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과 베레시트
현서는 미리 예약되어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베레시트를 통해 똑같은 가상 회의실에 들어온 네 명의 인턴이 마치 실제 하는 것처럼 나란히 앉아있었다. 또래 중에 제일 똑똑하겠지만 아직은 어딘가 어리바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얼굴들. 회사 규정 상 원격근무 시 아바타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다소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하긴, XR 네이티브 세대는 워낙 아바타 기반의 소통에 익숙하다고 들었다. 현서의 입장에서는 아바타로 대체 무슨 소통을 할 수 있나 싶었지만, 발전한 비디오 페인팅 기술이 미세한 안면 근육의 떨림까지 리얼타임으로 렌더해 원격 소통의 이질감이 거의 없다고 했다.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정밀하게 스캔된 사용자 얼굴 데이터를 긁어모은 게 현서였다는 건 지금의 동료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이놈의 회사는 고객의 니즈를 어찌나 잘 파악했는지, 상대방이 모르게 안면 근육 탐지 레벨을 조정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도 판매하고 있다. 말 그대로 포커페이스 기능이라 심리전이 중요한 순간에 많이들 쓴다고 했다. 웃는 낯을 유지하기 버거운 장실장과의 회의에서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상황에서 그런 유료 아이템이 필요한지 상상이 가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AI 데이터 관리팀의 윤현서입니다.”
인턴들이 긴장한 듯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회사 내에서 현서는 꽤나 친절하기로 소문난 선임이었다. 그도 그럴게 후임에게 딱히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이 커다란 산업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헌납하러 온 사람들이다. 시간을 팔아 그만큼의 대가를 받을 뿐, 노동을 조금 더 잘하고 못하고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공지능과 로보틱스가 이만큼 발전한 세상에서도 사무실에 앉아 보고용 문서를 끄적이는 삶에서 대부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에 아무도 경각심이 없다는 사실은 끔찍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 줄 몰랐다. 그건 현서도 마찬가지였기에 불쌍한 사람들끼리 친절하게 굴자, 정도의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가벼운 온보딩 교육은 수십 번 해본 일이었기에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도 술술 말이 나왔다. 교육 내내 인턴들은 열심히 현서가 알려주는 매뉴얼을 받아 적고, 고개를 끄덕이며 부지런히 리액션을 보였다. 오전을 대충 때우고 점심이나 먹으러 갈 생각으로 농담도 섞어가며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웠다. 덕분에 꽤 편하게 깔깔 거리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한 명만 전혀 웃지 않았다. 긴장했나, 생각했지만 정확히 정반대였다. 마치 이 상황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그쪽이 신경 쓰여 오히려 긴장한 건 현서 쪽이었다.
어딘가 묘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인턴을 봤지만, 인턴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하고 고요한 면이 있다고 할까. 왜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르겠는 얼굴.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재주가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 안 해도 될 말이 자꾸 나와 다급하게 교육을 끝내려고 하는 차에 갑자기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 인턴이었다.
“네, 말씀하세요.”
기세 좋게 손을 든 것과는 다르게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대이주 프로젝트, 이 팀에서 진행하는 게 맞나요?
현서의 얼굴에서 순간 여유가 사라졌다. 흐르는 정적 사이로 인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마치 현서가 당황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뒷목과 어깨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마른침을 삼키며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하는데 때마침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턴 온보딩 교육 시간이 곧 종료됩니다. 바로 다음 정보보안 교육이 예정되어 있으니 미팅을 마무리해 주세요. 현서 님, 감사합니다.
“제가 잔소리가 길었나 봐요. 나이 들면 다 이래요.”
애매한 순간엔 대충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게 현서에겐 가장 편했다. 자기 자신을 탓해버리면 상대방은 대체로 거기에 말을 보태지 못하기 때문에 빠르게 대화를 끝낼 수 있다. 인턴들이 해맑게 웃으며 회의실에서 퇴장하고, 현서도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당황한 탓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 비공개 게시판에서 익명으로만 떠드는 프로젝트 이름이 인턴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오늘이 첫날인 인턴에게서. 현서는 이게 무슨 일인지 얼떨떨했다.
