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03

보물찾기

by melina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이 실제로 눈앞에 있으면 언제나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익숙한 평면의 얼굴 안에서 전혀 몰랐던 곡선을 발견하곤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고 주사율이 높은 스크린이라도 2D로 보는 것과 3D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몰입도도 이해도도 달랐다. 그러니 번거롭게 이런 오프라인 교육도 진행을 하는 거겠지.

“반가워요. 오늘 특별한 건 없고, 비싼 회사 건물 구경하고 맛있는 밥 먹으면 끝나요.”

화면에는 렌더 되지 않았던 뽀송한 솜털이 생생하게 보였다. 갓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이라 그런가 확실히 화장을 해도 앳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껏 들뜬 탓인지 인턴들의 집중도가 최고조였다.

“지금 있는 곳이 메인 로비고, 아시다시피 로어의 기술을 총합해서 만든 미디어 아트 월이 있어요. 저기부터는 출입 권한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요. 입사하실 때 3D 스캔한 얼굴 데이터를 등록해 놨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시면 돼요.”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동으로 세 명 앞의 게이트 도어가 열렸다. 현서가 미리 신규 입사자 투어를 예약해 놨기에 지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계단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다지 놀라운 기술이 적용된 것도 아닌데 인턴들은 무언가 자동으로 동작할 때마다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저층부의 넓은 라운지와 식당을 지나 XR 연구 층인 7층으로 향했다.

“7층에서는 로어에서 지금까지 개발한 XR 디바이스와 기술 데모들을 전부 체험해 볼 수 있어요.”

인턴들은 고글 형태, 안경 형태, 렌즈 형태 등의 옛날 VR 기기들을 요리조리 만져보며 즐거워했다. 그새 친해진 건지 셋은 반말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현서는 앞장서는 자신을 병아리처럼 해맑게 쫓아오는 인턴들을 보며 문득 수안 생각이 났다.

“세 분이 많이 친해지셨네요.”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셋은 까르르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저희끼리 따로 자주 만났어요.”

“혹시 정수안 님도 같이 만나세요?”

순간 셋이 서로를 마주 보며 대답할 말을 고르는 듯 정적이 흘렀다. 역시 수안은 이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사실 수안 님은 실제로 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현서의 의아한 표정에 한 명이 말실수를 했다고 느꼈는지 무마하기 위한 말을 덧붙였다.

“일할 때는 수안 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세요.”

맞아 수안 님은 모르는 게 없어, 하며 나머지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더 물어도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할 것 같아 현서는 대화를 대충 마무리 지었다.

로봇 연구실과 현서가 일하는 AI 데이터 팀 사무실까지 소개를 해주자 주어진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만 남았기에 빨리 자리로 돌아가 쉴 생각에 현서도 조금은 들떴다.

“젠을 소개해줄게요.”

마지막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지하 9층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갔다. 우주선의 출입문처럼 생긴 금속 차폐문 앞에 서자 청중의 기대가 한껏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여기가 젠의 방이에요.”



휴대폰 NFC로 보안을 인증하고, 2차로 홍채인식까지 하자 굳게 닫혔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보안 스크린 너머로 웅장한 굉음을 내며 구동 중인 젠의 모습이 드러났다. 젠은 규모를 짐작할 수조차 없이 깊은 어둠 속에서 강렬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기계적으로 정리된 렉에 셀 수 없이 많은 서버가 가득 꽂혀있고, 그 끝에 한눈에 담기지도 않는 크기의 슈퍼컴퓨터가 실루엣만을 얼핏 드러내고 있었다. 각 유닛들을 연결하는 정갈하게 정리된 전선 다발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차갑게 빛나는 LED 표시등의 푸른 불빛이 생명의 신호처럼 점멸하는, 이게 바로 젠이었다. 거대한 냉각 시스템과 쿨링 팬들이 회전하는 소리가 커다란 괴수의 코골이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 데시벨에 잠시 귀가 멍해져 어지러워졌다. 초 단위로 업데이트되고 있는 대시보드의 수치들이 오늘도 젠이 정상 상태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자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열일 중이에요.”

현서가 던진 농담 뒤로 웃음소리가 따라왔다. 문득 현서도 새삼스러웠다. 매일 동료처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젠의 실체가 엄청난 규모의 컴퓨터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교한 음악처럼 들려오는 반복적인 소리 신호들이 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생물의 구조와 메커니즘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사실 이건 젠의 반쪽이예요. 다들 아시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저 위에 있죠.”

모두가 고개를 들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새까맣던 천장의 스크린이 미묘하게 밝아지며 우주 공간처럼 깊이가 생겼다. 그 위로 초고화질 3D로 렌더링 된 수십 개의 인공위성이 줄을 지어 날아들어왔다. 저항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들 사이를 통과해 마지막 인공위성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안은 지금 있는 데이터센터처럼 수많은 렉과 전선 다발, 점멸하는 푸른 불빛들로 가득했다.

