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일상에 바쁘고,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간다.
온전히 일상을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는 아내와 달리, 나는 그렇게 세상에 또 부딪히다 보면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게, 키만큼이나 훌쩍 마음이 큰 아이들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남자아이들의 사춘기.
내가 어릴 적에 비하면 훨씬 더 빨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전 같으면 한대 쥐어박고 말일들이, 혼쭐이 나는 행동들이, 그렇게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당연시했던 이야기들이, 생각해 보면 내 속 깊숙한 곳에서 상처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옛날에는, 예전에는,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그런 시절이어서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상처나 가슴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들이다.
요즘 '라떼는 말이야'가 금지어가 되는 만큼, 고리타분하고, 아재 개그가 돼버리는 지나간 이야기들이지만,
사실, 그런 이야기들을 어디서도 온전히 귀담아 들어줄, 속 시원히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는 것도 사실 아빠들의 지금의 모습이다. 애꿎은 아이들이 그 귀가될 때가 있고, 때론 부하직원이 그 신통치 않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감에, 남자아이들만 득실거리는 집에서,
'아빠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대'
아내의 목소리가 요즘은 부쩍 많이 들린다.
친구 같은 아빠?
친구도 알겠고, 아빠도 알겠는데, 도무지 친구 같은 아빠라는 게 무얼까?
내 '친구'와 내 '아버지'의 공통점은 사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 현실.
그 친구와 아버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데도,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그 두 단어가 모순덩어리처럼 부딪힌다.
그러면서, 주변 아빠들의 이야기가 잠깐 들린다.
예를 들어 얘기해주는 건지, 비교인지 모르지만, 들어보니 친구는 맞는데 아빠는 아닌 것 같은 계속되는 내 마음속의 물음들.
남자아이들이라 어릴 때에는 많이 놀아주곤 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아빠랑 노는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 쏟아도 끄떡없는 아빠의 힘(?) 때문인지.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아이들은 무슨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그렇게 지칠 때까지 달려든다. 아빠의 든든한 벽이 마치 아이들에게 큰 보호막같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렇게 놀아줄 때도 난 아이들의 '아빠'였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조막만 한 아이들의 힘센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세상 속에 나보다 힘센 어른들도, 나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어른들도 많지만, 아이들 앞에서 난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아빠이고, 가장 대단한 어른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아빠가 필요하다고 한다.
세상이 힐링의 시대이고, 치유의 시대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고, 마음을 치유하려는 글들이 넘쳐나고, 자존감을 키우라고 이야기한다.
행복해야 한다고 하고,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가득 담긴 매뉴얼이 인터넷에 아직도 차고 넘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빠 같은 친구가 필요한 걸까?
사춘기라고 하는 아들은, 평소보다 까칠해 보이기도 하고, 평소보다 자기 의견이 강해 보이 기도 하고, 어쩌면 반항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 아이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 본다.
온라인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 아니면, 학교에서 같이 뭔가를 이야기할 친구? 남자아이다 보니 관심사가 주로 게임과 유튜브 콘텐츠인데 함께 즐기고 웃어주는 그런 친구?
지금 아들의 친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들이 원하는 친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 가운데, 난, 아빠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 건지 생각해 본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이기에 생각이라는 걸 해봐야 한다.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생각해 본다.
내 '아버지'의 일이 아니라, 내 '아들'의 일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아빠인 나와 아들인 너, 서로가 무엇으로 연결되고 맺어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아들과 같이 잠자리에 드는데, 무슨 이야기를 한참 한다.
어느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인 듯, 신나게 한다. 처음으로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그저, 관심 있는 척을 해주려고 노력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이야기인지가 들리더라.
한참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이에게 공감해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웃기더라.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듣고 내 감정이 느껴졌다.
그랬더니, 아들도 함께 웃음을 짓는다.
친구 같은 아빠는 힘들다.
아들의 친구가 되긴 어려울 수 있지만,
오늘부터 아들과 내가 모두 즐거운 게 뭘까,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한번 기울여 보려고 한다.
함께 빵 터져, 웃음 짓는 사건을 하루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찾아보려고 한다.
많이 들을수록, 많이 찾을 수 있겠지.
아들 친구가 할 수 없는, 아빠 친구의 경쟁력을 십분 발휘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