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하지는 맙시다
천만원으로 셀프 집짓기 프로젝트, 6만원짜리 방문을 활용해 현관문을 만들어 보았다. 아치형 현관문이 마뜩찮은게 없어서 영림도어의 방문을 6만원씩 두세트, 12만원에 사왔다. 이 때만해도 왜 현관문이 견고해야 하는지, 현관문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감조차 없었다. 문을 열면 또 다시 실내가 펼쳐지는 게 당연했던 도시 생활자는 미처 몰랐다
따라하면 큰 일나는 방문으로 현관문 만들기
※당신의 소중한 체력을 위해, 절대 따라하지 마시오
지난번 포스팅에서 부득부득 모로코식 아치형 현관을 만들어 보겠다고 판넬을 자르고 스프러스 구조목 깎는 양양옹을 만났을 것이다 (아래 참조)
https://brunch.co.kr/@thisisafrica/20
그리고 외로운 문틀에게 짝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문이 없음 어떻게 사나요? 천막으로 살지~
문틀만 만들어 놓고, 문이 없었던 우리.
어느덧 계절은 겨울로 바뀌었고, 우리는 매서운 겨울 바람을 천막으로 막고 상단부를 자석으로 고정하여 들락날락하였다.
아니 도대체 왜 문을 안달아...?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어느새 내부에 구석구석 들러붙은 여러가지 작업들로 인해 정말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어서, 문을 달아야지 달아야지 하면서도 못달고 있었음 ㄷㄷㄷ
급기야 문이 없으니 온도가 너무 차서 본드를 바르자마자 얼어붙는 현상이 발생... 우레탄폼도 이렇게 낮은 온도에서는 잘 부풀지 않는다
(겨울공사 절대 하지마세요 ㅠㅜㅜ말리는데에는, 비수기인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정말 문을 달아야겠다고 그제서야 다짐하게 된다.
펄럭펄럭펄럭펄럭~~~~ 카키색 천막이 날아가버려서 베이지색 천막이 그 자리를 차지함. 혈투가 난무하는 천막의 세계
사방이 흙투성일때, 가장 평평하고 깨끗한 장소는?
바로 트럭~!!! 지난 번에 마끼다로 깔끔하게 따낸 아치 문틀! 그리고 따내고 남은 아치 문모양의 합판도 있다
요녀석을 알뜰 살뜰 활용해 보도록 하자
방문에 합판 덧대어 페인트칠 하기
6만원짜리 방문이지만, ABS도어인데다 난해한 보라빛의 도장 코팅이 되어있어 사용하기에는 영 마뜩치 않았다.그래서 그 위에 무늬도 줄겸, 일정한 간격으로 합판을 잘라붙여 좀 더 모로코 분위기를 내어보기로 한다.
구원 투수 등판 !
집짓기의 소양을 쌓겠다고 수강했던 가구만들기 수업. 코로나로 각자의 일이 힘들어진, 또는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놀랍게도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다들 많이 돈독해지고 친해졌는데, 그 중에서도 리트리버마냥 모든 이들을 잘 챙기고 분위기를 따스웁게 만드는 한 청년이 있었으니! 코로나로 몸값이 하늘로 치솟던 그 해. 잘나가는 개발자 일을 때려치고, 가구 공방을 차리겠다는 꿈을 향해 정진하는 그저 빛! 그 분이 양양에 강림하시었다. 양양에 별을 보러오겠다며 놀러와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간, 가여운 인간을 어엿삐여겨 널리 이롭게 하시는 그저 빛....!
오자마자 분홍 페인트가 처발처발된 우리의 그지꼴 패딩을 껴입고 묵묵히 장인의 솜씨를 발휘하고 가시었다.이후에도 그는 매우 자주 등장하여, 만능해결사로 양양에 은총을 내리고 홀연히 사라지곤 하였다더라.
입을 앙다물고, 테이블쏘를 이용하여 방문에 붙일 합판을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고 계심
합판이 얇아 팔랑거리기 때문에 반드시 두 명이 작업해야 한다. 둘이 절친됨 ㅋㅋㅋㅋ
합판을 균일하게 잘라내어, 만능본드인 목공본드! 인테리어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필수템, 오공본드 205를 이용하여, 신나게 붙여준다. 본드가 굳는 동안, 유지를 돕는 타카도 잊지 않는다.
이 때의 날씨는 영상 5도 미만의 매우 추운 날씨...! 본드는 주머니에서 세상밖으로 나오자마자 달달달 떨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짜고 나면 바로 얼어붙어, 고정하는데 매우 고생했다....
그리고 여차저차 또 완성 !!!!!
어느 덧 또 해가 진다. 해가 지는 게 참 야속했던 겨울.
그리고 경첩으로 고정!
