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울하면 나가서 운동 좀 해

by 아나스타시아

‘우울하면 나가서 햇볕도 좀 쐬고 운동 좀 해’라는 말을 내뱉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에 일말의 진실이 담겼다는 걸 안다. 내가 풋살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울에 잠식당해 그냥 퍼석하게 메말라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풋살을 하는 3년 내내 아팠다. 회사를 옮길 때 짬을 내어 어깨와 목 치료를 받는 것 외에는 병원에 내 발로 간 적은 드물었는데, 이 3년간은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그러면서도 이 운동을 내려놓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물론 풋살은 재미있다. 여전히 못하고, 망칠 때마다 자괴감에 몸부림치지만 그래도 100번에 한 번 잘했을 때 그 짜릿함 때문에, 그거에 중독되어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한의원을 오고 가며 선수 생명을 연장했던 것 같다.



또 내 인생에서 가장 좌절스러웠을 때 나를 침몰하지 않게 도와준 건 풋살과 풋살을 둘러싼 친구들 덕분이었다. 풋살을 만나기 전 나를 한 친구는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 같았다’고 표현했을 만큼 그때의 나는 퍽 위태로웠다.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살게 된 건 풋살 덕분이다.


photo_futsal01.jpg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풋살을 하는 3년 내내 나는 나와 불화했다. 남에게 지기 싫어서 간식 내기 사다리 타기도 안 하는 내가 수시로 지는 상황에 놓이는 게 힘들어서. 몸도 마음도 나약하고, 운동머리 없는 내가 싫어서. 나이 많고, 점점 느려지는 내가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흰머리와 40대에 접어들었다는 수치가 억울해서.



풋살을 시작한 이후로는 풋살 외에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그거 하나 제대로 하고 싶은 건데, 그 하나가 내 맘대로 안 되니까 자꾸만 마음이 부서졌다. 작년 언젠가는 울면서 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었는데, 부서진 마음을 들여다보기 버거웠던 게 아닌가 싶다.



풋살이 과거의 나를 살려준 동시에 지금의 내 한 부분을 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흰머리 휘날릴 때까지 풋살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까지 계속하는 게 정말 나를 위한 건가.



다만 최근의 상담을 통해 나는 진실이 무서워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성향임을 알았고, 그 성향이 나를 우울의 구덩이에 자꾸만 밀어넣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풋살을 그만두는 것도 일종의 도망 아닐까. 부상 입었던 혜민이 복귀해 공을 모는 모습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나도 저렇게 웃으며 공을 만질 때가 과연 올까 떠올리다 보니 마음 한쪽이 조금 아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 우리는 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