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0
엄마가 집에 온다고 하면 나는 속으로 기도한다.
'이번에는 정말 화 안 내게 해주세요. 하루만 견디게 해주세요.'
분명 엄마와 함께하기를 고대한 적도 있다. 당신이 떠나기 직전, 나는 심각하게 불안정했고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분노는 자꾸만 시엄마에게 향했다. 나와 다른 이별 방식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우리의 마지막을 방해한다는 마음에 그를 미워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하겠나. 그나 나나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을 처지인데. 나에게는 이야기할 데가 마땅치않았고, 가장 정성껏 들어준 것이 바로 내 엄마다. 당신이 떠나고 엄마에게 "우리 같이 살면 어떨까?" 물은 적도 있다. 남편을 잃은 두 여자가 같이 보듬으며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엄마가 거부했다. 내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와의 시간은 24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저녁 5시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만 견디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부엌에 들어가 내 살림살이 정돈 체제를 지적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베란다의 배열 형태를 바꾸라고 권했으며, 창문 옆에 방한 용품을 더 붙여야 한다며 한바탕 조언을 퍼부었다. 머리가 한껏 어지러워진 나는 결국 다이소로 방한 용품을 사러 나갔다. 바람을 쐬면 좀 낫겠지. 물론 이는 내 착각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서 식탁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화가 나던지. 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그렇게 식탁 안 놓는다고 했잖아!!!" 깜짝 놀란 엄마는 "이렇게 하면 얼마나 더 넓어 보이는지 보여주려고 했어"라고 말하며 얼른 다시 식탁을 돌려놓았다.
엄마가 가고 나서 한동안 후회했다. 물론 지금도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가구 배치를 변경한 엄마의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그렇게 소리까지 지를 일이었나? 평소에 예절과 예의를 중시하는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 소리 지르지 못한다. 그런데 왜 가장 가까운 이 가운데 하나인 엄마에게는 함부로 소리를 지르는가?
이건 아마도 당신이 없다는 이유로 나를 '독립한 딸'로 대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반항과 항변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없다고 해서 내가 다시 엄마의 밑으로 편입될 일은 없다. 나는 이미 독립한 성인이다. 엄마는 나를 불쌍히 여긴 적이 없다지만 돌봄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불쌍히 보는 게 아닐까. 그 내지름은 나를 불쌍히 보는 엄마를 거부하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나를 건강한 객체가 아닌 자신의 딸로 두는 엄마에게 나는 자주 "우리는 남이다"라고 말한다. 그때마다 서운해하는 말투로 "내가 어떻게 남이냐"고 엄마는 묻는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나인 건 아니잖아"라는 쌀쌀맞은 말로 그 말을 쳐버린다. 그 후에 돌아서면 '나는 언제쯤 효도하고 사나' 싶어 마음 한쪽이 아려진다.
최근에는 많이 늙은 엄마를 보며 '10-20년 뒤에는 엄마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저릿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마음을 기억하고 살 순 없을까. 그럼에도 나는 또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소리지르겠지. "엄마, 우리는 남이야"따위의 말을 던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