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병원 로비
어머니 약을 받으러 토요일에 병원을 방문하던 때는 병원에 도착하여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병원 진료는 9시에 시작하는데 그때가 되면 이미 20명이 넘는 환자들이 병원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8시쯤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서둘러 집을 나서곤 했죠.
8시에 병원에 도착하면 항상 저보다 먼저 도착해 소파에 앉아 있는 모녀가 있습니다.
딸은 40세 전후, 어머니는 70세 전후로 보이는 데 조금 있으면 왜 그 모녀가 병원에 왔는지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딸이 지적장애인 것 같습니다.
지적장애인을 여러 명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주 어린애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띄기 마련이죠.
물론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선하고 누구를 괴롭히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거나 불쾌함을 선사하지 않죠.
저는 그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될 수 있으면 모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향하는 것을 자제합니다.
어머니의 얼굴은 오랜 자식 뒷바라지에 지쳐 몹시 피곤해 보입니다.
저는 어머니 때문에, 저분은 딸 때문에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것입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지만 그 딸의 증세가 영원히 완치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병원 방문을 멈출 수는 없죠.
완치의 희망 없이 병원을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8시 30분이 가까워져 오면 병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납니다.
그중 몇 명은 낯이 익은 사람이고요.
대부분 젊은 사람들입니다.
노인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경우가 많아 자식들이 대신 방문하는 때도 많아서 그럴 것 같다는 짐작을 해 봅니다.
그러나 자신의 병 때문에 방문한 젊은 환자도 많습니다.
엿들으려고 하지 않지만, 이른 아침의 병원 로비는 매우 조용해서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될 때도 있죠.
가끔 불면, 우울증같이 익숙한 단어가 들려옵니다.
갑자기 저도 우울해집니다.
90년 동안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이제 겨우 몇 달 동안 기억력 상실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돌보는 것도 이리 힘든데 어쩌면 평생 완치가 어려울지도 모르는 병을 안고 살아야 할 젊은이가 이토록 많다니….
의사는 9시에 병원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도착한 순서대로 진료가 시작됩니다.
모녀는 제일 먼저 진료실로 들어가죠.
불과 2, 3분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 모녀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두 봉지의 약을 받아 병원을 빠져나갑니다.
아마 모녀가 모두 약을 처방 받은 모양입니다.
저는 저 어머니는 딸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딸의 병을 뒷바라지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경험은 없지만, 부모님을 뒷바라지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것이 분명합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장애가 있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소원은 딱 한 가지라고요.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 말입니다.
그 모녀가 병원을 나가면 간호사는 어머니 이름을 크게 외칩니다.
제 차례가 되었고, 저는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의사에게 어머니 증세에 큰 변화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의사는 지금처럼 잊지 말고 매일 약을 꼭 드리라는 말만 합니다.
아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곁들일 때도 있죠.
이제 어머니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은 현상 유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