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나와 내가 아닌 것
당신은 또다시 트롤리 앞으로 끌려왔다. 애석하게도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이 트롤리 경로에 누워있다. 그들의 행복은 이 세상에 없다. 트롤리는 가쁘게 채찍질을 하며 묻는다. 당신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가.
그런데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게다가 트롤리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관제소에 앉은 사람도 이미 결심을 마친 채다. 이들을 설득해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렇다고 그저 트롤리에 치이게 두는 것은 또 옳은 것인가.
짙은 밤하늘 아래 작은 오두막이 고요한 빛을 뿜고 있었다. 풀을 흔드는 바람도 소리를 내지 않아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 들었다. 희재는 빛에 홀린 듯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다.
허름한 외관과는 전혀 다르게 꿈결같이 흰 공간이 펼쳐졌다.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꿈속에 숨어 들어온 것처럼 낯설고 생경했다. 물방울이 방울 져 날아다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어떤 음악이 흐르고 있는 듯했다. 양 옆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선반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저마다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희재는 물방울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공간을 구경했다.
세밀하게 세공된 소품들은 실제 같기도, 현실의 복제품 같기도 했다. 나무를 깎아 만든 회전목마 오르골, 작은 얼음 사과, 유리로 빚어진 아름다운 식물들을 지나며 점점 깊은 곳으로 옮겨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만지지 마.
단호한 목소리에 놀란 희재가 허리를 숙여 구경하던 예리하게 컷팅된 금속 재질의 타로카드 위로 엎어질 뻔하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어⋯, 미안.”
붉은 머리칼의 소년. 희재는 재빨리 정보를 띄워보았다. NPC도 유저도 아닌 존재. 희재는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름 란이 알 수 없는 유니코드로 채워져 있었다. 한국어 변환을 선택하자 ‘킨코’라는 한글로 바뀌었다. 킨코⋯. 낯선 이국의 발음을 가만히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그게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여기서 나가줘. 누가 들어올 곳이 아닌데.
다짜고짜 내쫓으려는 소년에게 괜히 오기가 생겨 희재도 버티고 섰다.
“싫어. 내가 여길 발견했는 걸.”
-발견되려고 있는 곳이 아니야. 여긴 데이터를 가공하고 모아두는 공간이니까.
“무슨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희재가 전혀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년은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말하기 언짢다는 듯 입을 조금만 벌려 말을 퉤 뱉어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의 데이터.
소년이 비장하게 답했다.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중2병인가? 일본 만화 그림체의 스킨을 보니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성전도 이 아이가 만든 걸까. 희재는 소년의 얼굴을 곰곰이 뜯어보았다. 그 얼굴이 그의 무엇도 대표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어떤 단서라도, 단서의 파편이라도 주우려는 것처럼.
“그런 걸 왜 하는데?”
-궁금하니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선악이라니. 희재는 킨코의 말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본 만화의 미소년 같은 얼굴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계속해서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건 다 뭐냐고 물었다.
-세상의 편린. 나는 그렇게 불러.
희재에겐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멀뚱이 서있자 소년이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것]을 분류하고 남은 부산물. 이를 테면 기억이나 감정 같은 것들. 그런 건 잘 분류가 되지 않아 공감각의 형태로 남거든.
그때 순간적으로 희재의 고개가 왼쪽으로 휙 돌아갔다. 이전과 똑같이 전혀 의지와 상관없는 움직임이었다. 그 시선의 끝에 느슨하게 늘어진 풍경이 보였다. 탐스러운 붉은빛의 유리 금붕어 펜던트가 달려있었다. 희재가 그쪽으로 다가서자 미세한 바람이 일어 풍경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럼 나 이거 하나 주면 안 돼? 비밀 공간을 발견한 기념품으로⋯.”
-그건 절대 안 돼.
킨코가 즉각 답했다. 그거 엄청 비싼 거야, 하고 덧붙였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희재도 순순히 지고 싶지 않았다. 영롱하게 빛나는 금붕어 펜던트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잘 드는 자신의 방 창에 걸어두고 싶었다.
“왜?”
희재가 뾰로통하게 쏘아붙였다. 묘한 신경전이 오가다 소년이 한숨을 쉬며 귀찮다는 듯 말했다.
-너 진짜 제멋대로구나.
