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01

트롤리 딜레마

by melina

자 여기 전통적인 트롤리가 있다. 인간이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광차가. 그리고 그 귀신 들린 광차가 지나갈 길에 새로운 희생자가 놓였다. 인간의 몸을 가진 인공지능과 로봇 몸에 깃든 인간의 영혼. 지능이 무엇이냐, 영혼이 대체 무어냐고 묻지 말자. 그런 걸 따지고 있는 동안 트롤리는 무자비한 속도로 달리고 있고, 당신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치게 되어있다. 희생은 불가항력이고 죽음은 불가역적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태양처럼 붉은 주황빛의 금붕어가 둥근 어항 안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다다를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시폰처럼 늘어진 꼬리지느러미가 힘차게 물을 저을 때마다 작은 기포가 일었다. 대체 어디를 향해 힘찬 것인지 금붕어는 알지 못했다. 물론 현서도 마찬가지였다.

진한 숙취처럼 미간과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요즘 기가 허한 지, 이상한 꿈들 탓에 자고 일어나면 진이 다 빠져있었다. 현서는 곧장 두통약 한 알을 입에 넣고 삼켰다. 알약의 코팅이 순식간에 벗겨지며 진한 쓴맛이 혓바닥에서 시작해 목구멍을 타고 퍼져갔다. 선명하게 쓴 걸 보니 여긴 현실이 맞다. 꿈도, 베레시트도 아닌. 또 다른 현실이 하나 더 생긴 이후로 현서는 의식적으로 맛을 느꼈다. 혀의 돌기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강렬한 맛을 느낀 후에야 모든 것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지난밤의 모든 선택들을 꿈이라고 묻어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에서 벗어나 샤워를 했을 뿐인데 벌써 꿈의 디테일이 뭉개져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둥근 어항에 갇힌 금붕어의 이미지뿐이었다.

10시. 딱히 출근을 해야 하는 것도,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그 시간과 약속을 지켰다. 이토록 대책 없이 성실한 게 전생에 노비였나 싶기도 했다. 휘발된 꿈 사이로 현서는 출근을 선택했다.

매일 같이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처리하는 회사에 멍하니 앉아있다 보면, 오히려 해방감이 들었다. 현서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5년 뒤, 10년 뒤에도 오늘처럼 별 거 아닌 일이 벌어지고 무사히 처리되는 과정에 자신이 슬쩍 껴있기를 바랄 뿐. 그것도 중심이 아니라 저 변두리 어디쯤 살짝 발가락 하나 정도만 걸치고 있기를. 이 커다란 회사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며 마르지 않는 월급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현서가 재직 중인 주식회사 로어는 국제적 규모의 대기업이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서비스를 여러 차례 만든 곳이지만, 사실 현서는 회사가 무얼 하던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하나의 부품으로 돌아가기 좋아 선택한 회사기에 그다지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현서라고 처음부터 그랬겠냐만, 다 낡은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 없이 묻어두는 편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이야기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로어의 근로자는 의무적으로 베레시트에 접속해야 했다. 베레시트는 로어에서 개발한 XR(확장현실) 트윈월드로,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디지털 트윈 세계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한 30년쯤 전에 유행했던 메타버스라는 말이 비로소 실체를 갖추었다고 하며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주가가 폭등했던 시절도 있었다. 현서는 그런 건 관심 없었고 입사 때 받은 주식을 그때 팔아 꽤 짭짤했더랬다.

