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모험길
이번 추석은 개천절 연휴까지 포함하면 6일이나 되어 고민이 커졌습니다.
보호센터는 연휴가 길어져도 웬만하면 어르신들을 위해 문을 엽니다.
명절 당일만 빼고요.
그러나 이번에는 일요일까지 포함하면 3일이나 쉴 예정이라고 하네요.
평소 보호센터 직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끼고 있던 터라서 서운하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책은 세워 두어야죠.
동생이 어머니를 댁에 모시고 가서 하루 주무시게 하겠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면서요.
사실 동생은 매일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두 시간 넘게 운전해야 직장에 도착할 수 있고, 저녁에 집에 오면 9시가 넘는, 아주 힘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일요일에 어머니를 찾아뵙겠다고 했을 때도 오지 말고 쉬라고 한 적도 있었죠.
저도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주말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잘 알거든요.
어머니가 추석 연휴 때 이틀 동안 동생 집에 다녀오셔도 최소 이틀은 우리 가족이 어머니를 돌봐 드려야 합니다.
몇 가지 고려할 것들이 있습니다.
우선 어머니는 당신이 사시는 아파트를 벗어나시면, 금방 답답해하십니다.
설 연휴 때에도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 집에 모시고 음식을 대접했는데 수저를 놓자마자 집에 가시겠다고 성화를 부리셔서 혼났던 적이 있거든요.
하물며 차로 1시간도 더 걸리는 동생 집에 가셔서 하루를 주무시면 더 답답해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성화를 부리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동생 집에서 하루를 주무시고 집에 오시면 아마 녹초가 되실 겁니다.
다행히 멀미하시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오래 차를 타시면 지치는 것이 보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추석의 개념도 많이 잊으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 달 전부터 음식 많이 차리지 말아라, 올 필요 없다고 매일 성화를 부리셨는데 올해에는 추석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네요.
심지어는 어머니께 올 추석은 동생이 모시러 오겠다고 말씀드리니까 가기 싫다고 하십니다.
추석이라는 말에는 반응하시지 않고요.
아무래도 추석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동생이 오기로 한 날 아침 일찍 약을 두 봉지 들고 어머니 댁을 향했습니다.
하나는 어머니께 먹여드리고 다른 하나는 책상 서랍 구석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만일 약봉지가 어머니 눈에 띄면 무조건 입에 털어 넣으시거든요.
그리고 동생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서랍에 약을 넣어두었으니 내일 어머니 꼭 먹여드리라고요.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약도 잘 챙겼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날은 한 번도 카메라 앱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어머니를 잘 돌봐 드릴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합니다.
잘 계신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자꾸 손이 휴대폰을 향합니다.
저도 이상한 습관이 생긴 듯합니다.
다음 날 오전에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에 가시겠다고 성화를 부리신답니다.
식사하시고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니까 당장 택시 불러 달라고 하신다면서요.
예상대로 입니다.
점심시간 무렵에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동생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드시고 왔다니 식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30분쯤 후에 카메라 앱을 실행해 보니 안방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예상대로 먼 여행에 지쳐 낮잠을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이젠 동생 집에 가시는 것도 어머니께는 모험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앞으로 그 모험을 몇 번이나 하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