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04

금붕어 키우기

by melina


-항상 수고가 많아요, 젠.

인공지능 속에,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2000년대 SF영화처럼 인간보다 똑똑해진 로봇이 인간을 습격해 올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장효식이 그랬다. 오늘도 얼굴엔 가식적인 미소를 한껏 띄운 채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는 게 그 반증이었다.

“하여간 저 기계적으로 웃는 얼굴만 보면 역하다니까.”

우스꽝스럽게도 그 두려움은 급기야 인공지능의 뒷담화를 하는 데까지 발전됐다. 훗날 인공지능의 습격에 대비해 겉으로는 좋은 관계를 맺어두고, 뒤에 숨어 욕을 한다는 발상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실장은 거의 병적으로 규칙을 지켰다. 젠 앞에서만은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친절히 대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온갖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 인터넷 망까지 모든 데이터를 젠이 수집하고 있는 건 상관없다 생각하는 건지. 심지어 지금 화상회의실에 켜져 있는 스피커에 대고 하는 말들을 젠이 들을 수 있다는 건 진정 모르는 듯했다.

-윤팀장, 어제 요청한 전략 보고서는 언제 마무리됩니까?

“네, 메신저로 보내드렸습니다.”

역시나 뭘 보내든 제대로 읽지를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의 통제 아래 있다는 증거이자, 상부에 보고할 때 있어 보이는 문서를 수집하는데만 혈안이었다. 그놈의 문서, 문서. 그 많은 문서 데이터는 또 젠에게 요약, 분석을 시키고 있을 게 뻔했다.

-참, 실장님. 이전에 진행하던 미각 패턴 데이터 프로젝트에 대해 요즘 안대표님 쪽에서 관심이 자자하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때 박영훈이 딸랑이를 들고 나섰다. 장실장이 가장 눈치를 보고 있는 안대표를 들먹이며 바람을 넣는 것이었다.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게 분명했기에 현서는 말없이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요?

역시나 장실장은 미끼를 물었다. 심부볼에 파묻힌 입꼬리가 수직상승하는 걸 보니 확실했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불길한 그림이 그려졌다. 미각 패턴 프로젝트는 현서가 5년 전부터 주장했던 핵심 프로젝트였다. 아무도 눈여겨본 적은 없지만, 현서는 미각구현 만이 다음 게임 체인저가 될 거라고 확신해 왔다. 현서가 재직 중인 데이터 팀은 유저들이 베레시트를 플레이하며 생기는 데이터들을 모으고 정제하는 업무가 메인이었기에 현서는 따로 시간을 들여가며 미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했다. 오픈소스 데이터들을 모아 연구 기획을 보고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만 한 번도 장실장이 귀담아들은 적은 없었다.

-네. 제가 대표님 지인한테 들은 이야기라 확실합니다! 이거 꼭 저희 데이터 부서에서 해야 합니다.

-그럼 박팀장 쪽에서 해보면 어때요? 필요하면 인력 붙여드리고요.

지나치게 스무스하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걸 보니 이미 둘이 한 번 이야기를 나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이미 밑바탕이 그려진 그림이다. 눈이 마주치자 박영훈이 씩 웃었다. 하여간 비위가 조금만 안 좋았다면 반드시 아까 먹은 걸 게워내고 말았을 것이다. 현서는 몰래 포커페이스 아이템을 활성화했다. 회사에서 금지하는 걸 알지만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역겨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침 4팀 현서 님이 리서치하신 게 있길래 저도 살펴봤는데, 역시 연구원 출신이셔서 그런지 디테일하던데요. 현서 님 의견은 어떠세요?

어쩌고 말게 뭐가 있을까. 이미 발 디딜 모든 곳에 덫을 깔아 두고 기다리는 꼴인 걸. 하겠다고 하거나 하지 않거나 결국 성과는 쏙 빼앗기고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할 게 뻔했다. 장실장과 박팀장의 얼굴이 동시에 반지르르 빛났다. 정말이지 포커페이스 필터에게 감사하는 현서였다.