대이주 프로젝트는 실체가 없는 소문 속의 프로젝트였다. 그 이름이 게시판에 처음 언급된 맥락은 꽤 오래전 누군가 익명으로 쓴 SF소설의 배경이 현서의 회사와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사이비 종교에 의해 사람들이 현실 세계를 버리고 온라인으로 뇌를 업로드하는 일종의 집단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그 이후 누군가 회사의 이면지 더미에서 같은 이름의 프로젝트가 내부에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회사가 집단 자살을 종용하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당연히 사실일리 만무했고, 어떻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인지 아무도 모르는 채 잊을만하면 괴담처럼 한 번씩 이름이 들려왔다.
혹자는 소설 속 프로젝트와 이름만 같은 뿐 몇 만 명 규모의 직원을 한 사무실에 두기 위해 회사 건물을 해외로 이전하는 프로젝트일 뿐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화성에 데이터센터를 지어 모든 서버를 이전하는 프로젝트이며 자신이 담당자라고 했다. 어쨌거나 프로젝트의 진행 여부는 회사의 높은 분들끼리의 결정할 문제이고 현서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 게 분명했다.
자리로 돌아온 현서가 급하게 젠을 불러 물었다.
“오른쪽 맨 끝에 앉은 분, 혹시 가족 중에 임직원이 있나요? 아니, 임원이 있나요?”
-정수안 님이요? 잠시만요.
젠이 답할 말을 찾는 그 몇 초 동안 현서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안온한 삶을 비웃는 적신호 같은 것이었다. 현서의 경험 상 이런 예상치 못한 시작은 더 예상치 못한 결말을 가져오곤 했다.
-인적사항에 그런 특이사항은 안 보여요. 입사서류를 다시 메신저로 전달드릴게요.
지금은 고요하지만, 쓰나미가 덮칠 거야. 짬에서 나오는 직감에 의해 희미한 비상경보가 들려왔다. 하지만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같은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정민은 게임이든 메타버스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통계자료에 적힌 비현실적인 수치를 보고 기시감이 들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감각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의 작은 게임회사였던 로어에서 개발한 메타버스 서비스 [베레시트]는 론칭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메타버스 서비스 중 가장 높은 누적 이용자 수 자리를 탈환했다. 심지어 철저한 본인인증을 통해 단 하나의 개인 식별 코드를 부여해, 모든 사람은 단 하나의 ID와 캐릭터만 가질 수 있는데도 그 수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베레시트는 흔한 3차원 증강현실이 결합된 트윈 월드 서비스인데, 게임처럼 특별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실제 현실과 비슷한 능력치와 조건으로 무한히 개방된 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하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빌드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에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베레시트 세계는 완전한 리얼타임이었기 때문에 흔한 노가다성 게임으로 인식되었고, 같은 콘셉트의 꽤나 유명한 네모블럭 게임이 이미 있었다. 그래서인지 론칭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정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시작은 10대 학생들이었다.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었던 서비스의 세계관에서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베레시트 내의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에 각각 ‘평등’과 ‘정의’라고 적힌 깃발이 나부꼈다. 때맞춰 배포된 간이 XR앱으로 광화문 광장을 비춰보면 로그인이나 별도 디바이스가 없이도 누구나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평등과 정의라고 적힌 깃발들이 걸려있다는 것은 이 세계 안에서 그보다 중요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베레시트는 평등과 정의에 민감한 젊은 세대를 빠르게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성지순례 오듯 평등과 정의가 당당히 선포된 베레시트 속 광화문 광장을 구경 왔고, SNS에는 수많은 인증샷들이 줄을 지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장이 바뀌었는데, 극보수당이 집권하게 되면서 시청광장에서 매해 열리던 서울 퀴어 퍼레이드를 일체 금지시켰다. 근거는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국민 정서법’이었다.
국민 정서법은 실정법이 아닌 일종의 관습적 불문율이다. 국민들의 정서에 어긋난다면 무엇이든 규제할 수 있다는 주먹구구식의 조항으로 대체로 소수자들을 억압하려는 의도로 악용되어 왔다.
