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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Oct 25. 2019

5편 첫 TNR

길고양이 개체수를 줄이기 위한 중성화 수술

trap-neuter-return, 길고양이 TNR (길고양이의 개체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길고양이를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하여 중성화 수술 후 원래 포획한 장소에 풀어주는 활동)


       그 해 가을에 째리는 청년기로 접어들었어. 야옹 소리가 이상해지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집에 없을 때도 았어. 우리 집 근처에 암컷 고양이는 단 하나뿐 이였어. 바로 ‘새애기’. 아직 짹만이나 짹꼬리는 성별도 알 수 없는 아가들이었고, 아래쪽이나 위쪽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     

째리는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했어. 옆에 슬쩍 다가가고, 심지어 올라타려고도 했지만 새애기에게 째리는 젖비린내 나는 동네 어설픈 불량배 정도였을 거야. 번번이 무산됐지. 새애기가 날카로운 야옹 소리를 내며 째리를 쳐냈거든. 발정이 난 것은 째리뿐만이 아니었어. 짹과 번개도 마찬가지였지. 한 번은  코스모스 밭에 새애기가 납작 엎드려 있는 걸 봤는데, 세상에 째리와 짹과 번개가 새애기를 둘러싸고 구애 소리를 내고 있었어. 동물의 야생 세계는  오리무중이야. 어른도, 애도, 정적도, 남자 친구도 없는 그저 수컷과 암컷만이 종족보존을 위한 쟁탈전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전에 짹과 어떤 사이였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야. 완전히 새판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지. 결국 새애기는 두번째 임신을 했어. 누구 새끼 인지는 알 수도 없었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째리, 짹만이, 짹꼬리가 더 자라서 짹처럼, 번개처럼, 새애기처럼 발정기에 온 동네를 다니며 위험하게 지내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마침 세종시에서 길고양이들을 위한 TNR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세종시청 동물보호과에 연락을 해서 신청을 했어. 약속한 날 RV 차량에 포획틀을 가득 담고 아저씨가 오셨어. 포획틀은 철망으로 된 긴 박스 모양인데, 안쪽에 맛있는 사료용 캔을 넣어두고 고양이가 자주 다니는 곳에 설치를 하는 거야.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들어서서 살짝 버텨 놓은 바닥의 바를 밟으면 문이 저절로 닫혀서 꼼짝달싹 못하는 구조야. 차갑고 녹이 군데군데 슨 쇠창살은 섬뜩하고 잔인해 보였어. 하지만 어째!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아저씨가 잡히면 연락하라고 돌아가자마자  첫 번째 수감자가 생겼어. 그건 새애기였어. 임신한 고양이와 6개월 이하의 새끼 고양이는 대상자가 될 수 없었어. 바로 꺼내 주었지. 그다음에 들어간 것은 짹만이였어. 순하기만 했던 짹만이가 갇혔다는 것을 알게 되자 포획틀이 부서지라 야옹 소리를 내며 흔들어대기 시작했어. '어휴! 얼마나 무서울까!' 이 상황이 납득이 안 되겠지. 그 이후엔 짹꼬리도 들어갔지. 짹꼬리도 포획틀을 흔들며 울어대었어.  ‘못난이’라고 가끔 오던 아랫동네 고양이도 포획틀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가 울었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담요로 안 보이게 덮어주니까 우는 소리가 잦아들었어. 새애기는 그 사이에 또 다른 포획틀에 들어가 문이 닫히는 줄도 모르고 캔 하나를 다 까먹고 있었는데, 다시 꺼내 주었어. '참 둔하기는.'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짹과 째리가 들어가는 거였는데, 영리한 두 녀석은 짹만이가 첫 번째로 들어가 포획틀을 마구 흔들며 날카로운 야옹 소리를 내자 그대로 도망가 버렸어.    

  

       놀라운 것은 이제는 새끼들을 돌보지 않고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임신을 한 새애기가 도망가지 않고 짹만이가 갇혀있는 포획틀 옆에 앉아서 낮은 소리로 울음소리를 내며 짹만이를 지켜주고 있었어. 불쌍하고 안타깝고 마음이 안 좋더라고. ‘미안하다! 짹만이, 짹꼬리, 못난이야’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저씨는 잡힌 세 마리를 데리고 가면서 한 일주일 걸릴 거라고 얘기해주셨어. 짹만이와 짹꼬리와 못난이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 세종시청에 알아봐서 TNR을 실시하는 동물병원을 찾아갔어.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나 세종시 외곽에 위치한 곳이라 인적이 뜸해 보였어. 병원 문도 닫혀 있어서 기웃거리다 그냥 돌아왔어. 저 어딘가에 우리 짹만이와 짹꼬리와 못난이가 있겠지 싶어서 몇 번 불러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갇혀있는 모습을 본 들 어떡하겠어?  동네 길고양이들이 울다 지쳐 기운도 다 빠지고 겁을 잔뜩 먹고 기절해 있을거 같고, 수의사 선생님은 시꺼먼 긴 앞치마를 두르고 마스크를 한 채 한 마리씩 성큼 성큼 들어다 무감각한 얼굴로 자르고 꿰매고 귀찮은 듯 '  다음!'이라고 기계적으로 해치워버릴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먹구름처럼 피어올랐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비록 길에서 잡아 온, 또 길로 돌아갈 길고양이들이지만 위생적인 시설에서 사랑과 정성으로 수술해주시겠지. 믿자. 기도하자. 기다리자.

      열흘을 초초하게 지내고 아이들이 돌아왔어. 아저씨가 우리 집 아이들인지 하나하나 확인을 하면서 포획틀을 내려놓으셨지. ‘아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힘들었지?’ 포획틀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쏟살 같이 나와서 산으로 흩어졌어. 다들 왼쪽 귀 위쪽이 조금씩 잘려 있었어. 수술을 한 길고양이를 구별하기 위한 방법인 거지. 짹만이는 수컷이고 짹꼬리와 못난이는 암컷이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수컷은 수술 과정이 간단한데 암컷은 좀 더 오래 걸린대. 아이들은 한참 만에 산에서 내려와서 사료를 먹었어. 그 후 못난이는 가끔 밥을 먹으러 오다가 어느 날 소식이 끊겼고, 짹만이와 짹꼬리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경계심이 더욱 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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