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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Feb 08. 2024

보름달 아래의 타지마할을 보러 가시겠어요?

사소하고 복잡한 단계들이 있답니다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던 인도여행 일정 중 딱 하나 기대했던 건, 타지마할이었다. ‘인도’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건 타지마할이기도 했고, 먼저 보고 온 가족들이 정말 멋있다며 입을 모아 칭찬했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타지마할만 보기 위해서 인도를 갈 가치가 있다’는 말도 날 설레게 만들었다.


 심지어 보름달과 함께하는 타지마할 야간개장이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오직 보름달이 뜰 때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는 타지마할의 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선물한다는 꿈같은 후기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여행 일정과 보름달의 일정을 맞춰 일생에 한 번뿐인 멋진 경험을 해보리라 각오하고 준비를 했더랬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지 타지마할 야간개장에 대한 정보가 정말 없었다. 주변에야 뭐 물어볼 생각도 안 했고, 모든 정보가 다 있다는 구글에서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어설프게 번역된 여러 사이트들을 뒤지기도 하고, 몇몇 희귀한 블로거들이 남겨놓은 후기들을 꼼꼼하게 살피기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 타지마할의 야간개장은 사전신청 후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둘, 신청은 타지마할과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인도 고고학 사무실'에서 오프라인 신청으로만 받는다.

  셋, 오프라인 신청 시에는 여권이 필수이며, 하루 전날에만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다.

  넷, 직접 확인한 결과 하나는 맞고 둘은 틀린 정보다.


  우리는 네 가지의 사실 중 가장 중요했던 네 번째의 사실은 모른 채로 씩씩하게 인도로 향했다. 그러니 기대가 큰 만큼 당황과 실망도 컸던 입성기의 맥락이 상상되는 바 일 것이다. 그렇게 대망의 날이 밝았다. 아빠는 공항이 있는 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 가는 차 안에서 나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티켓은 오프라인으로 구하는 게 맞냐고.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직도 오프라인을 고수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아 인도니까, 또 멋진 만큼 어렵게 보는 게 당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 말고 다른 것들은 특별하게 없었으니까. 내 말에 아빠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빠의 어깨는 하늘로 솟고 있었다.


  아빠는 인도 내에서도 출장을 많이 다녔다. 그리고 현지인 기사분들과 함께 하면서 여러 정보들을 얻기도 했다. 타지마할의 야간개장 티켓도 그중 하나였다. 인도의 땅이 생각보다 넓은 탓에 아빠가 회사생활을 하는 첸나이라는 도시와 타지마할의 도시인 아그라는 비행기로 서너 시간이나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그래서 아빠가 출장차 올 때에는 기사님과 차까지 올 수 없어서 그 도시에서 새로운 기사님과 차를 빌려 주고는 했다. 아빠는 기사님에게 미리 이런저런 정보들을 물어본 뒤였다. 그리고 얻은 정보로는 가이드를 통해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무려 1,100루피(약 17,000원)이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인도를 생각해 보자면 어마어마한 값이다. 그런데 현지인들에게는 50루피(약 804원)뿐이다. 외국인들에게는 비싸게 받는 대신 자국민들에게는 반의 반 값도 안 되는 싼 가격으로 받고 있는 것이다. 복지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정책이나,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 그렇게나 자국민들을 챙기는 인도에게 몇 년에 몇 없는 ‘타지마할 야간개장’이라는 큰 이벤트도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그 시기에는 현지인 가이드만 구매할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현지인 가이드에게 연락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게 야간개장의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게 그 기사의 말이었다.


  엄마와 나는 거기까지 듣고 반신반의한 마음이 컸다. 인도 아닌가, 그리고 관광지 아닌가. 전 세계의 모든 나라의 모든 관광지에서 바가지나 크고 작은 사기 행위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자명하고도 극명한 사실이었다. 나여도 나 같은 애를 만나면 쉽게 속이겠다 싶었다. 너 이거 보고 싶지? 간절하지? 돈 줘봐 해결해 줄게.


[마리오]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당 캐릭터, 쿠파

  그런데 우리의 기사님. 이름은 ‘순일’이요 슈퍼마리오 게임에 나오는 ‘쿠파’ 캐릭터 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 순일은, 사소한 오해에 눈물을 뚝뚝 흘릴 만큼 순진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 순일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내 친구가 가이드고, 내 친구는 무조건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눈빛과 태도에 인도를 아직 잘 모르던 나는 그냥 속아 넘어가기로 했다.


  인도를 아주 잘 알게 된 지금의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담배*를 씹느라 벌겋게 변한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순일의 얼굴에다 맹렬한 거절을 하기는 참 쉽지 않을 일이다. 그리고 조금 그럴듯하기도 했다. 현지인들을 그렇게나 애틋하게 여기는 인도에서 정부에서 고용된 현지인 가이드들을 위한 프라이빗 티켓을 남겨둔다? 나의 간절한 마음이 믿어보라고 시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잇, 그럴듯하잖아요? 그래서 우린 가이드와의 만남을 고대하며 점심식사를 위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담배*

  인도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담배는 ‘판’이라고 부른다. 여러 향신료와 약간의 환각(!)제, 각성제 등이 들어간 가루로, 작은 봉지에 들어있다. 주로 입가심 용으로 한 입에 털어 넣고 씹다가 뱉고는 하는데, 판을 자주 씹는 사람들의 이빨은 빨갛게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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