퀴어 퍼레이드 금지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일파만파 퍼져갔다. 미대륙과 유럽 등지에서도 이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부당한 소수자 차별에 함께 유감을 표했고, 극진보당 의원들은 때를 틈 타 자신의 당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며 공식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사건은 그때 터졌다. 베레시트에서 유명 퀴어 인플루언서들에게 서울 퀴어퍼레이드 초대장을 보낸 것이었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대로 7월 10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는 초대장이었다. 의아했던 인플루언서들은 각종 플랫폼에 라이브방송으로 해당 사실을 알렸고,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슬로건 아래 10만 명의 유저가 베레시트 내의 시청광장에 모였다.
원래 퍼레이드에 참여하려던 사람들과 더불어, 현실에서는 아웃팅의 위험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에게 가해진 부당한 억압을 타파하고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사람들까지 모여들며 기존의 퀴어 퍼레이드의 서너 배나 되는 유저들이 참여했다.
퀴어 퍼레이드 때문에 베레시트에 가입하게 된 사람들은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된 베레시트 월드의 디테일한 3D 그래픽에 감탄하고 정의로운 세계관에 감동을 받았다. 인플루언서들의 자발적인 현장 생중계 덕에 게임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생생하게 현장을 볼 수 있었고, 한동안 많은 언론들이 베레시트에 대해 뒤늦은 기사들을 내며 세간이 시끄러웠다. 한 순간에 베레시트 월드는 ‘정의로운 세계’의 표본이 되었다. 갓 등장한 새로운 개념에 규제란 있을 리 만무했다. 게임 내에서의 퍼레이드는 명백히 현 정치권을 비꼬는 목적이었지만 아무런 법적 규제를 받지 않았고, 그 사실에 참여자들은 희열을 느꼈다.
정민은 힘이 빠졌다. 희재와 정민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는데, 그게 관용적인 표현이 아닌 정말 다른 세계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무해졌다. 애초에 닿을 수 없이 벌어져있던 것이다.
정민은 휴대폰 앨범에서 유일하게 즐겨찾기가 되어있는 언니의 사진을 열었다. 희재를 정민에게 떠넘기고 세상을 떠난 언니가 오늘따라 더 원망스러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저물어간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희재가 이만큼 자라기 전에 떠났으니 아마 언니도 모르겠지.
이걸 말해줘야 하나. 현서는 가만히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턴이 아무 언질도 없이 당일 휴가를 사용한 건 또 처음이었다. 아무리 노동자의 권리가 중요하다지만 요즘 세대는 하여간 기본 예의라는 것도 안 배우고 졸업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내 게시판에는 팀마다 채용한 인턴들에 대한 온갖 불만과 에피소드들이 넘쳐났다. 누구는 매번 먼저 퇴근하면서 인사 한 번을 안 한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느 부서는 피드백을 줬더니 엉엉 울며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심리상담센터에 가야겠다고 조퇴를 했댄다. 바로 옆팀에서는 지각한 인턴에게 주의를 줬더니 ‘우리 애 혼내지 말라’며 부모님한테 전화가 왔다고 했다. 게시글마다 하나같이 요즘 애들은 글러먹었다는 조롱 섞인 댓글이 가득했다.
현서도 어릴 적 다 들어봤던 말이었다. 요즘 애들은 기본이 안되어있다며 혀를 끌끌 차던 어른들의 뒤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던 현서도 그놈의 어른이 되었다.
수안은 일 머리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인턴이 하는 일이 별 거 아니어도 막상 해놓은 걸 보면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수안은 끝 마무리가 깔끔했다. 굳이 가르칠 것도 없이 해야 하는 일을 알아서 찾아 해 내고, 보고나 피드백 반영도 스무스했다. 마치 현서처럼. 경력이 수년은 되는 사람 같았다.
그런 수안이 맥락도 없이 ‘당일 휴가’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다른 인턴이라면 눈치가 없네, 하고 넘어갔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안이 그 정도 눈치가 없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휴가 사유는 여성 보건 휴가였다. 회사 남자들에게는 숨겨진 룰이 있다. 여성 보건 휴가는 터치하지 말 것. 그가 휴가를 쓰고 입원을 했던 하와이를 갔던 모른척하는 게 규칙이었다. 자칫 건드렸다가 젠더 이슈로 번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휴가를 승인했지만 당최 찝찝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안이 이 암묵적인 룰을 알고 일부러 보건 휴가를 썼다면.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빠르게 손바닥으로 비볐다.
