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사망
어머니는 가끔 환각 상태를 경험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과 완벽히 혼동하시죠.
어느 날, 성당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꺼내십니다.
"너, 00 엄마 알지? 글쎄 그 노인네가 죽었다는구나."
어머니께서 00 엄마라고 부르는 분은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건강하실 때는 자주 왕래도 하셨는데 이젠 멀리 떨어져 사시므로 서로 만나지 못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죠.
어머니가 아직 젊었던 시절에 친해지셨는데, 고생하며 자식 뒷바라지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쉽게 하기 힘든 깊은 대화까지 나누시며 서로 의지하며 지내셨습니다.
저는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 삶에서 그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 작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급히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돌아가셨다는데요?"
"글쎄 오랜만에 전화했더니 딸이 받기에 엄마 바꿔 달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엄마 죽었어요.'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 세대 분들이 돌아가실 때가 되었구나, 이제 어머니도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으니까요.
그때부터 며칠 동안, 어머니의 표정은 아주 어두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그 노인네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이제는 내 차례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라고 얘기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보고 갑자기 얘기하십니다.
"어제 오랜만에 00 엄마하고 통화했다."
저는 또 깜짝 놀랐습니다.
"00 엄마는 돌아가셨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으십니다.
"그 노인네가 죽긴 왜 죽어? 내가 어제 통화했는데…."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다니 반갑기는 했지만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무슨 얘기를 나누셨는지 자세히 여쭤보았는데, 정말로 그분과 통화를 하신 것처럼 생생히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어르신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모양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가, 어머니가 또 갑자기 말을 꺼내십니다.
"너, 00 엄마 알지?"
"예, 얼마 전에 통화하셨다면서요?"
"응, 근데 며칠 전에 죽었다는구나."
역시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친구분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전화했더니 딸이 엄마는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도 그분과 방금 통화를 했다고, 또 때로는 죽었다더라고 여러 번 얘기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알았다고만 대답하죠.
아마 주무시면서 매일 이상한 꿈들을 꾼다고 하시는데, 그 꿈 중의 하나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꿈인지 모르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신 것과 돌아가신 것 중에서요.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치매 환자는 주변 분들이 돌아가시는 꿈을 많이 꾼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마 그 어르신은 아직 살아계실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혹시 그분도 치매 증상으로 고생하시는 것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