4학년 때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다음 동기, 선후배, 타 대학 친구들을 전부 인터뷰해서 제가 간략하게 만든 웹사이트에 작품들을 올렸어요.
아키필드의 시작이군요. 반응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 오지 않았습니다. 졸업전시도 아닌 일반 마감한 작품들을 굳이 시간을 내서 보러오지 않은 거죠. 그런 와중에 제가 설계실에서 스프레이를 막 가져다 쓰는 상황을 밈으로 만들어서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더라고요. 그래서 당시에 친구들이 좋아 할만 한 밈이나 짤들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올렸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키필드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켰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저는 군대로 사라졌죠.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간 군생활 중에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상병 때부터는 사업 관련 아이디어를 생각나는대로 매일매일 수첩에 적기도 했고요. 전역을 하고 디지트의 한기준 대표와 사무실도 같이 쓰면서 여기저기 활동을 하다 16년도에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아키필드 활동을 시작합니다.
군대에 있을 당시에 아이디어들을 적으셨다는데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예를 들면, 작품을 웹사이트에 올리면 포트폴리오를 뽑아주는 서비스, 건축가랑 학생을 매칭해주는 서비스 등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디어들을 필디에서 어느 정도 구현하셨다고 보시나요?
아이디어 대부분 한 번씩은 시도해보고,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성공한 것들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당시의 생각들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현하고 있네요.
생각한 것들을 시도하고 실패한 경험은 정말 좋은 자산인 것 같아요. 그다음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이상해도 적어놨던 아이디어들을 시도해보고 실패한 경험은 저한테 굉장히 값집니다.
창업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답들을 줄여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이네요.
그렇죠. 그런 과정의 연속이 창업인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제가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속 시도하고 부딪혀보고 검증하고. 이것들의 연속이에요.
Q.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과정을 항상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개발 중인 서비스와도 연결이 될까요.
네 맞아요. 현재 대학에서 학부생들이 디자인 크리틱을 보면 대부분의 작업과정이 종이나 실물 등 아날로그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공학적인, 과학적인, 예술적인 다양한 정보가 하나의 디자인에 담기는데 그게 한 번 크리틱 받으면 그 뒤로는 사라져 버리는거죠. 현시대와 맞지 않게 데이터 로스가 너무나도 많은 겁니다. 그래서 작업과정 또한 온라인에 연결되어 디지털로 보관하는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저희가 학교에서 크리틱을 받으면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모든 디자인 대학에서 쓸 수 있을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완성해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학교에 도입되려면 일반적으로 검증되어 사용되는 서비스여야 합니다. 그게 성공한 예시로는 줌을 들 수 있겠네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진입장벽 없이 쓸 수 있으려면 저희와 같은 작은 사조직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 서비스는 건축에 국한되어 있지 않아요. 서류 업무를 주로 하는 회사에서도 쓸 수 있고 디자인 에이전시에서도 쓸 수 있고 건축사 사무소에서도 쓸 수 있는, 다방면에 활용이 가능한 협업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Q. 대표님께서는 학부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호기심 많은 관종이 실행력까지 좋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웃음) 많은 건축학도, 관련 종사자 분들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번 명함정리를 하면서 세어봤는데 한 3500분 정도 만난 것 같아요.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것들을 필요로 하는지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예전처럼 그렇게 못 만나겠더라구요.
Q. 많은 건축학도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들이 있을까요.
제가 학생 때부터 ‘또래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제가 점차 새로 들어오는 회원분들이랑 조금씩 세대차이가 생기다 보니 거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이전과 다른 점을 느낀 예시를 들자면 일단 불과 4~5년 전이지만 확실히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저희 때는 선후배 간의 연대가 강했다면 지금은 동기간 연대가 좀 더 강해졌다고 봅니다. 아마 코로나 여파도 있고 유튜브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Q. 창업과 관련된 질문으로 넘어가볼게요. 창업의 과정을 알 수 있을까요?
일단 창업은 굉장히 신나고 기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시기별로 약간씩 다른 것 같아요. 5개 정도의 구간으로 시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 기획 단계입니다. 가장 배고픈 단계죠. 수익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뭔가를 하고있는 상태. 저는 운이 좋게도 창업을 시작한 나이가 비교적 어려서 시간이 조금은 많았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수익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 상태. 그때는 정말 쾌감이 짜릿해요. ‘처음으로 우리가 가치있는 무언가를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 고객이 생겼을 때의 그 짜릿함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정말 좋은 경험입니다.
그다음 세 번째 단계, 스케일업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됩니다. 보통은 스케일업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IR(투자유치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무척이나 힘듭니다. 아무런 배경 없이 빈손으로 투자를 받아야 하기에 거절의 연속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몇 수십 투자사를 만나러 다니면서 끊임없이 거절을 받았어요. 하지만 그 끊임없는 거절 속에서도 받는 피드백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모델이나 사업을 소개하는 방식이 점점 발전하게 됩니다.
그 뒤에는 스케일이 커져서 회사가 미친 듯이 성장하는 단계가 있을 거에요.