그보다 거슬리는 건 장실장의 안하무인 태도였다. 장효식은 현서가 있는 데이터 4팀을 포함한 모든 데이터 팀을 총괄하는 장이었다. 처음 관상을 봤을 때부터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인 건 알고 있었는데, 작년부터 비어있던 임원 자리를 두고 혼자만의 치열한 싸움을 시작한 뒤로 성과에 눈이 멀어 이상한 일들을 잔뜩 벌어고 있었다. 물론 그 뒤처리는 팀장들이 떠맡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이게 왜 안 되는 겁니까?
오전 내내 설명했건만 아직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장실장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질문을 했다. 자신의 무지함을 부하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게 한두 번은 아닌 일이었다지만 어째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각 팀에서 쓰는 데이터 구조가 다릅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도 달라서 맵핑이 어렵습니다.”
-그럼 맞추면 되잖아요.
그걸 다 맞추려면 현서가 할 게 아니라 더 상위의 지침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든 이해시키겠다는 의지로 오늘 정확히 열두 번째 반복하려는데, 갑자기 박영훈이 능글맞게 끼어들었다.
-현서 님 비슷한 프로젝트 경험이 있으신 걸로 아는데요. 제가 물심양면 서포트 해드릴 테니 그냥 한 번 해보시죠.
씩 웃어 보이는 얼굴에 거북함이 올라왔다. 정말이지 블라인더를 가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 번은 장실장이 갑자기 모든 데이터 구조를 혁신하겠다며 이런저런 솔루션들로 데이터를 이전시키다 큰 누락이 발생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타 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온갖 억지를 부리다가 여의치 않자 뒤집어씌울 실무진을 물색했다. 그때 손을 들고 나선 게 데이터 1팀의 팀장 박영훈이었다. 막대한 데이터 손실을 무려 자기 팀 인턴이 실수한 것으로 속여 인턴쉽을 종료시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인턴은 정말 자기가 한 실수인 줄 알고 마지막까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박영훈이 거기에 대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다독이며 추천서까지 써줬다는 얘길 듣고 웬만하면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좋네요, 박팀장님.
하지만 장실장이 그렇게 놔둘 리가 없었다. 사사건건 현서를 박팀장과 비교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굴었다. 누가 봐도 영향력 있는 프로젝트는 대놓고 박팀장에게 밀어주고 현서는 뒤처리나 시키기 일쑤였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런 욕심은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봐 봐, 현서 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
-현서 님이 리스크 매니징을 잘하셔서 그런가 봅니다.
둘이 동시에 하하 웃었지만 현서는 웃어주지 않았다. 안 되는 걸 안된다고 말한 죄로 현서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일을 미루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이가 없지만 그러려니 하는 것에 이제 익숙했다. 그렇지만⋯.
-지난번에 4팀 데이터 연동 건 처리도 제가 도와드려서 잘 끝내셨잖아요. 이번에도 같이 잘해봅시다.
그렇지만 현서가 한 일을 안 했다고 하거나, 안 한 일을 했다고 꾸며내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선택에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 그런 식으로 오르내리는 건.
-아 맞아요. 그것도 윤팀장이 헤매고 있던 거 박팀장이 하드캐리해서 성과발표까지 다 도와줬잖아요.
-아유, 하드캐리는요. 실장님께서 방향을 잘 잡아주셔서 한 큐에 끝난 거죠. 같은 부서끼리 서로 돕는 건 당연하고요.
또다시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이 터졌다. 현서는 정말이지 웃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늘 일어났다. 조그마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공을 챙기는 데는 그렇게 민첩할 수가 없었다. 현서가 몇 년째 동료 평가에 똥을 싸질러 놨는데도 장실장이 임원 승진 후보에 오른 걸 보면 역시 여기는 생각한 것보다 오물통인 게 확실했다.
