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Feb 23. 2024

가시려거든 새벽에 가세요

그리고 오래 앉아계세요

  감히 말해보자면, 인도라는 나라의 방문 목적에 오로지 타지마할 하나만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비행기표를 끊어보라 하고 싶다. 물론 미디어에서 나오는 경악스런 모습도 함께다. 그럼에도 타지마할은 그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갈 만한 가치가 있다.


아주 이른 새벽은 늦은 밤과 다름없이 깜깜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우리는 새벽의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해도 안 뜬 새벽, 길을 나섰다. 어두운 인도는 어쩐지 더 어렵고 낯설어서 쭈뼛거리며 나는 아빠와 엄마, 가이드의 뒷꽁무니만 서둘러 쫒았다. 깜깜한 새벽인데도 타지마할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작은 버스들과 툭툭들은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유난스럽게 우리만 새벽에 타지마할을 보려고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길게 서 있었다.


타지마할의 매표소. 이른 시간에도 북적이고 있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기 위해선 줄을 서서 티켓을 다시 검사해야만 한다. 여자와 남자, 여행객과 현지인으로 또 나뉘어 몸이며 가방이며 모두 철저하게 검사가 필요하다. 한참을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해 나오는 내 가방을 재빨리 찾아서 걷다 보면 간단하게 타지마할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진들이 붙어 있다. 조금만 더 걸어간다면 진짜 타지마할이 있는데 이런 사진이 눈에 들어올 리가. 유심히 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고 바삐 움직이는 발걸음들만이 남았다.



  동쪽과 서쪽의 게이트에서 티켓 검사와 짐 검사를 마친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문으로 향한다. 진정한 타지마할의 입구라고 볼 수 있는 작은 문에서부터 신비로움이 철철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여기 문에서부터 잘 봐봐. 되게 멋있어”


  아빠는 걷다 멈춰서 내게 속삭였다. 이미 온 적 있었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타지마할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 한 건 아니었다. 언젠가  루브르-, 이름부터 프랑스러운 박물관에 가서 인파를 헤치고 본 모나리자. 내 생각보다 너무 작고 작아서 놀란 그 모나리자. 그게 생각이 났다. 모두들 세기의 명작이라 칭찬해서 나도 그런 줄 알고 보았는데 아주 당황스러웠다. 모나리자보다 사람들의 뒤통수만 열심히 보다 왔던 선명한 기억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그래서 타지마할 또한 큰 기대가 없었던 나는 작은 문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작은 문에서 정확하게 보이는 타지마할의 정면은 생각보다 거대해서 깜짝 놀랐다. 이 작은 아치문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타지마할에 난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 어두운 작은 문틈에서 환하게 빛나는 타지마할의 전경은 실제 같지 않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역시 새로운 일을 할 때나, 새로운 경험을 할 때에는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걸까. 타지마할을 보자마자 나는 설레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몇 안 되는 불가사의로 꼽을 만큼 화려하고 신비한 건물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동이 터 오기 시작한 연한 햇빛 아래에서 새벽이슬을 머금은 타지마할은 정말 아름다웠다. 가이드의 권유에 의자에 앉아 사진도 좀 찍고 아직 물안개가 가시지 않은 타지마할의 전경도 열심히 눈으로, 핸드폰으로 담았다, 그 이후에는 타지마할의 안에 들어가서 관람도 했다. 


이렇게 한적한 타지마할은 꽤 귀한 광경이다.
타지마할의 내부, 설명해 주시는 분들의 말을 열심히 들으면 팁을 내야 하니 주의!


  타지마할의 안에는 신발 커버를 씌우고 따로 돈을 내고 입장할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전엔 맨발로 입장했어야 해서 발냄새가 지독했단다. 지금은 신발을 신고 입장하기 때문에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다. 물론 이왕 간 김에 안에도 보는 게 좋은 편이긴 하다만 사람이 너무 많다면 협소한 공간 탓에 크게 즐거운 경험은 아닐 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되겠다.



  그리고 왜 이 건물이 불가사의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한 나라에서 단시간에 조달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대리석과 보석들, 이보다 더 정교할 수 있을까 싶은 벽과 천장, 바닥들은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리석의 양각까지 전부 다 매끄럽게 조각해 낸 것을 보면서 저 조각들이 타지마할의 일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또 얼마나 아름다운 대리석과 보석들이 실패작으로 머무르게 되었을까. 그 모든 양까지 계산해 보자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대리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형형색색의 보석들은 타지마할의 벽면에 빼곡하게 박혀있는데, 이는 모두 그림인 줄 알았던 나를 더 경악케 만들었다. 작은 보석들도 모두 꽃잎 모양으로 세공해서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보석을 끼울 자리를 세공하고, 그다음에 잘 세공된 보석을 그 사이에 깨트리지 않고 잘 끼워 넣어야 하는. 말도 안 되게 섬세한 작업들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벽면에는 꽃 장식들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힌디어인지 아랍어인지 모를 오묘한 외국어로 무언가 잔뜩 쓰여 있는데, 놀랍게도 이것 또한 전부 검은색의 돌을 세공해서 끼워 넣은 것이다. 타지마할의 거대함과 동시에 섬세함, 게다가 사방에서 봐도 똑같은 모양의 치밀함까지. 여러 방면에서 감탄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타지마할의 사방은 모두 똑같은 모습이다


  먼저 방문했던 엄마와 아빠는 새벽 시간에 타지마할에 오니 사람이 별로 없어 좋다고 만족스러운 탄성을 뱉었다. 한낮은 너무 더울뿐더러 사람도 많아서 여유롭게 감상하기보다는 사람에 치이기 쉽단다. 하지만 새벽에는 타지마할 특유의 고요함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다. 우리는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서 햇빛에 여러 빛으로 물들어가는 타지마할을 한참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보름달 아래의 타지마할을 본 적은 없지만 동트는 맑은 하늘 아래의 타지마할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한참을 앉아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이런저런, 시덥지 않으면서 또 마음에 드는 잔잔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결국 마무리로 한 말은 ‘배고파’였으나, 그날의 상쾌함과 경이로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그러니, 타지마할을 보러 가려거든 꼭 새벽에, 꼭 오래 앉아있기를.




  타지마할이 보이는 쪽에서 종종 바닥에 물을 뿌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유를 모른 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친절한 외국인 아주머니가 내 손을 끌어 카메라의 위치를 잡아주셨다. 와! 탄성을 내뱉자 그분은 말없이 엄지를 척 올리곤 홀연히 사라지셨다지.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새로운 구도의 새로운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다. 타지마할에 간다면 꼭 한번 찍어보기!

작가의 이전글 인도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