회의는 둘의 의도대로 흘러가다가 흐지부지 끝이 났다. 그 이후의 일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금 현서의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회사 일은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돌아갔고, 주어진 일들을 쳐내며 며칠을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알게 된 사실은 사내 불륜 커플의 밀회 장소가 옥상 정원에서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였다. 수안은 눈에 띄지 않으려는 듯 실수 하나 없이 일을 처리해 냈다. 그게 더 눈에 띈다는 건 미처 계산하지 못한 듯했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회사 앞엔 매일같이 무언가를 소리치는 사람들이 줄 지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마다 피켓을 들고 무언가를 외치고는 있는데, 글씨는 번지고 목은 쉴 대로 쉬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무엇을 금지하자는 건지,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하지는지, 건물 안의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현서는 자신도 목이 쉬도록 외치고 싶은 게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젊은 패기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던 때가. 그때는 어딘가에 모든 걸 걸어버리기에 삶이 꽤나 길고 몸은 금세 나이 든다는 걸 몰랐다. 이제는 선택의 분기점에서 내리는 결정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도, 실패를 온전히 짊어질 만큼 자신이 크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현서 님, 금주 인턴 평가서 제출해 주세요.

불쑥 젠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여간 이놈의 회사는 잠시도 사색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현서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인턴들이 업로드한 결과물을 검토하기 위해 사내 위키에 접속했다.

인턴 프로그램이 큰 차질 없이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수안에게 느꼈던 기시감을 깊이 탐구할 필요는 없었다. 오랜 면접 경험으로 현서는 사람에 대한 전투력 측정이 꽤나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엄한 기대도, 실망도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대충 몇 마디를 나눠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 이미 결말을 아는 책은 손이 안 가는 것처럼, 현서에게는 뻔히 눈에 보이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그래도 간혹 유별나게 전투력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보태줘도 잠재력이 빛을 발했다. 그런 사람들과 짧게나마 교류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수안은 좀 달랐다. 정확히는 저쪽도 전투력 측정기를 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 거 보다 좋은 최고급 신제품으로. 속수무책으로 낱낱이 탐색당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토록 신경이 쓰이는 걸까.

자료가 이리저리 뒤섞여 아무래도 문서 통합이 필요해 보였다. 새로운 템플릿을 여는 버튼을 누르려다 다른 카테고리를 잘못 눌러 펼쳐진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가득했다. 정수안. 또다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게 이런 걸까. 클릭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데이터 A팀, B팀, 신규 데이터 TF팀, 데이터 법무팀···. 여기도, 저기도. 온통 정수안의 이름이 남아있었다.

수안이 모든 사내 위키를 틈만 나면 뒤지고 다닌 것이다. 그것도 흡수하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은 시간 텀이었다.

급기야 식은땀이 흘렀다. 사내 어떤 페이지를 들어가도 수안의 열람 기록이 있었고, 권한이 없는 몇몇 페이지에서는 권한을 요청했다가 취소한 흔적도 있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한 날짜에는 수안이 휴가를 썼던 날도 있었다. 단순하게 봤다면 열정이 많다고 생각했겠지만, 수안이 열람한 기록을 모아보면 밤을 새도 다 보기 어려울 방대한 양이었다. 게다가 그 기록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어떤 의도가 윤곽을 보이는 것도 같았다. 확실했다. 수안은 이곳을 낱낱이 탐색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현서 님.

현서가 뒤로 주춤 물러났다. 수안의 메시지였다. 현서를 주시하고 있다가 이제 그만하라는 듯이 경종을 울린 것일까. 원시인들이 막다른 길목에서 맹수를 마주쳤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도망칠 수도 물러날 수도 없어 메시지에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턴 정수안입니다. 잠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4시에 초대 보낼게요.