-동료끼리 고맙다는 말은 됐고요. 현서 님, 저 밥이나 한 번 사주세요.
하여간 이 사람은 한두 번 무시해도 적당히 관두는 법이 없이 능구렁이처럼 선을 넘어왔다. 지난번부터 단 둘이 있을 때 은근히 친구 먹으려 드는 게 상당히 거슬렸지만, 현서는 누가 봐도 비즈니스용 미소를 똑같이 얼굴에 띄우고 답했다.
“그러니까요. 한 번 먹을 법도 한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네.”
바보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왕따 당하는 게 속 편했다. 그렇지 않으면 똑같이 바보라는 말 밖엔 안되니까. 또 예민한 윤팀장이라 소문나겠지만 이 바보들 사이에서 같이 헤실대는 건 정말이지 취향이 아니었다.
열두 살이 되던 해 희재는 끔찍이 앓았다. 신종 플루였다. 다른 감염자와 마찬가지로 팬데믹 대응 지침에 따라 국가지정 격리소에 2주 간 격리되어 있었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방. 손 닿는 거리 안에 놓인 물병과 이불, 움직이면 살짝 삐걱대는 간이침대. 낮과 밤이 헷갈릴 정도로 고요하고, 시간은 마치 누군가가 멈춰놓은 것처럼 쉬이 지나가지 않았다. 그 안 갇혀 희재는 낯선 상실감을 느꼈다. 무엇을 잃은 건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격리소 안에는 폐소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베레시트를 즐길 수 있는 XR 기기들이 잘 구비되어 있었다. 리플모듈 위를 걸으며 공원을 산책하고, 학습 콘텐츠를 듣고, 친구들과 만나 유행하는 빵집에도 갔다. 밖에서라면 학원 시간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하루 반나절을 기다려 구매한 베이글 샌드위치는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격리소로 배달이 왔다. 외부와의 접촉이 최소화되고 공간적 제약이 커진 상태로 경험한 베레시트는 이전보다 훨씬 넓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공간을 돌아다니거나 NPC가 주는 단순한 퀘스트를 깨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기자기한 타이쿤 게임에 빠졌다. 통통 튀는 음악에 맞춰 정교한 손맛으로 정신없이 붕어빵을 구워내는 고전적인 타이쿤 게임이었는데, 유저가 베레시트 속 아이템들을 모아 직접 만든 콘텐츠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무를 배어 나온 판자들로 가게를 만들고, 철 원소를 제련해 붕어빵 틀을 만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매달 최고점의 유저에게는 자비로 다이아 스타까지 선물했다. 이런 곳곳의 디테일에서 콘텐츠에 대한 주인의식과 애정이 엿보였다. 희재는 매일 같이 가상의 가게에서 사장이 되어 손님을 받고, 재료를 넣어 붕어빵을 구웠다. 모든 것이 희재의 결정에 따라 움직였다. 어찌나 몰입했는지 그 달의 최고 기록을 경신해 다이아 스타를 받았다. 그걸 팔아 희재도 자신만의 작은 방을 만들었다. 아늑하고 따뜻한 비밀 공간에는 이모가 사준 것들이 아닌 자신이 직접 고른 물건들만 들여놓았다. 가상의 세계 안에 중첩된 작고 단순한 또 하나의 세계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희재의 것이었다.
다이아 스타 하나가 손에 들어오자, 이전까지는 크게 관심 없던 베레시트 안에 유저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만들기 좋은 아기자기한 슈팅 게임이나 퀴즈, 퍼즐 게임이 주였다. 쉬운 콘텐츠부터 섭렵해 나가기 시작해 보물 찾기처럼 꽁꽁 숨겨둔 히든 콘텐츠를 발견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베레시트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 희재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움직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선 느낌이었다. 처음엔 왼쪽 팔, 그다음엔 왼쪽 다리가 ‘어색해’ 졌다.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어색했다. 마치 같은 무리에 있지만 단 둘이 남으면 할 말이 없는 애매한 친구 사이처럼.
‘원래 열두 살은 그럴 나이야.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데 변화는 쑥스럽고 어색해.’