회사가 안정화가 된 뒤, 선택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겠지만 보통은 엑싯(Exit)을 마지막 단계로 보는 것 같아요. 엑싯은 M&A를 하거나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하여 주식을 현금화하는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Q. 창업을 하신 후로 제일 기뻤던 순간이 있을까요?
곱씹어보면 제일 행복한 순간은 새로운 제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획하고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준비할 때인 것 같습니다.
Q. 그렇다면 창업 이후로 제일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요?
창업은 대부분이 처음 접하는 일이라 모든 상황이 낯섭니다. 미숙함과 실패인 상황의 연속이에요. 그 상황 속에서 미래가 예측이 안되는 순간이 가장 힘듭니다. 함께하는 구성원들도 그걸 느끼게 되는 순간이 되면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결국 그런 상황도 많이 겪다 보니 극복하는 노하우가 생깁니다.
대표의 자리에 있으면서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지고 계신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맞아요. 어떤 분은 저에 대해서 인생을 압축해서 고농축으로 사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창업에 대해서 10년은 겪어서 경험하는 것들을 저는 3년이면 경험한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이를테면 인간관계나 목표 의식, 그리고 습관화하는 삶. 창업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빠르고 밀도 있게 겪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경험을 겪으면서 배우는 것들 중에서도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인드 컨트롤입니다.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 같아요. 앞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물어봤었잖아요. 스스로 힘든 일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 된다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다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제 건축과 관련된 질문들로 넘어가볼게요.
Q. 건축학과에서 배운 것들이 스타트업에서 좋은 점이 뭐가 있을까요?
건축을 하면 인간의 경험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주거설계를 할 때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도시 재생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죽은 공간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이나, 공원을 설계할 때 ‘우리는 휴식을 어떻게 하는가’와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것들에 대한 접근을 하게 되고요. 또 건물을 설계할 때는 건물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컨트롤 하려고 하는 기획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이런 설계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많은 경험들을 하는것 같아요. 그래서 기획 능력이 정말 뛰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걸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시각 데이터도 잘 만듭니다. 뭐든지 작업량이 많기에 항상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 제가 아까 말한 마인드 컨트롤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학과 5년 내내 교수님에게 까이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마지막으로 건축학과에서 얻는 스킬 중 가장 유요한 것은 ‘설득’인 것 같아요. 설계는 설득의 연속이잖아요. 그러니까 설계라는게 디자인을 넘어 타당성에 대해서 검증하고 그걸 남들과 협의하는 과정인데 이 연습을 학교에서 매일같이 하는거죠. 학생 때부터 이런 훈련을 했기 때문에 이것들이 굉장히 큰 자산이 될 거에요.
Q. 좋은 말씀이네요. 건축 전공 분야를 졸업한 건축학도가 창업한다면 좋은 아이템이 있을까요?
저는 원래 스타트업 대표가 목표가 아니라 그냥 건축가가 꿈인 친구였어요. 그러다 필디를 시작하면서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제가 스타트업을 한다고 마음먹고 아이템을 찾았다면 공간데이터나 여행, 아니면 인테리어 관련 업종일 것 같아요. 건축을 배웠다면 진입하기 좋은 분야들이죠.
공간 데이터를 수집해주는 아이템. 우리나라에 좋은 명소들을 카테고리별로 수집합니다. 이 건축물은 누가 설계했고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이 카테고리별로 잘 나눠진 공간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 계획 짤 때, 시장 수요 조사할 때 등 되게 유용하게 쓸 데이터를 갖게 될 것 같아요. 이를테면 카페 입점하는데 주변에 어떤 카페가 유명하고 잘 되는지, 그런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제공하는 사업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학과가 굉장히 잘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행 사업. 여행 계획을 근처에 사는 건축학도나 건축가가 짜주는 겁니다. 보통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먹는 거랑 보는 거잖아요. 보는 건 건축물 아니면 공간이니, 건축 전공자가 알려주는 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시도도 해봤어요. 필크닉이라고 아주 귀여운 시도였죠. 필디 회원분 중 한명을 섭외해서 연남동을 다른 지역 친구분들에게 가이드를 해주는 아이템이었는데 제대로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Q . 마지막 질문입니다. 저처럼 창업을 꿈꾸는 건축학도들에게 한마디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아직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라서 조언을 선뜻 하기에는 부끄럽습니다. 만약 1년 전이라면 ‘일단 시작하세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런 상투적인 말을 했을 것 같아요.
창업은 뚜렷하게 정해져 있는 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서 나아가는 작업의 연속이 창업인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할 때마다 노하우가 쌓여서 결국 이런 일들을 즐기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매순간, 매상황이 처음에는 두렵고 걱정의 연속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해쳐나가다보면 내가 지나온 흔적이 남고, 그 흔적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힌트들을 계속해서 주고 있어요. 그런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면 창업을 통해서 크게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속에서 많이 배우게 될 겁니다.
천천히 변화하는, 무게감을 가진 건축.
빠르게 성장하고, 혁신을 일으키는 스타트업.
[건축학과와 스타트업]이라는 주제로 성격이 다른 두 영역 사이를 동시에 생각하고 구현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건축과 공간을 사랑하며, 창업을 꿈꾸는 모든 분들이 이 기사를 읽고 도움을 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