두 분의 멋있고 너절한 뒷모습... 사회에선 두 분의 이런 모습을 모르겠지요.... 하지만 내 꼴도 만만찮게 그지꼴 ㅋㅋㅋㅋㅋ
흑,,, 마감을 해야한다며 밤이 되었는데도 끝까지 철판을 잘라 높낮이를 맞추고 계시는 그저 빛...
심지어 손잡이 반대쪽 타공 잘못함 ㅠㅠ 빠데(?)로 열심히 메꾸었다 ㅋㅋㅋ
방문을 현관문처럼, 색칠을 해보자
그리고 얼마 후, 눈이 자주 왔다.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합판은 물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밀려있는 다른 수많은 작업과 공정들이 상당히 압박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현관은 얼룩으로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나부터 쫌 해결해라 쫌!"
물얼룩을 지연해보고자 비닐을 씌웠으나, 양양의 바람이 가만둘리가 없지!
낮동안 온 논과 밭을 떠돌다가 해질녘이 되면 슬그머니 찾아오던 걍 동네 개.. 포리.. 이때만해도 옷을 입히려 하면 오만 난리 발광을 쳤었는데, 이제 옷의 중요성을 깨닫는 나이가 되어 옷 입는 걸 좋아한다.
시급함을 깨닫고 S대 서양화과 출신ㅋㅋㅋ 소희가 준 팬톤 컬러차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를 운영중인 그녀는 직접 모든 인테리어를 하고 방 몇개는 걍 산책다녀오듯 페인트칠 뚝딱뚝딱 해버리는 도깨비같은 여자인데, 컬러차트 아무리 봐도 소용없다며, 밑바탕 컬러에 따라 다 달라지니 적당히 하라고 컬러에 집요하게 구는 나를 혼냈다 ㅋㅋㅋㅋ
그러다 던에드워드 페인트의 컬러가 잘나오는 걸 알게되었다. 외부 문이니 괜찮은 페인트를 써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보랏빛 방문에서 현관문의 막중한 역할을 짊어지게 된 우리의 문에게 비싼 페인트를 발라주기로 결정했다
(외부 문이니 괜찮은 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고작 괜찮은 페인트........?)
소희 말이 완전 맞았다...전혀 예상치 못한 컬러로 보답해준 #던에드워드페인트 #Vineyard 굉장히 밝게 나왔다. 나는 조금 더 차분한 색을 원하긴 했다.
그러나 자연광에서는 모든 컬러가 상당히 밝게 보인다. 그나저나 퀄리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강한 햇빛과 잦은 비, 눈에도 색상의 변색이 거의 없이 잘 버티고 있는 중.
방문에 걸맞게 방문손잡이를 달아드림
방문을 현관문으로 쓰면 안되는 이유 (feat. 나만 몰랐던 이야기)
1) 문에 손을 대면, 나가지 않아도 바깥 날씨를 알 수 있습니다.
단열은 그냥 포기 ! 외기의 온도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2) 문을 열지 않고도 바깥 사람과 속삭이듯 대화할 수 있습니다
방음은 그냥 포기 ! 바깥 소리가 마치 내 귀에 종이컵 전화기를 연결한 듯 생생하게 들립니다
3) 꺄아아아앙아아아악 쥐쥐쥐쥐쥐쥐지ㅜ지쥐지ㅜ지ㅜ지쥐지ㅜ쥐!!!!
양양에 디즈니랜드가 개장하였습니다! 문틈으로 새앙쥐들이 들어와 동화 속으로 당신을 데려갑니다.
어느날 포리의 밥이 몽땅 사라진 걸 발견하였다. 포리가 먹었나? 포리가 뭘 훔쳐먹거나 그런 애가 아닌데. 자세히 보니 쥐가 몽땅 뽀식이의 밥을 털어먹은 것이다. 문의 유격이 허용한 틈은 쥐가 드나들기에 충분한 듯했고, 우리는 괴성을 지르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완전히 새로 보수작업을 해야했다. 으웩.. 트라우마.
4)불의 고장 양양, 1초 순삭될 수 있습니다
양양은 봄철 양간지풍으로 인한 불이 잦은 지역이다. 심지어 내가 산 땅도 지난 낙산사 산불때 홀랑 타서 새로 조림 사업을 한 곳이다. 불이라도 나는 날엔, 1초 순삭이다.
5) 문 손잡이에 계란도 익혀먹겠어요
실외에 방문 손잡이를 떡하니 달아놓은 우리. 해를 받아 팔팔 달궈지는 재질 덕분에 한여름에는 문을 열려면 장갑을 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또다시 해가 진다. 양양에 있으면서 많은 것이 단순해졌다.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멈추는 일상.
이 숙명같은 자연의 온화한 어둠 안으로 ,
매번 당연하게 들어가는 일은
이 때의 내게 그 무엇보다도 큰 안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