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이어도 좋아
"찾아보니까 여기 후기가 괜찮더라고요"
어,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누구한테 들었느냐 되물어야 하나? 나는 별안간 툭 날아온 칭찬에 굳어버렸다. 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3초간 어색하게 있다가 아 그래요? 하는 어이없는 말로 받아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반응하는 법. 새롭게 배워야 할 인생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이런 가벼운 칭찬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문제인가요? 그 짧은 순간에 아무 말도 반응 않던 내가 왜 이리 부끄러운지.
수업이 끝나면 그날 수업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겨둔다. 오늘은 이랬고 저랬고 누가 결석했고 지각을 했다니 뭐 이런 간단한 것들. 그러면서 동시에 재원생과 퇴원생, 가망 학생들의 목록도 정리해놓곤 한다. 홍보도 할 겸, 인원 파악도 할 겸. 그렇게 쭉 보다 보니 아뿔싸. 재원생보다 퇴원생이 더 많은 거다. 한두 달 있다가 가버린 아이들도 정말 많고 6개월 이상 다니다가도 그만둔 아이들도 많았다. 오래 수업하는 아이들보다 금방 그만두는 아이들이 왜 이리 많을까...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광고도 열심히 붙이고 상담도 열심히, 수업도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 남은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문제구나.
내가 가진 최악의 습관 중 하나는 자꾸만 내 과거를 돌아보면서 작은 티끌 하나를 커다랗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때 내가 화를 내서? 지각을 해서? 수업을 늦게 끝내서? 어려워해서 그냥 넘어간 것들 까지. 자기 전 무거운 이불과 함께 나를 짓누르는 생각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기 어렵게 만들기 십상이다. 생활 리듬도, 의욕도 점점 꺼져가며 앞으로의 나의 삶에 더 이상 교습소 선생님이라는 건 없어지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불안감을 가득 씹어 삼키는 요즘이었다. 소화도 안 될 여러 걱정들을 욱여넣은 내 몸은 자꾸만 불어나고 있었고 방 안에 틀어박히고 싶다는 생각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에 겨우 눈을 떠 상담을 나가서 처음 들었던 말은 전혀 예상 못했던 칭찬이었다. 학부모에게 구체적으로 후기가 좋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학원의 특성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쳐주세요 바꿔주세요 보다는 말없이 떠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만두시게 되셨을까요? 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물어도 시간표가 안 맞아서요 하는 대답들만 듣고 있자니 노골적인 대답이 아니라서 다행인가 싶다가도 그래 맞아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거야. 이 모든 일들의 출발과 도착 모두 나니까. 하는 괴로움에 내내 망상의 나래만 펼치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후기가 좋다니. 1년이 넘은 수업기간 내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빈말일 수도 있겠다만 나는 모든 걱정들로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푸쉬쉬, 가라앉는 걸 느꼈다. 목소리도 커졌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아주 오랜만에 바로 등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얼마나 지속될 마음인지는 모른다. 당장 내일이 되면 또 다른 걱정이 스멀스멀 차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가벼운 칭찬 한마디에도 어쩔 줄 못하게 벅찬 마음이라니. 나도 참 쉽다는 생각과 함께 쉬우니 다행이라는 마음도 생겼다. 그래도 해봐야지,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