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mnsee Oct 11. 2023

치매어머니와 동행 13

고집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어머니가 보호 센터에 가기 싫다고 하시는 날이 있습니다.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아침에 전화를 드렸더니 보호 센터에 안 가고 집에서 쉬겠다고 하십니다.

눈 앞이 캄캄해 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식사는? 혹시 외출이라도 하시는 것 아닌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이미 출근을 했고, 아내도 출근 길에 나선지 오래 였으니 당장 어머니 댁으로 가 볼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어떻게 든 어머니를 달래 보호 센터에 나가시라고 설득을 해 보았지만 요지부동이십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어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보호센터에 연락을 해서 오늘 어머니가 등원을 하지 못하신다고 전했고요. 

어머니 댁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기가 느껴지고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또 보일러를 안 틀고 주무신 겁니다.

당연히 추위에 떨다가 잠을 설치셨겠지요.


우리가 어렸을 때 제대로 잠을 못 자서 피곤하면 학교에 가기 싫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추위에 떨면서 잠을 설치셨을 테니 피곤해서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죽기보다 싫으셨던 겁니다.

그 정도 유혹은 거뜬히 이겨내던 분이지만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고, 이젠 어린애처럼 본능을 따르게 된 거죠.

당신이 치매 환자란 것은 인정하시지도, 이해하시지도 못 하시니까요.

계속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 연령이 어려지고 있는 거죠.


거실에 들어서자 마자 보일러를 최대로 높이고 어머니 상태를 살핍니다.

다행히 피곤해 하시는 것 빼면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제발 보일러를 좀 세게 틀고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신신 당부를 했지만 과도한 절약 습관이 몸에 밴 어머니는 말을 듣지 않으십니다.

아니, 말을 듣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고 제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아예 기억도 못 하시죠.

그저 수십 년을 매일 하시던 대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전기 담요 하나에 의지하여 잠을 청하실 뿐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전기 담요 켜는 법을 잊어버리셨는지 전기 담요에서 온기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답답함보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마땅히 드실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집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전복죽을 포장했습니다.

그리고 백화점 식품 코너에 들러 저녁에 드실 떡도 좀 챙기고요.


식사를 챙겨드리고 나서 제발 보일러를 끄지 말라고 다시 한번 간절하게 부탁해 봅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며 짜증을 내십니다.

어머니는 아주 상식적인 것을 가지고 잔소리하는 자식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 곁을 떠남과 동시에 어머니는 또 다시 관리비를 아껴보겠다고 아픈 다리를 끌고 일어나 보일러를 끄실 겁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아직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황보다는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서 생활하시는 어머니...

이제 학습 능력도, 적응 능력도 거의 사라지신 것 같습니다.


저도 전에 없던 새로운 증상이 생겼습니다.

전화가 오면 깜짝 깜짝 놀라고 어머니가 보호 센터에 무사히 도착하신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저의 하루는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어머니의 보호자이죠.

작가의 이전글 치매어머니와 동행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