이모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대수롭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은 희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했다. 어색함은 점점 불쾌감으로 번져갔다. 긁어도 긁어도 가려움이 가시길 않았다. 신호가 어긋나고 있었다. 내 몸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내 명령을 수신해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는 느낌. 무언가가 희재의 몸을 빼앗아가고 있었다.
희재는 이 느낌에 빼앗김이라 이름 붙였다.
4주 간 신종플루 격리소에 있다가 돌아온 아이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새 어른처럼 골격이 정돈되고 어딘가 제법 다 큰 티가 났다. 무엇보다 다른 세계를 응시하는 듯 공허한 눈이 정민을 의아하게 했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많이 외로웠던 걸까, 혹시 격리소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별 생각을 다했지만 이내 사춘기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전부터 어딘가 속을 숨기는 일이 잦았던 터라 한 달 새에 변한 마음에 대해서도 쉬이 입을 열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걸 일일이 캐물었다간 더 마음을 닫아버릴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정민이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어쩌면 무언가를 하려는 자체가 희재를 상처 줬을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쳐가자 이제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시대가 너무 빨리 흘러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시대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뜻이겠지.
베레시트가 두 번째 파도를 탄 것도 이 시기와 맞물렸다. 서너 번 연속으로 전염성이 강한 신종 플루에 타격을 입고 또 한 번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베레시트 시티는 격리자들이 베레시트 속에서 격리되어 있다는 느낌 없이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도록 콘텐츠의 디테일을 높였다. 베레시트 안의 영화관에는 실시간으로 신작들을 상영했다. 물론 현실에서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소규모 자본의 독립영화들을 대거 상영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삶에까지 선한 영향을 끼치겠다고 공표한 뒤 바로 교육청과 제휴를 맺어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정규수업 영상도 베레시트 내의 학교에서 볼 수 있게 링크했다. 또 실제로 유명 일타 강사들을 초빙해 베레시트 안에서 과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과외를 받은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베레시트를 권유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학부모가 아이에게 게임 같은 콘텐츠를 강요하는 것은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개 중에는 이미 저명한 사회학자가 스스로 베레시티즌이라고 아웃팅을 하며 쓴 논문도 있어 화제가 되었다.
동시에 자회사인 로어바이오에서 급속으로 개발한 신종플루 치료제 알파 플루를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한 덕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바이러스를 종식시킨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 로어는 국민기업으로 성장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베레시트는 더욱 완벽하게 현실과 게임세계를 동기화했다. 현실세계의 유명한 디저트카페나 음식점들과 콜라보하여 베레시트 내에서 음식을 사면 자동으로 배달이 와 음식을 즐길 수 있게 연동시켰다. 아바타에게 입힌 옷은 똑같은 실물이 곧장 집으로 배송되었다. 완전히 통합된 현실이었다.
베레시트는 단순한 유희로 소비되기를 거부했다. 캐치프레이즈로 ‘현실보다 나은 현실’이라는 카피를 내건 이후로 말 그대로 현실과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더 편리하고 즐거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들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모든 것을 로어코인으로 결제하는 재화 시스템을 도입해 10대 유저들을 열광시켰다. 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직접 돈을 벌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싫어할 아이들은 없었다. 격리 대상 청소년들이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어른이 없는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자, 일부러 신종플루에 걸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심지어는 격리자에게 돈을 내고 몰래 접촉하는 사례들도 생겼다.
이런 결제 시스템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미 베레시트 내의 아이템과 로어코인이 오프라인에서 현금 거래 되고 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베레시트를 만든 주식회사 로어가 개발한 블록체인 덕이 컸다. 이미 서비스로 견고한 콘크리트 유저를 확보한 로어에서 만든 코인은 시장에 나온 어떤 가상화폐보다 안정성이 높았고, 고정 유저들, 오프라인과의 연동, 실시간 환금까지 보장되어 있었다.
코인을 발행했던 초기, 로어 주식을 사고 1년 간 배당금 대신 받은 로어코인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간증글이 게임 게시판에 올라오며 로어코인은 세간의 관심을 얻었다. 이 흐름을 틈 타 금융소득을 보려는 사람들, 불법적인 자금을 세탁하려는 사람들, 인도의 신흥 부자들이 몰려들며 코인은 소위 떡상했다.