“당연하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여기서 밖에 없는 걸.”
킨코가 멈칫하며 희재를 마주 봤다.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아니 기다리던 말을 들은 것처럼. 눈빛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대신 성전에서 체험했던 유료 아이템 중에 하나를 줄게. 더 이상 생떼는 안 받아줘.
킨코가 희재의 손을 잡아끌며 다양한 아이템이 진열된 선반으로 향했다. 희재의 뺨이 뜨거워졌다. 남자애와 손을 잡아본 건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실제로 촉각 구현이 얼마나 자세히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잡았다’는 사실이 와닿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기 때문에. 갑자기 선명히 느껴지는 심장과 혈관 탓에 당황한 희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사탕들이 담긴 유리 단지를 가리켰다. 사탕의 안에는 보일 듯 말 듯 작은 색깔 알갱이들이 들어있었다. 성전에서 경험한 바, 이 사탕들은 어떤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이건 지금 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거야.
킨코가 아른한 주홍빛으로 빛나는 사탕 한 알을 건넸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혓바닥을 내밀어 투명한 것을 할짝 핥았다. 베레시트에서 미각이 느껴질 리가 없는데, 희재의 첫사랑은 알싸한 쓴맛이었다.
정민은 지나치게 호쾌한 모습을 보이려는 임상환자를 많이 봐왔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문제의식조차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부분을 조금이라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드러내지 않으려 신경 쓸수록 오히려 투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마피아 게임에서 마피아가 아닌 척하는 말들의 부자연스러움이 더 의심을 사는 것처럼.
약간의 우울감으로 정신과를 방문했던 G는 서른 번이 넘는 상담 끝에 상담의에게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았고, 대학병원에서의 치료를 권유받았다. 환자가 일반적인 상담, 약물 치료로 차도가 보이지 않자 교수들이 이런저런 논문을 찾아보다가 정민이 최근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고, 연구의 임상환자로 추천했던 것이었다.
G는 멀끔하게 관리된 외모에, 입고 있는 옷으로 미루어보아 사회적 지위가 높은 편으로 보였다. 환자의 정보보호를 위해 이름이나 직업 같은 개인정보는 제공되지 않았지만 척 보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민은 G가 앉아있는 자세, 짓는 표정 하나하나를 상세히 기록했다. 그를 임상환자로 추천한 교수가 보낸 소견서에 흘겨쓰인 증상은 BIID. 신체의 일부를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신체 통합정체성 장애’가 의심된다고 적혀있었다.
정민이 연구하고 있는 질병은 전례 없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학적으로 엄연히 다른 뇌 영역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질환이 동시에 나타나며,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는 게 정민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건 희재의 문제기도 했다.
G는 말을 할 때 제스처가 많은 편이었는데, 눈에 띄게 왼손만 사용했다. 왼팔 하완부터 왼손까지의 신체 이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그걸 크게 의식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왼손 잡이신가요?”
G가 ‘들켰다’는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의수입니다.”
아, 그제야 정민은 그를 임상환자로 추천한 저의를 파악했다. G는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일종의 뇌기능 이상 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범위가 신체 전반이었다. 단 한 군데, 의수인 왼손을 제외하고. BIID 증후군은 주로 자신의 팔이나 다리 중 특정 부분을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뇌 기능 장애를 가리킨다. G처럼 신체 전반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 BIID보다는 자신의 신체와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인증 증상에 가까웠다. 아마 G도 얼핏 보았다면 이인증으로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의수가 없었다면, 다른 이인증 환자들과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는 걸 아무도 몰랐겠지.
정민은 G의 신체 기능에 따른 뇌파를 반응 검사를 진행하며 빼곡히 적힌 차트 속의 대화들을 읽어 내려갔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져요. 왜 나에게 몸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감각이에요. 나의 몸에 일어나는 일들이 사실인 걸 알고 있는데도 그게 실제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기록 속 G의 말들은 확실히 전형적이지 않았다. 그는 ‘나’라는 자아를 전혀 상실하지 않은 채 오직 신체로부터 오는 자아감만 잃었다. 심지어 365일 24시간 자신이 움직이고 통제하고 있으면서도.
‘오직 가짜인 왼손만이 정상으로 느껴져요. 그 밖의 다른 신체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사물 같아요.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왼손이 ‘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만.’