AGI의 탄생은 기술 한계로 인해 불가능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지만 모두의 예상보다 기술이 한 발 빨랐다. 위성 기술이 발전하며 천문학적인 발사 비용이 급감했고, 우주의 극저온 환경이 데이터 저장 장치의 열 방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설이 기정사실화되며, 나머지 기술 문제들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최우선 과제로 해결되기 시작했다. 태양광 패널 효율을 극대화시켜 에너지 자급자족 시스템을 만들고, 지상과 인공위성에 데이터를 분산 저장해 통신 레이턴시(지연) 문제를 해결했다. 젠이 아무런 딜레이 없이 실시간으로 구동될 수 있는 핵심은 이 분산 컴퓨팅에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렇기 때문에, 젠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어요. 회사 안에서 도와줘 젠, 이라고 말하면 어떤 형태로든 젠이 달려올 겁니다.”

현서의 트리거 워드에 반응한 주행형 로봇이 스크린에 익숙한 얼굴을 띄운 채 다가왔다. 오차 없이 친절한 얼굴. 현서는 간혹 이런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사실을 아무 의식 없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자신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불과 20여 년 전을 떠올리면 AI도, 로봇도, XR이나 메타버스 같은 것들도 다 거품으로 취급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주식을 잔뜩 사놨어야 했는데.

“여기부터는 젠이 안내를 도와줄 거예요.”






열세 살 무렵 희재는 보물찾기 콘텐츠에 몰입해 있었다. 희재는 현실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했지만, 베레시트에선 찾는 재미를 느꼈다. 작은 숲을 뒤지고, 강을 따라 길을 찾고, 버려진 건물의 다락을 열어보며 그 안에 숨어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을 느꼈다.

희재는 점점 자신의 몸이 베레시트에선 불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물이었다. 진짜 손을 쓰지 않아도 나무 밑을 팔 수 있었고, 진짜 뛰지 않아도 보물상자에 닿을 수 있었으며, 심지어 말하지 않아도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럴수록 몸의 불쾌감은 커져만 갔다.

베레시트 안에는 아무도 침입에 성공한 적이 없는 지하 성전이나, 비밀 포탈로만 들어갈 수 있는 혼자만의 섬처럼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숨겨진 2차 세계가 끝없이 존재했다. 특히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이 자자한 맵들은 희귀 아이템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워 희재는 도전조차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쌓아 올린,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자체에 매료되어 그 주변을 내내 맴돌고는 했다. 열세 살의 봄. 그런 것에 매력을 느낄 나이였다.

희재의 관심은 점점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독특한 아이템들까지 번졌다. 옷이나 머리 같은 스킨들은 용돈을 모으면 하나씩 살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귀한 아이템들은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일수록 희귀도가 높았고, 그만큼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어느 날 유저 게시판에 한 히든 콘텐츠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한 유저가 베레시트에 대한 팬심으로 온갖 희귀한 유료 아이템을 체험할 수 있는 맵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콘텐츠 입장도 무료였다. 늘 용돈이 부족한 희재에겐 희소식이었다.
‘정해진 좌표에서 딱 3초간 멈춰 서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아이템 성전의 비밀 포탈이 열림.’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정확히 지시에 따라 멈춰 선 순간, 디스플레이 창이 깜빡이며 새로운 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넘어서자 붉은 안개로 뒤덮인 드넓은 성의 내부 공간이 펼쳐졌다. 몸이 중력을 거스르며 두둥실 떠올랐다. 희재는 처음으로 온전히 자유롭게 땅을 벗어나는 느낌을 경험했다. 중력이 없는 공간. 마음껏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기분은 몸과 얽혀있을 때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쾌감을 선사했다.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몸의 경계면이 희미해졌다. 손끝이 흐려지고 발이 사라진 그 자리엔 뿌옇게 흐린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곳엔 오로지 영혼만이 존재한다.]


그 말이 꼭 자신의 몸에게 하는 말 같아서 희재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공간의 기류를 따라 희재도 멍하니 흘러가며 새로운 경험들을 만끽했다. 모습을 숨겨주는 투명 실크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부드러운 질감의 깃털에 휩싸였다. 그러다 일순간 액체가 되어 바다를 향해 와르르 쏟아지고, 이내 파도가 되어 포말을 일으키며 모래를 간질였다. 고무공 대신 색색의 사탕으로 채워진 풀에 풍덩 빠지기도 했다. 이끌리듯 투명한 유리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처음 경험하는 행복감에 온몸이 간질거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공간 속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마침내 영혼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렇게 산다면. 더 이상 몸이 주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미래가 선명히 상상되었다. 희재는 아주 조용히, 점진적으로 몸이라는 틀을 지워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세계가 뒤흔들렸다. 재난 폭탄. 세계에 가짜 지진과 화재를 일으키는 유료 아이템이었다. 말로만 들어봤던 아이템이 가동된다는 사실에 흥분된 마음을 비웃 듯, 진짜 현실인 것 같은 생생한 파열음에 소름이 돋았다. 성전이 무너지며 쏟아져내리는 블록들을 피할 재간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돌무더기 틈에 기어들어갔을 때, 갑자기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포탈이 열렸습니다.]


또다시 히든 포탈이라니. 유저 커뮤니티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정보였다. 메시지를 터치하자 붉은빛의 광휘와 함께 포탈이 열렸다. 이걸 통과하면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성전의 깊숙한 곳에 도달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희재는 흥분에 가득 차 그 너머를 향해 작은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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