현서가 답을 보내는 사이 수안이 재빨리 회의 링크를 보내왔다.

-여기서 봬요. 패스워드는 [901 df15 h] 예요.

아무래도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커다랗고 요란한 것이 굴러와 잔잔한 수면을 때리는 것처럼.






가상 회의실에 접속하며 문득, 수안이 한 번도 출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수안과의 만남은 늘 가상 회의실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회사이지만 새로 입사하면 필요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한두 번은 출근을 하게 되었다. 지난 인턴 오프라인 교육 때 갑작스레 여성 보건 휴가를 사용했던 것이 생각났다. 만만치 않게 영악한 친구임이 틀림없다. 이 면담도 무언가 의도를 감추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일이세요?”

긴장한 현서와는 정반대로 말간 수안의 얼굴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새까만 눈에 반짝, 빛이 지나갔다.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동안 현서는 머릿속으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검토했다.

가장 일반적인 건 수안이 혼자 수습하기 어려운 사고를 쳤을 경우. 현서는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었다. 다시 수집할 수 없는 중요한 데이터를 날려먹거나 예산 집행에 0을 하나 더 붙였다던가 하는 복구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르고는, 혼자 수습해 보려 시간을 끌다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현서에게 눈물로 고백하던 후임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왜 이제야 말하냐’고 묻지도 못할 만큼 꺼이꺼이 울어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걸 탓할 마음도 없었다. 자신이 야기한 결과를 온전히 책임지려는 인간을 현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또 하나 유력하게 의심되는 케이스는 수안이 경쟁사의 산업 스파이인 경우였다. 당연히 곧장 사내 인사팀과 법무팀에 신고를 할 것이고, 채용 과정 중에 수안을 도운 정황이 있는지 감사를 받겠지만 문제 될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운 나쁘게 꼬투리가 잡혀 인사팀에 밉보이거나 징계를 받게 되는 건 말 그대로 통제 밖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봤자 팀 이동 정도.

정말 그럴 리 없겠지만 수안이 외계인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현서는 헛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남다른 구석이 있다지만 어차피 거기부터는 먼저 알았다고 한들 대응이 되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때 무언가 결심한 것처럼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수안이 입을 열었다.

-현서 님 팬이에요.

응? 팬이라니, 살다 살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잘못 들은 건가, 되물으려는 차에 수안이 말을 가로챘다.

-정말, 정말 오랫동안 여러 번 현서 님을 관찰했어요. 꼭 만나고 싶었어요.

소싯적부터 인기가 꽤나 있던 현서였지만, 이건 또 너무 급전 개였다. 수안이 팬이라고 고백하는 건 현서가 상상한 최악 중의 최악 시나리오에 손톱만큼도 등장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팬심은 좋은 감정이니까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현서는 고개를 휘저으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 2000년 대 감성의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이 상황이 해석이 되지 않았다.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를 어디서 어떻게 지켜봤다는 거야, 대체.”

수안이 머쓱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대학생인데. 눈빛이 예리하게 반짝일 때는 전혀 다른 사람 같기도 했다.

-막상 말하고 나니까 좀 부끄럽네요.

폭탄 발언을 해놓고 대책 없이 쑥스러워하다니. 만만치 않은 또라이구나 싶어 현서는 한숨이 나왔다.

-제가 해야 할 얘기가 참 많은데요.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계획했던 거에서 이미 많이 벗어난 상태라.

당신이 모르면 어떡하라는 거야. 수안은 계속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처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현서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자꾸만 현서의 발목을 붙잡았다.

“수안 님, 나가서 커피라도 사 오시고 나중에 다시 얘기할까요? 제가 또 다음 회의가 있어서⋯.”

-아, 이거부터 이야기하면 되겠네요. 저는 커피를 마실 수가 없어요. 회사에 나갈 수도 없구요.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고백을 받는 걸 고백 공격이라고 한다던데, 현서는 그동안 그 말이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에?”