G에게 왼손은 무엇일까. 유일하게 자신의 것이 아닌 신체를, 유일한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아이러니야 말로 정민이 연구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남아있는 유일한 느낌은 나한테 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알아내고 싶다는 감각뿐이에요. 그 이외의 것은 마치⋯ 퇴화한 것 같아요. 쓸모없어서 사라진 것 같아요. 어쩌면 저는 다음 생존에 적합한 신인류일지도 몰라요.’
인간의 뇌는 의미의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꾸만 나름의 논리를 세우고 결론을 내리려는 것이다. G의 경우엔 신인류였다. 이상한 존재가 될 바엔 비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이겠지. 그가 한 번도 살면서 소수자, 비주류가 되어본 적이 없다면 더욱 타당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넘기려다 혹시 그의 기록에도 베레시트 이야기가 나오는지 빠르게 서류를 다시 한번 훑었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기분.’*
정민은 다시 전체 문장을 꼼꼼히 정독했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베레시트에서 보내시네요.”
“나의 모든 역사, 온전한 기억을 가진 채로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 살아 움직일 때. 그때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기분이니까요. 베레시트는 현실보다 나은 현실. 현실을 뛰어넘은 현실, 그 자체예요.”
그 이후 온갖 신체 반응검사를 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G는 별 반응도,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주삿바늘을 찌르거나 차가운 조영제를 투여하는 같은 예민한 신체 자극에도 별 다른 불편함을 표하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자신이 아닌 다른 대상을 보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G가 입을 연 건 하루 종일 걸린 각종 테스트가 다 끝난 이후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약간 상기된 느낌이었다. 이 대화 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살짝 입맛을 다시기까지 했다.
“사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임상에 동의했어요. 박사님에 대해 좀 알아보니 꽤 급진적이고 편견이 없는 분 같아서요.”
정민은 G의 말이 묘하게 불편했다. 마치 자신의 개인사를 낱낱이 조사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신체조차 자신의 것이라 느끼지 못하는 증상의 환자가 어떤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정민은 G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표정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신체를 모두 버리고 뇌만 남아도, ‘나’는 ‘나’인가요?”
과학이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정민의 답을 기다리던 G가 입술이 마르는 듯 물을 들이켰다. 하루 종일 그를 관찰하는 동안 내면의 감정이 신체화되어 드러나는 건 처음이었다. 정민은 이 질문이 G에게 생존이 걸린 만큼의 중요한 질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 또한 정해져 있음을.
“이론적으로 우리는 뇌를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에 대해 환각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뇌는 그 모든 환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곳이니까 착각할 수 없고.”
G가 초조한 듯 말을 계속 이어갔다. 차트에 적혀있던 대로 G는 자신의 증상과 증상으로부터 탈출을 꽤나 진지하게 탐구한 듯했다. 일반인보다 뇌과학 지식이 풍부한 것이 그를 더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듯했다.
“그래서 제가 묻고 싶은 건, 뇌만 남아도 내가 나로 존재하냐는 겁니다.”
G의 결기 어린 눈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눈이 번뜩이는데도, 그 눈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말단 신체 일부에 이질감을 느끼는 BIID 환자들은 결국 그 신체를 잘라내야만 자신이 온전히 완성된다고 느낀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선천적인 뇌의 생김새와 관련이 있고, 그것이 치료대상이 아니라는 의견이 속속 등장하며 신체 절단을 일종의 치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개중에는 의사도 있어 불법적인 절단 치료를 감행하고 있지만 도덕적으로 그를 비난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BIID 증상자들의 팔이나 다리 같은 말단 신체를 잘라내는 것을 치료의 측면에서 동의한다고 하면, G의 경우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G는 자신의 뇌와 왼손만을 통합된 자아로 인정했다. 머리 밑으로 모든 몸을 잘라버리고 덩그러니 남은 왼손과 머리를 G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쉽게 답하지 못하는 정민 탓에 애가 탔는지 G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이놈의 몸이 끼어들어 방해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G의 마지막 말들이 한참을 맴돌았다. 이 와중에 G를 이렇게나 간절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었다. 정민은 헛웃음이 나려다가 울적해졌다. 그토록 이질적일 수가 없었다.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에 나오는 실제 환자들의 사례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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