어쩔 수 없이 접속해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놈의 트윈 월드에서는 묘한 멀미가 났다. 처음엔 신체 동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건지 여러 차례 점검했지만 기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문제의 원인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이중 현실감. 진짜 현실과 가상현실이 중첩되며 발생하는 수많은 시청각적 자극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서는 원래도 넘쳐나는 소음과 요란한 광고들, 사람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로부터 범람해 오는 정보들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보고 듣지 않으려 해도 성실한 몸은 그것들은 흡수하고 분해하고 해석했다. 거기에 베레시트 속의 화려한 비주얼 이펙트로부터 야기되는 시각적 소란까지 더해지니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현서는 재빨리 블라인더를 가동시켰다.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지며 거리의 많던 사람들이 흐릿하게 블러 처리되었다. 블라인더는 일종의 방해 금지 모드다. 원치 않는 알림이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듣기 싫은 소음 등을 원천 차단해 주는 유료 플러그인이었다. 현서는 일상 속에서 자신과 관계 맺지 않은, 알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차단시켰다. 누구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낯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세계는 전에 없이 고요하고 안온했다. 사악하게도 구독제로 운영되어서 매달 차단된 정보만큼 이용료가 엄청나게 부과된다는 것 말고는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유난히 머리가 아픈 날이라 설정 창을 열어서 광고 제거 기능도 켰다. 사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판, 지나가는 무인 버스에 붙어있던 랩핑 광고, 시야 한 구석에 나타나 자꾸만 귀찮게 구는 광고 배너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그 자리는 모두 4K 자연 영상으로 대체됐다. 이번 달은 청구 요금이 만만치 않겠지만 가끔 누리는 사치로 이만한 게 없다.

기존의 AR(증강현실) 디바이스는 현실의 이미지에 증강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합성해 디스플레이에 띄워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기의 성능이 높아질수록 처리해야 할 연산량이 증가했고, 고성능 디스플레이와 배터리의 무게는 상용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로어에서는 기존 디스플레이를 제거하고, 망막 자체를 스크린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초소형 카메라가 외부 환경을 실시간으로 스캔하고, 레이저 기반 망막 투사 기술을 이용해 눈 안쪽 망막에 직접 영상을 쏘아 마치 현실처럼 느끼게 했다. 덕분에 기존의 고글 형태였던 기기는 초소형 콘택트렌즈 형태까지 축소될 수 있었고, 물리적인 디스플레이 없이도 사용자는 가상과 현실을 완벽히 융합된 환경에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이 사람들이 찬양하는 로어의 모습이었다. 정작 직원인 현서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당한 압박과 생각보다 무능한 사람들, 지저분한 정치들에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특히 콘택트렌즈보다 최적화된 초소형 기기를 안구 내 삽입하는 시술을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반쯤 강제했던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좋다고 손을 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하루 만에 선착순 마감된 게 코미디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현서 님!

모니터 대신 띄워둔 가상 스크린 너머로 젠이 불쑥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현서가 손을 흔들자 젠도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모션이 잘못 인식되어 가상 스크린 화면이 휙휙 넘어갔다. 너무 빨리 발전하는 모든 것이 현서에게는 아직 익숙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이쪽 업계에서 잘도 붙어먹고 있지만.

-지난번 면접 본 인턴분들 입사일이 오늘이에요.

“벌써?”

사실 현서는 이력서나 면접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차피 체험형 인턴이고, 간단한 교육과 평가 이외에 현서가 더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솔직히 누가 와도 상관없을 단순 반복 업무 담당이었기에 채용 과정에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꽤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는데⋯,

“글쎄,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현서가 신경 쓰고 있는 일이라면 부서 내에 불륜 커플이 생긴 것쯤이다. 사내연애라는 게 늘 그렇듯 둘은 비밀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사기랑 정수기까지 다 알고 있는 터였다. 둘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탕비실 문을 벌컥 열고는 짐짓 모른 체하며 허둥거리는 그들을 골려주는 게 하루 중 제일 활기찬 시간이었다.

“혹시 오늘 ‘그 커플’ 봤어?”

-어제랑 옷이 같던데요?

젠이 짓궂게 키득 거렸다. 이대로 약간은 심심한 삶이 그냥 흘러가기를 원한다고, 현서는 되뇌었다. 남들보다는 높은 연봉과 대충 처리해도 될 만큼 손에 익은 일, 제 몸을 뉘일 집이 있는 삶. 이거면 충분한데 무엇을 더 원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아, 인턴분들 회의실에 접속하셨어요.

젠이 경종을 울렸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오늘의 할 일을 할 시간이었다.






