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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Oct 19. 2019

2편 짹은 말이야

길고양이 애꾸눈 짹의 승전기

짹은 더러웠어. 길에서 사는 흰 고양이가 깨끗하길 기대할 수는 없지만 어슬렁어슬렁 집을 향해 멀리서 걸어올 때면 흰색이 아닌 바랜 회색빛이 도는 꼬질이였지.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흰 고양이는 눈에 잘 띄기 때문에 길 위에서의 삶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거든. 상처도 많았어. 동네 싸움꾼이었거든. 짹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다른 고양이와 뒹굴 때는 긴 발톱을 다 드러내고 사정없이 앞발로 쳐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 같았어. 대부분은 우리집 근처에 온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었지만 발정기에는 온 동네를 다니며 각개전투를 치르곤 했어.    

파이거나 찍힌 상처도 많았고 피를 묻혀오거나 털이 한 움큼 빠져 오기도 했지. 다쳐서 들어올 때마다 고양이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고 약도 참치 캔에 섞어주면 잘 먹었어. 짹은 치료가 끝나면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2층 나무집에 들어가 잠을 자곤 했어. 나는 왔다 갔다 하면서 나무집 안을 들여다보았어. ‘짹 아직도 자니? 어휴, 벌써 해 넘어간다. 그만 자고 일어나.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리 곯아떨어졌을까?     

         

할아버지가 만든 2층 나무집은 짹이 휴식이 필요할 때만 들어가는 안식처였어. 내가 짹이 예뻤던 것은 그게 자기 집인 줄 어떻게 알고 들어가 자는 거지! 하는 거였어.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드는 건지! 신기하고 기특한 녀석!    

         

하루는 오른쪽 앞다리에 큰 상처가 나서 절뚝거리며 다닌 적도 있어. 그 상처는 진물과 피가 흥건히 배어 나와서 다리를 못 쓰면 어쩌나! 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잘 아물었어. 하지만 나을 만하면 또 다치고 또 다쳐 와서 짹은 오른쪽 앞다리에 항상 시꺼먼 딱지가 얹어 있었어. 나중에는 그 부위가 누가 물어도 이빨도 안 들어갈 정도로 갑옷처럼 딱딱해져서 차라리 다행이다 싶기도 했어.    

         

목격한 바로는 가장 어려운 상대는 ‘번개’였어. 번개는 흰색과 갈색이 섞인 웬만한 작은 개 보다 몸집이 커다란 고양이인데 등에 갈색으로 V자가 있어서 ‘번개’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어. 얼굴은 순박하게 생겨서 ‘동네 좀 모자란 형아’ 같은 느낌인데 실상은 최강 챔피언이었어. 짹도 몸집이 큰 편이었지만 번개에 비하면 왜소했으니까. 하지만 우리 짹의 용기와 맷집은 번개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것 같아. 한 번은 뒷산에서 고양이들의 할퀴는 듯 한 비명소리가 계속 나서 올라가 봤더니 짹과 번개가 맞짱을 뜨듯이 대치하고 있었어. 정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바로 공격할 것 같은 낮은 자세로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었지. 놀란 내가 ‘번개! 이 나쁜 놈아!’하면서 팔을 휘두르며 달려가니까 번개는 마지못해 뒤로 물러났지만 몇 걸음 안 가서 다시 돌아다보며 분한 듯 그르렁거렸어. 마치 ‘다음 기회에는 넌 죽었어!’ 하듯 말이야    

         

민첩함과 선제공격이 필수인 길고양이들의 전쟁터에서 그만 퇴역해도 좋으련만 짹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절대 물러나지 않았지. 어쩌면 짹이 한쪽 눈이 없는 것도 싸우다 다친 건지도 모르겠어. 보통 한 눈이 없는 고양이들은 그 자리에 털이 자라서 예쁘게 아무는데 짹은 눈 자국은 분명하고 눈알만 없는 상태였거든. 그 눈은 진물과 눈곱이 항상 껴 있어서 더욱 안쓰러웠지. 어떨 때는 꼭 눈이 있는 것 만 같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어. 이 상처가 아무는 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짹이 참새 같은 먹잇감을 노리는 모습은 세 가지야. 첫 번째는 풀숲에 숨어 있다가 옆에 가까이 다가온 새를 잡아채는 방법. 두 번째는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서 점프하면서 잡는 방법. 마지막은 서서히 자세를 낮추어서 들키지 않도록 낮은 포복으로 접근해서 폭발적 에너지로 덮치는 방법이지. 짹이 제일 애용하는 방법은 세 번째였는데 이건 침입자를 물리칠 때 도 애용했어. 가끔 짹이 우리집 안마당을 낮은 포복으로 살그머니 기어갈 때는 앞쪽에 낯선 고양이가 와 있을 때였어. ‘짹! 다 보여. 소용없다고~’ 라며 말을 건네 보아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무도 자기 몸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기민하면서도 낮은 슬로비디오 자세로 낯선 고양이를 향해 야밤 특공대 침투조처럼 움직였지. 한바탕 몸싸움이 끝나고 나면 마당에 고양이 털이 수북이 쌓여 있었어. 어떨 때는 한밤중에 고양이들의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었지. 아침에 나와서 떨어져 나온 털 색깔을 보면서 흰털이 많으면 짹이 다친 게 아닐까 염려를 했었지. 실패할 때도 많지만 짹의 사냥은 언제나 거리낌이 없었고 아마도 도남리 일대에 일명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용맹한 ‘애꾸눈 흰 장군 고양이’로 명성이 자자했을 거야. (아니어도 그렇다고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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