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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Nov 16. 2022

체중계 앞자리가 '4'인 여자, 벌크업에 도전한다

내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 몸무게는 3.8킬로그램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생아 몸무게가 2킬로그램 후반에서 3킬로그램 초반이라고 하니, 이 정도면 우량아 축인 것 같다. 엄마는 자연분만이 산모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첫 애를 품에 안은 엄마는 내심 기대가 컸다. 아빠도 엄마도 키가 작지만 다행히 너만은 우리 유전자를 닮지 않았구나. 엄마는 큰 몸으로 태어난 아기에게 걸맞은 큰 물건들을 집에 잔뜩 들여놓았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지독히도 밥을 먹지 않았단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줘도 입을 꾹 닫았다. 음식에 시큰둥한 딸을 먹이기 위해 엄마는 온갖 산해진미를 공수하느라 진을 뺐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왜소한 몸은 축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소년기에라도 잘 먹었다면 키가 컸을까. 그때는 또 사춘기가 와서, 무조건 작고 마르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에 교사가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앉는 벌을 세운 적이 있다. 그때 무심코 내 허벅지를 내려다봤는데 세상에, 너무나도 두꺼운 것이다. 나는 누가 볼까 싶어 허벅지를 살짝 공중에 띄우고 버텼다. 그냥 무릎 꿇기도 힘든데, 기마자세로 있다 보니 온몸이 쉴 새 없이 떨렸다.


그 교사는 부들부들 떠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더니(시킨 것보다 더한 벌을 수행하는 학생이라니) 한 마디 건네려다가 "끙" 소리 한 번 낸 뒤에 그냥 지나쳤다. 아마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더라도 내 허벅지 두께만큼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 어린 시절의 나에게 "너는 장차 축구에 눈이 돌아서 일주일에 여덟 번씩 필드에서 공을 차는 아이로 거듭날 거야. 피지컬을 키우려면 당장 밥을 입안에 욱여넣도록 해"라고 미래를 속삭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무 음식이나 입에 한가득 집어넣었을지도 모르는데.


결국 타고난 복을 제 발로 찬 나는 평균보다 작은 키와 몸집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157센티미터에 체중계 숫자는 45에서 50 사이. 앞자리가 4에서 벗어난 적이 드물다. 축구 친구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내가 유달리 작고 왜소해서 내심 주눅이 든다. 필드 위에서 몸싸움 한번 할라치면, 부딪히자마자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페널티킥(페널티 지역 안에서 수비 측이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을 했을 때 공격 측이 얻는 킥. PK라고도 부른다)을 막느라 수비벽을 세우는 상황이면 나 혼자 머리 하나쯤 아래로 내려와 있어서 민망하다. 아마 공격수는 '어머, 여기 웬 구멍이 하나 있네'라며 내 머리 위를 노리겠지? 자존심 상한다.



그라운드를 나로 채우고 싶다


              

축구 친구들과 한컷. 제일 왼쪽이 나다. 축구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늘 제일 작아 주눅 든다.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먹으라는 안주는 안 먹고 새우칩 과자만 세 접시째 축내고 있는 나를 축구 친구 바우가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다.


"언니, 벌크업 시켜줄까요?"


도전정신으로 가득한 눈빛. 과거에 나와 몸집이 비슷한 친구를 벌크업(근육량을 증가시켜서 몸의 덩치를 키우는 작업)에 성공시킨 바 있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 말에 반색을 하며 "해줘! 나 벌크업 하고 싶어!"라고 소리쳤다.


"일단 규칙적인 습관부터 버리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밥 먹고, 잠자고, 간식은 하나도 안 먹잖아. 언니는 7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 먹는다면서요. 그러면 절대 벌크업 못 해요."


바우는 배달 앱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는 나의 고백에 소스라쳤는데, 나로서는 그 소스라침이 오히려 의아하다. 배달 앱으로는 보통 야식을 시킬 텐데, 그거 먹고 자면 속이 부대끼지 않나. 그 부대낌들을 이겨내야 피지컬이 좋아져 축구를 잘할 수 있다니. 축구왕의 길은 도대체 왜 이토록 닿기 어려운 걸까.


"아, 알았어. 일단 살을 찌워야 한다는 거지? 열심히 해볼게."


이후로는 밥을 먹을 때마다 바우의 말을 생각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다가도 한 입이라도 더 먹고, 어떻게든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이왕 결심했으니 제대로 해볼까 싶어 식단 관리도 시작했다. 하루 2000킬로칼로리를 섭취하는 게 목표다. 남들은 '그걸로 무슨 벌크업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1500킬로칼로리 내외를 먹던 내게는 밥을 한 끼 더 먹는 수준이다.


식단을 '관리'에 걸맞게 챙기다 보니 매번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내 식습관이 눈에 들어온다. 밥상에 야채도, 고기도 없다. 공깃밥 한 공기를 미처 다 비우지 못하고,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운다. 어떻게 이렇게 영양가 없게 먹어왔을까. 내 식단을 보니 알겠더라, 나는 스스로를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충 끼니를 때우고 허벅지와 몸집을 줄이려 노력했던 것은 삶에서 내 영역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 아니었을까. 1인분의 몫을 지키려 노력하는 대신 남에게 나누어주고 나는 그저 허기만 채우면 족했던 것 아닐까. '아무 때나 계속 먹어라, 많이 먹어라'던 바우의 충고가 지금은 '언제든지 계속 너를 소중히 대해라, 많이 아껴라'로 들린다. 나는 이제 나를 아끼기 위해 밥을 차려 먹는다.


흔히 축구를 땅따먹기 싸움이라고 말한다. 내 영역을 지키고 남의 영역을 가져오는 게임. 이를 잘하려면 일단 내 몫을 잘 챙길 줄 알아야 한다. 내 몫이 있어야 남의 몫도 넘볼 수 있지 않겠나. 얼른 벌크업 해서 그라운드를 나로 가득 채우고 싶다. 자꾸만 작아지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마음껏 커지고 싶다.



메시 유니폼을 선물받았다. 키가 작아도 날렵하기로 유명한 메시처럼 되라는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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