희재는 더 이상 뛸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확신했다. 항상 이 구간이었다. 희재는 여기서 수없이 죽고 다시 시작했다. 정답이 아닌 블럭에 몸이 닿으면 부수어지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공간이 뒤틀리며 무너져 내렸다. 눈앞엔 일렁이는 용암이 흐르고, 보잘것없는 고무 오리가 어디 한 번 건너보라는 듯이 동동 떠있었다. 저걸 징검다리 삼아 이 공원을 지나면 비로소 엔딩이다. 저 끝에 성스럽게 빛나는 다이아 스타가 보였다. 한숨을 후, 내쉬는 순간 여지없이 광차에 탄 몬스터들이 바짝 쫓아와 폭탄을 장전했다. 이 도심을 용암과 불로 완전히 뒤덮을 기세로.

희재는 이를 꽉 물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달렸다. 저 끝에 붉은 다이아몬드가 있다. 높여 둔 감각 레벨 때문에 고무오리가 살짝 가라앉을 때마다 정교하게 피부가 뜨거워졌다. 온 신경을 발에 집중해 겨우 고무 오리를 건너 미끄럼틀 구조물 위에 착지했다. 플랫폼에 닿기 직전, 발이 살짝 떨렸다. 용암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 아른거렸고, 이제 거의 다 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가 끓어올랐다. 무릎 아래로, 가슴 안으로, 숨이 닿는 자리까지 뜨거웠다. 두려움인가, 초조함인가, 아니면 기대 같은 것.

자신이 리플모듈 위를 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 화려하게 치솟는 불길과 바닥의 열기, 발바닥에 전달되어 오는 용암 지형의 생생함에 집중하다 보면 그 사실은 점차 잊혀졌다. 리플모듈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바닥이었다. 수천 개의 작은 타일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사용자의 발을 따라 모양을 바꾸고, 밀도와 마찰을 조절해 시야에 보이는 가상의 현실을 실제 환경으로 바꿔주었다. 희재가 한 걸음 내딛자, 바닥이 미세하게 솟아올라 그 발을 받쳐주고 이내 자연스럽게 미끄러졌다. 마치 살아 움직이며 상호작용하는 에스컬레이터 위를 걷는 듯했다. 이 기술 덕분에 희재는 침대방 안에서 고속도를 달리거나, 우주 위를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이 용암 공원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희재는 자신도 모르게 그 감각 속에서 몸의 감각을 찾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던 몸이라는 감각이, 이 위험하고 가짜 같은 공간 안에서 조금은 선명해졌다. 물론 희재의 모듈은 구형이라 가끔 타일 한 두 개가 오류를 내거나 반응에 로딩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모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이모는 희재가 천천히 말라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콘텐츠 때문이든 뭐든 ‘몸을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면 무엇이든 해주려 들 것이다. 신형 모델쯤은 트럭으로 사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희재는 더욱 철저히 감추는 쪽을 택했다. 명백한 오해였지만 그게 편했다. 자신이 죽음을 원한다고 이모가 착각하기를 바랐다. 그게 희재가 원하는 바를 얻기에 더 편리했으니까.

-대체 몇 번 째냐. 네 놈의 얼굴이 지긋지긋할 지경이다.

용암처럼 붉은 얼굴의 몬스터가 킬킬 대며 시비를 걸어왔다. 매번 비슷한 듯 다르게 생성되는 대사, 약간의 베리에이션을 준 타이밍이지만 어딘가 전형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주보다 몸의 근육이 많이 빠져 더 이상 뛰는 건 무리라고 느끼는 순간, 몬스터가 폭탄을 던져왔다. 폭탄은 정확히 희재가 발 딛고 있는 미끄럼틀을 무참히 폭파시켰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함께 와르르 무너지면서도 어떻게든 고개를 들려고 애썼다.

-아직이야.

그 순간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희재의 고개가 의지와 다르게 왼쪽으로 휙 돌아갔다. 익숙한 실루엣이 용암이 뿜어내는 열기와 함께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 킨코였다.


[《인페르노 파크 : 위장 위험구역》 정복에 실패하셨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게 뒤덮이며 안내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FAIL이라는 네 글자가 절망적인 마음을 조롱하듯 선명하게 빛났다. 이내 모든 것이 페이드아웃되며 희재는 다시 현실로 내던져졌다. 오늘의 수확은 그 잿빛 사이에서 익숙한 실루엣을 본 것이다. 불길도, 빛도 닿지 않는 자리에 서 있던 킨코.


다음번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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