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서울의 봄

by 써니사이드업

1979년 10월 26일에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한 시대를 지탱하던 권위주의 체제는 총성 한 발에 예고 없이 무너졌고, 그 자리에 짧은 혼란과 함께 오랜만에 희미한 희망의 기류가 피어올랐습니다.

10.26 사건 공판 법정에서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왼쪽에서 두번째) (출처: Wikimedia - CCA-Share Alike 4.0 한국민주재단)

오랜 억압 끝에 언론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되찾았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다시 정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토론으로 다시 활기를 띠었고, 노동 현장에서도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죠.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더 이상 숨지 않았습니다. 거리로 나와 자유와 정의를 외쳤고, 거리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죠. 지식인과 종교계도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습니다. 혹독했던 유신의 겨울이 끝나고, 마침내 민주주의의 봄이 오는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러나 그 봄은 너무도 짧았지요. 기대와 열망이 무르익기도 전에, 권력은 다시 총칼을 앞세우며 다가왔습니다.

서울의 봄 스틸 컷1.jpg 영화 서울의 봄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컷)

같은 해 12월 12일 밤에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강제로 연행하며 군부의 실권을 쥐었습니다. 명백한 군사 반란이었죠.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다시 ‘군홧발’이 정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은 곧 군 전체를 장악했고, 정치와 행정 전반에도 서서히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꿈은 아직 뿌리내리지도 못한 채 흔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영화 서울의 봄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컷)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1980년 5월에 전두환은 ‘국가 보안’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국회를 해산시키며 본격적으로 권력 장악에 나섰습니다. 언론은 다시 통제되었고, 민주화 인사들은 연행되거나 감시를 받았습니다. 이에 반발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그 절박한 외침은 광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혹독하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장면이었어요.


그해 8월에 전두환은 간접 선거 형식을 빌려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국민의 투표도, 동의도 없었죠. 총칼로 세운 권력은 민주주의의 외양만 걸친 채 법적으로 인정되었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암흑기가 시작된 거죠.

서울의 봄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찬란했던 봄은 여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더 깊은 겨울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 봄날을 잊지 않았습니다. 잠시나마 피어올랐던 자유의 공기와, 그 짧은 빛이 얼마나 눈부셨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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