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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Jul 30. 2021

미용실 이용법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개인주택 우리 집 에어컨을 나 혼자 쓰자고 돌리자니 좀 미안하기도 해서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미용실은 잘 가는 편은 아니지만 지난번 파마를 하고 달이 지나가니 어깨위에 닿는 머리카락 끝이 땀으로 목덜미에 휘감기는 느낌을 참아내기 어렵기도 해서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 집을 탈출했다.      

넓은 미용실은 한갓지고 쾌적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지루한 오후 시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특별히 원하는 선생님이 있냐는 접수  직원의 말에 “아뇨!, 시간되는 선생님 아무나 해주세요.” 나는 특별히 까탈스러운 여자가 아니라는 한껏 느긋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가운을 입고 의자에 앉았다. 남자헤어디자이너가 웃으며 뒤에 섰다. 나는 미용실에서 말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걸 첫 단계에서 확실히 밝혀야 펌을 하는 내내 헤어디자이너에게 시시콜콜 가정사를 드러내는 걸 피할 수 있다. 일단 피곤한 기색을 보인다. 사실 늘어진 오후에 미용실에 와서 생기가 막 돋아나는 아줌마가 어디 있겠는가! 적당히 졸릴 시간이었다, 물론 필수적인 대화는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이런 질문이다. “더우니까 짧게 파마해주세요.”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어지는 질문은 “아! 네 이 근처 사세요?” 이제부터 가정환경조사가 시작되나보다. 기본적인 사항은 빨리 해주는 게 낫다. 헤어디자이너가 내가 어디 사는지 뭐 그리 궁금하겠느냐만은 그들도 고객을 대하는 매너론에 아마도 ‘처음에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몇가지 개인적 사항을 물어본다.’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아뇨, 금남면요.” “금남면이 어디죠?” “대평시장 있는데요. ”말하면서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시는 집중 개발구역과 아닌 곳이 나누어져 있어서 청사 주변으로는 아파트촌이 개발되고 행정구역도 00동으로 바뀌어있지만 인근으로는 여전히 00면이다. 그리고 논밭이 한 가득이다. 얼른 내 몰골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까만 얼굴인데다 화장도 하지 않아서 얼굴엔 기미와 점들이 깨소금 뿌린 것처럼 펼쳐져 있었고 감지도 않고 온 머리는 까치집에 부스스하고, 더위를 피해 탈출한지라 집에서 퍼질러 앉아있던 모습그대로이다.


남자 헤어디자이너의 얼굴에 ‘나는 너를 다 파악했다’는 마침표가 새겨져 올랐다. “아! 네. 그렇구나! 머리가 자꾸 성가시지요? 편하게 만지실 수 있게 해드릴게요.” 그리고 바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간에 한번 물어보기는 했다. “앞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난 사실 앞머리가 자라서 눈을 덮고 힘없이 내려오는 것을 싫어한다, 그때부터 그루프를 말아야 되고 픽스같은 것으로 힘을 주어 올려주어야 되니까 말이다. “앞머리도 너무 굵게 않게 말아주세요. 그냥 풀어지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말은 이미 파악한 나에 대한 신상정보에 확실한 굳히기만 더해주었을 것이다.

“아, 네. 일하실 때 불편하시지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열심히 머리를 마는 동안 초롱초롱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말 붙일까봐  눈을 감고 있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많이 힘드신가봐요! 피곤하시고.”

“손님 이제 다 되었습니다. 중화제 바르고 조금 있다 삼푸실로 가실게요,”  그 소리에 잠이 깼다.

삼푸실 긴 의자에 발을 올리고 누었을 때 내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내려지면서  누우니 발이 위로 올라왔다.  집에서 잡초 뽑을 때 신던 흙이 바닥에 묻어 있는 그 슬리퍼가 조명을 받아 한층 드러나 보였다. ‘아, 신발이라도 바뀌신고 올걸. 내 꼴이 딱 밭일 하다 온 아줌마 형색이구만!  게다가 금남면 대평시장 옆에 살고, 앞머리도 풀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일할 때 성가시지 않게 뽀글뽀글해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은 것 아닐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 드라이가 끝나고 대충 뭔 에센스를 발라주더니만 뒷거울을 보여주었다.

“아주 잘 나왔어요. 컬이 예쁘네요.” 오! 예쁜 게 아니라 심하게 말려있었다. 돼지꼬리마냥, 아니 꽈배기마냥 틀어져 있었다. 절대로 풀어지지 않을 거라는 다짐으로 서로를 부여잡고 있었다.  손으로 대충 더듬어 봐도 머리카락마다 다섯 바퀴 이상씩 돌려서 우리 집 뒷산 넝클들처럼 처음도 끝도 찾기가 쉽지 않게 완벽한 용수철이었다.     

 

3개월이 지났다. 위 머리카락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살며시 놔봤다. 탄력 좋은 스프링은 쪼르륵 다시 말려들어갔다. 아직도 멀었다. 친구라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 세종에선 그런 스타일이 유행이냐? 경제적이다는  칭찬(?)도 들었다. 난 날 위해 최선을 다해준 그 남자 헤어디자이너를 떠올렸다. 또 기다렸다. 윗머리가 자라서 눈썹을 가렸지만 여전히 라면가락처럼 말려서 커튼을 치고 있었어. 그리고 다시 3개월. 드디어 머리가 부스스해지면서 바싹 삶은 콩나물처럼 늘어졌다. 때가 되었다.

.

난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풀 메이크업에 정장 바지에 블라우스 , 자켓까지 갖추고 내가 갖고 있는 핸드백중 가장 좋은 것을 들고 갔다. 가운을 입고 나서 안내데스크 직원이 메모지를 들고 왔다. “송정은 고객님! 오늘 펌 어느 선생님에게 하시겠어요?” “저, 저번에 했던 선생님만 아니면 됩니다.” 나는 6개월을 기다린 한 서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말을 내가 얼마나 연습을 했던가! ‘그 선생님만 아니면 됩니다.’ 단호하고 정확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괜히 떨리거나 갈라지거나 희미하게 말하면 안된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난 원하는 굵기와 머리모양을 얘기했다. 그리고 시시껄렁한 호구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얼른 핸드폰에 아마존 킨들앱을 켜고 읽고 읽던 영어소설을 열었다. 원래는 차근차근 읽어야 돼서 시간이 좀 걸려야 다음 장으로 넘겼는데 이번에는 대충 읽으면서 확실하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며 보여주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구두도 챙겨 신고 갔다.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반짝이 검은 구두는 머리 감으려 누운 나에게 ‘너는 나이는 좀 있어도 아직은 잘 나가는 차도녀야’ 라며 나를 자랑스럽게 해주었다.     

컬은  정성스럽게 만족스럽게 무엇보다 적당하게 나왔다. 나는 교양 있고 겸손한 마지막 멘트를 남기고 미장원 문을 열고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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