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 글감으로 너를 혼내주마.
나는 항상 새벽이 위기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기에 글감이 샘솟는다. 하루에도 쓰고 싶은 글감이 여럿 한 데 모여 머릿속에서 풍물놀이를 한다.
얼쑤.
머릿속에서 상고를 머리에 얹은 채 끊임없이 휘두르며 나를 채찍질한다. " 따갑지? 그러니까 얼른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거라."
분명 없었는데
그래서 저항에 못 이겨 결국 노트북을 펼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이내 나의 한계에 봉착한다. 나는 글을 왜 이렇게 난잡하게 쓰는 걸까. 남들이 쓰는 글들은 다 뭔가 맥락이 있어 보이고 술술 읽히는 것만 같은데 내 것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남의 글을 보면 비문을 접하더라도 귀여운 실수로 보이는데 내가 쓴 비문은 나한테 엄청 크게 다가온다. 그래도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게 있으니 어떻게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다. 그리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 '발행'을 클릭한다.
" 어우, 이제 됐다."
끝난 줄 알았지? 이런 젠장. 글을 보니 또 난잡하다. 여기저기 비문이 보인다. 뭐지, 분명 아까 발행할 때는 클린 했는데? 이건 분명 누가 내 몰래 발행하기 직전에 글을 바꿔서 올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안된다.
넌 완벽하지 않아. 받아들여.
아무리 퇴고 과정을 거쳐도 내가 쓴 글은 뭔가 아쉽다. 그래서 남들에게 미리 보여주고 검토를 받기도 한다. 그렇게 지적받은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올리지만, 마법같이 부족한 부분은 끊임없이 보인다. 그래, 이게 인생이다. 사람도 죽을 때까지 완벽하지 않은데 사람이 쓰는 글이라고 다를까.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글쓰기는 항상 부족하기에 공부를 거듭해야 하고, 글도 항상 부족하기에 퇴고를 거듭해야 한다.
그냥 간단하게 쓰자.
글감이 많을 때면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골치 아프다. 아무 기준도 없이 무작정 써 내려가다 보면 그래서 지구가 둥글다는 건지, 별이 아름답다는 건지, 떡볶이는 로제 떡볶이가 제일 맛있다는 건지 당최 논지를 모르겠다. 이제 별 얘기도 지우고 떡볶이 얘기도 지워야겠다. 별은 정말 예쁘고, 로제 떡볶이도 정말 정말 맛있지만, 그 얘기는 앞으로 차차 하기로 하자. 글감 노트를 만들었다. 이건 내일 말할 거. 저건 모레 말할 거.
앞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고 생각하니 내일이 너무 기대된다. 그리고 하나의 글감만을 가지고 써 내려가니 오늘이 너무 편해진다.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