-저는 몸이 없으니까요. 정확하게는 버린 건데⋯.

이제 와서야 그 표현이 백 번 옳았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말 그대로 벙쪄서 현서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수안의 자뭇 진지한 얼굴을 보니 말문이 막혀 뭐라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사람일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만, 이렇게까지 멀리 튈 것까지 대비하지는 못했는데.

- 저는 2년 전 로어에서 시도한 마인드 업로드를 통해 특수 클라우드에 업로드된 ‘디지털 이주민’이에요. 뇌를 통째로 스캔한 데이터를 디지털 모델로 변환해서⋯. 그니까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만 존재하는 인간이에요.

수안에게서 발화되는 모든 단어들이 현서의 예측 밖이었다. 통제를 벗어난 테트리스처럼 수안이 쏟아내는 말들이 속수무책으로 쌓여갔다. 현서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정신을 붙들고 조각들을 알맞은 홈에 끼워넣기 위해 애써보는 것뿐이었다.

-이주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데이터 그 자체를 흡수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시지각을 통해 학습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물리학, 컴퓨터공학, 뇌과학, 우주과학 등 그동안 궁금했던 지식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어떤 ‘진실’을 알게 된 거예요. 모든 이주민 데이터가 거품처럼 사라질 거라는 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손 쓰지도 못한 채로.

“아니 잠깐만.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듣긴 했는데, 그게 다 저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

수안의 말들을 대체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떠올랐다. 대이주 프로젝트. 그게 정말 실존했다는 건가. 수안이 현서를 빤히 쳐다봤다.

-현서 님께 도움을 청하는 거예요. 현서 님은 언제나 옳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니까요.

동시에 현서는 그동안 수안을 볼 때마다 은근히 신경 쓰이던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수안은 정민을 닮았다. 정확히는 그 시절의 현서와 정민을 떠오르게 했다. 무언가 창발 하는 것처럼 둘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반짝이던 시절. 작은 손을 맞잡고서는 같이 무엇이든 해내보자던 그때의 마음이 오래된 몸 안에 어딘가에 남아있긴 한 듯이 자꾸만 수안에게서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진실이란 게 뭐고 대체 어떻게 도와 달라는 건지도. 아니 그렇다고 도와주겠다는 건 아니에요.”

당황하니까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렇게까지 당황하고 긴장한 게 얼마만의 일인지. 어쩐지 묘하게 들뜬 것처럼 몸에 열이 올랐다. 그 사실에 가장 당황한 건 현서였다.

-자세한 건 차차 말씀드릴게요. ‘어떻게’는 같이 고민해 봐야죠.

그렇다고 수안의 꿍꿍이에 휘말릴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단지, 어떤 말을 할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아서 그 뒷얘기를 듣고 싶어 졌을 뿐이었다. 절대, 절대로 그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안은 그 작은 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금붕어 키우기. 기억 안 나세요?

금붕어 키우기? 어딘가 익숙한 단어의 조합을 입 속에서 가만히 굴려보던 현서의 눈이 일순 커졌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설마 그 이상한 콘텐츠?”

-마지막 문제까지 다 푼 사람, 현서 님 한 명 밖에 없어요.



그제야 모든 기억이 선명해졌다. 어항 안을 빙글빙글 도는 금붕어 그림. 베레시트 게임 내에 소문만 떠돌던 히든 콘텐츠 [금붕어 키우기]. 그게 수안이 만든 장치였던 것이다.

베레시트 개발자나 운영진이 만든 게임은 아닌 것 같고, 유저가 직접 만든 미니 게임인데 아무도 엔딩을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현서는 메인 콘텐츠보다 그런 소문만 무성한 히든 콘텐츠에 더 끌리는 타입이었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콘텐츠 발동 조건은 재미가 있다기보다는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었다. 수안에게 느꼈던 기시감처럼.