전용 디바이스와 모션 센서가 발전하며 베레시트는 날개를 달았다. 거기에 실시간 영상 생성 AI 모델이 경량화되며, 서비스를 전 세계 6G 망이 닿는 모든 곳으로 확대해 베레시트는 시티에서 월드가 되었다. 일찍이 시티즌이었던 유저들은 계급이 오르며 로어코인을 상금으로 받아 현실세계에서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베레시트에서의 성과가 실질적인 부로 이어지자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보다 월드 속 노동을 더 선호하는 사람의 비율이 대폭 상승했다. 대부분의 사회현상이 그러하듯 이해할 수 없는 새로움은 이름을 얻을 때 자리 잡았다. 투잡으로 월드 안에서 노동을 하는 일명 ‘스퀘어드’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현실에서도 일을 해 돈을 버는 동시에,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XR기기를 착용한 채로 생활하며 로어코인으로도 수익을 내는 제곱벌이를 했다. 심지어는 경량화된 XR 디바이스로 회사에 앉은 채 게임에서 노가다를 돌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일부 보수적인 회사들에서 이를 금지시키려다가 인재들이 한꺼번에 이탈하는 바람에 전례 없는 셧다운으로 큰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이렇게 베레시트 월드가 나날이 발전하고, 유저가 전 세계 인구의 30%를 넘을 때까지 아무런 이슈가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실제와 너무 유사한 세계의 모습과 캐릭터들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너무 넓은 서비스 범위로 국민들이 월드에 과몰입할 위험성이 높다는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럼에도 베레시트가 월드가 클린 하게 유지되었던 것은 게임 속 세상의 엄격한 법률 때문이었다. 제약이 거의 없는 일반적인 게임들과는 다르게 베레시트는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법으로 정의하고 처벌도 강행했다. 실제로 법조계 출신의 기획자들이 현실 국가들의 법안을 벤치마킹해 섬세하게 법률을 구성했고, 시대감수성에 어긋나는 법들은 수정하고 평등과 정의가 메인이 되는 베레시트만의 헌법을 구축했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흔히 사람들이 중독되는 도박성, 사행성 등을 점점 더 배제해 나갔다. 서비스가 도박이 아닌 하나의 일상처럼 스며들기를 추구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의 진짜 세계로 인정받기 위해 많은 캠페인을 시행하기도 했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베레시트는 대형 게임 중 서비스하는 내내 단 한 건의 파산, 자살과도 연관되지 않은 유일한 메타버스 서비스로 등극되기도 했다.
연구실에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며 정민은 이런 후행 분석들은 다 스스로의 후회를 잠재우기 위한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희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자신 때문인 것 같다는 기분을 견딜 수 없어 자꾸만 학술적인 탐구에 진을 빼고 있다는 걸. 그 와중에 희재를 설득할 단서는 단 하나의 실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정민을 뒤덮었다. 10년 전, 이혼을 만류하던 어른들도 지금 이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는 세대 차이라는 말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 말은 절망이었다.
정민이 현서와 이혼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가장한 우려와 비방을 보내왔다. 특히 정민의 부모님은 머리에 수건을 싸매고 반대를 외치며 드러누웠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혼을 흠으로 본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자는 손가락질 대상이라는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오죽했으면 정 이혼하려면 희재를 다른 집으로 보내라는 말도 서슴없었다. 그들에게는 젊은 딸의 이혼이 그만큼 우려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보수적 권위가 개인의 선택을 거침없이 평가하던 때. 물론 지금도 한국의 사정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다지만, 국민 정서법이라는 관습으로 퀴어 퍼레이드를 금지시키는 것만 봐도 15년 전과 똑같다. 하지만 정민은 그때 자신이 내뱉었던 선택이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그 말을 뱉을 때의 간절함과 들을 때의 공포가 이제와 이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하늘을 보자 새벽인 것처럼 날이 뿌옇게 흐렸다. 파랗게 맑은 하늘을 본 게 언젠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기억하는 그 파란 하늘도 합성된 현실이었던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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