베레시트에서 N대학 901D 호실 맨 안쪽 캐비닛을 열면 작은 금붕어 어항이 있었고, 어항 안을 빙글빙글 도는 금붕어를 1시간 이상 응시하면 그제야 시작되는 미니 게임이었다.

“엔딩 시퀀스가 없어서 실패한 줄 알았는데.”

-만나러 왔잖아요.

트롤리 딜레마처럼 극적인 상황이 계속 주어지고 유저가 선택을 해야 하는 방식의 콘텐츠였다. 그것도 올바른 선택을.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롤리 기차는 운명적으로 레일 위에서 일하고 있는 다섯 명의 인부를 치게 되어있다. 현서가 레일변환기 버튼을 누르면 트롤리는 방향을 바꾸어 다른 레일 위의 한 사람을 치게 된다. 누군가는 당연히 다섯 명이라고 답할 문제였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만약 한 명의 어린아이와 다섯 명의 살인자라면? 게임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딜레마와 맞닥뜨린 현서는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야 하거나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그의 선택에 따라 어떤 세계가 무너지거나 누군가 죽고, 심지어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끼면서 현서는 몇 날 며칠 동안 문제를 풀었다. 단 한 번이라도 ‘정답’을 맞추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수 없이 많은 문제를 푸는 동안 단 한 번도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 또한 수안이 의도했던 걸까.

-제가 엔딩이에요.

“그래서 나는 그 답을 몇 개나 맞힌 거야?”
-그건 비밀이에요.

수안이 살짝 미소 지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얼굴이었다. 이 얼굴도 2년 전 이주할 때 정밀 스캔한 결과물이겠지.
-어쨌든,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은 현서 님이 유일했어요. 게다가 로어게임즈의 AI 데이터 팀 재직자라니, 완전 운명이었던 거죠.

“우리 팀은 그냥 데이터 수집, 전처리하는 팀이야. 대이주 같은 그런 거창한 프로젝트를 하는 게 아니라고.”

-에? 아니, AI 데이터면 무조건 여기 아니에요?

정말로 당황한 듯 수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회사라는 곳은 그럴싸한 팀 이름과 직책을 쥐어주고는 정작 성과가 나는 일은 윗분들끼리 해 먹기 마련이었다. 잘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홀랑 빼앗아가고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할 프로젝트는 아래에 떠넘기곤 했다. 뭐든 아는 것처럼 굴더니만 이런 걸 몰랐다니, 아직 애는 애였다. 이놈의 회사, 담당자 돌리기가 예술이네. 수안이 중얼댔다. 안 됐지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건 좀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능구렁이 같은 회사원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일을 복잡하게 꼬고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제가 현서 님 만나려고 공채며 인턴을 몇 번이나 지원했는지 아세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매번 가짜 신분 만들어 가면서.

수안의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흔들려 현서는 질겁했다.

“정수안 씨 지금 울려는 거야? 절대 안 돼! 무조건 참아!”

-제가 왜 울어요. 게다가 기껏 들어왔더니 뭐? 체험형 인턴이 뭡니까, 정말! 3개월 밖에 시간이 없는 거잖아요. 그럼 언제 친해지고 복선 깔고 하냐구요. 이렇게 들이받는 수밖에.

“그래도 이건 진도가 너무 빠르잖아!”

수안이 홱 고개를 들어 현서를 똑바로 마주 봤다. 눈이 유난히 더 반짝거렸다.

-그럼 앞으로는 천천히 말할 테니까, 도와주시는 거죠?

“아니? 진짜 아닌데? 그럴 생각 없어!”

현서가 거의 억울한 듯 손사래를 쳤지만, 수안은 자신의 제안을 무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얼굴에 기대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가진 기대가 얼마나 환하고 밝은지. 그게 얼마나 대책 없는 것인지도. 하여튼 꽤나 골치 아픈 인턴이 골치 아픈 일을 들고 왔다는 건 확실했다.


현서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수안에게 말을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꽤 나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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