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들과 함께 달리기
그러니까 우리가 타지마할의 야간 관람에 실패하고 새벽 관람을 하러 가던 때였다. 새벽은 해가 안 떠 있었다. 아직 환한 달빛 아래에서 우린 바삐 걸음을 옮겼는데 문득,
'그래 맞아, 저 하늘에 있는 저거. 저거... 달이잖아? 아직 있잖아? 밤이 지났는데도!'
그랬다. 새벽에 아주 일찍 타지마할을 보러 간다면? 달 아래 있는 타지마할과 동이 터오는 모습까지 둘 다 볼 수 있는 거 아니겠냐며. 내가 별안간 이런 말을 하자 엄마와 아빠도 은밀하게 했던 생각이 들킨 표정으로 오 맞아! 맞장구를 쳤다. 괜한 일 같기도 하고, 어이없는 행보인 듯하다가도 또 봐도 좋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다시 새벽 일찍의 입장권을 끊었다.
사실 일전의 가이드가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았던 참이었다. 새벽에 보자고 할 거면 더 일찍 오던가,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도 않고 여러 스팟에서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해서 찍은 사진들은 모조리 엉망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다리를 2m로 찍는데, 우리 가족을 모두 움파룸파족으로 만들어놓은 거 아닌가. 각도도 안 맞고 이래저래 이상한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내가 인도 와서 사진 찍어주는 가이드를 해도 수억을 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이드 없이 가보기로 했다. 타지마할의 바로 근처에서 숙소를 잡았던 우리는 어제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릭샤를 잡아탔다. 바로 직진만 하면 되는데 어라, 정 반대로 가버리는 게 아닌가. 바가지를 또 이렇게 씌우나 했더니 너무 일찍은 우리가 묵었던 근처의 문은 열지 않는다는 거다. 릭샤도 들어갈 수 없는 문을 지나 더 멀리멀리로 갔다. 도착한 곳은 어둠 속의 골목이었다. 치안 좋다고 소문난 한국이었으면 아빠랑 엄마를 믿고 들어가 보자 할 텐데 여기는 인도. 셋이 간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할 곳은 결코 아니었다.
벌벌 떨면서 여길 가? 말아? 하는데 어디선가 경찰이 불쑥 말을 걸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곳은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쩌지, 하고 갈등하고 있는 고 잠깐 새에 어떤 가족들이 쓱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저 사람들은 왜 지나가게 두는 거냐고.
"현지인들은 지나갈 수 있어요."
"나도 인도사람이야! 여기 있잖아 아다르 카드"
아다르 카드. 나도 난생처음 들어 본 카드였다. 쉽게 이해하자면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발 빠르고 이것저것 확실하게 하기 좋아하는 아빠는 인도에 온 지 몇 달 만에 귀찮은 여러 절차들을 감수하고 아다르 카드를 발급받았다. 분명 쓸 일도 많고, 앞으로 인도에서 오래 살 건데 필요하겠다고 단언한 뒤로 선뜻 만들었던 카드였다. 플라스틱도 아니고 코딩된 용지에 몇 글자 적혀있는 카드에는 아빠가 인도 현지사람이라는 보장이 되어있었다.
경찰은 당황하다 못해 황당하게 빵 터져버렸다. 누가 봐도 외국인처럼 생긴, 관광객처럼 생긴 아빠가 불쑥 내민 아다르 카드는 웃음이 나올 만했다. 살짝 살벌한 분위기가 풀어지고 우리는 현지인 사람들을 쫓아 쫄래쫄래 골목을 걸어갔다.
그리고 내 천추의 한이 여기서 나온다. 아무리 무섭고 무서워도 골목의 사진을 한 장 찍었어야 하는데! 이 공포감을 그냥 말로만 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어두컴컴한 골목에 낯선 시선들이 즐비했고, 게 중 제일 두려웠던 건 담벼락 위에서 돌아다니던 원숭이들이었다. 사람이야 아빠도 있고, 어떻게든 해보면 이겨먹을 수라도 있을 것 같았다. 인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경찰도 바로 뒤에 있었고. 그런데 원숭이들은 경찰을 무서워나 할까? 대화로 해결이나 될까? 별안간 달려들어서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겠지. 밀려오는 공포에 우리 셋은 벌벌 떨면서 딱 붙어서 부지런히 경보로 걸었다.
다행히 그 어떤 원숭이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고, 우리는 새로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입구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어색하게 서성이며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고민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몇몇 사람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우리들은 모두 서로 아무 말 않고 대충 눈치로 현지인과 관광객,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게 중 아빠는 아다르 카드를 손에 꼭 쥐고 현지인 줄 가장 앞에 섰다. 나랑 엄마는 참... 이 상황이 웃겨서 배실배실 웃으면서 뒤에 선 멕시코 여자와 눈인사를 나눴다.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아빠 뒤에 선 인도사람들은 여긴 현지인이 서는 자리라며 힙색을 맨 한국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럴수록 아빠의 어깨는 더 커졌다. 아다르 카드를 불쑥 내밀면 사람들이 와- 웃으면서 말을 걸었거든.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점점 희미해져 가는 달빛에 우리는 실패를 직감했으나 그래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트를 지나서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먼저 들어가서 서둘러 짐검사를 마치고 최대한 빨리 타지마할로 들어가 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꽤나 많이 모여있던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들어갔다. 짐 검사를 정신없이 마치고 나올 내 가방과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양인 패키지 관광객들이 정신없이 뛰는 게 아닌가. 일행 중 조금 뒤처진 여자 한 명이 내 옆에서 안절부절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동시에 여자가 자신의 가방을 챙기자마자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RUN!!"
남녀 한쌍이 뛰기 시작하자 나와 엄마도 덩달아 뛰었다.
"엄마 뛰어!"
"왜! 왜!"
"몰라 뛰어 그냥!"
냅다 달리는 우리를 본 아빠는 묻지도 않고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더 빨리 뛰라는 남자친구의 재촉에 노력하고 있다는 서양 언니의 말에 빵 터져가며 나는 계속 뛰었다. 직원들은 안 뛰어도 된다는 듯 진정하라 했지만 멈출 수 없는걸요. 헐레벌떡 뛰어 도착한 뒤에야 그들이 왜 그렇게 서둘러 달렸는지 알게 되었다. 그 패키지 상품은 아주 센스 넘치는 가이드가 같이 있었다. 새벽 가장 이른 시간에 타지마할에 오면 밤하늘 아래의 타지마할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북적거리던 세계적 명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아무도. 사람들은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중간 정자에 모여서 빠르게 사진을 찍고, 가이드는 뒤따라 온 우리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덩달아 사진을 찍어주고 난 뒤에 패키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서 단체사진까지 찍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워낙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몰리는 탓에 정 가운데에서의 사진은 물론, 단체사진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번째 새벽의 타지마할에서 사진도 몇 장 안 찍고 느적느적 걸어 다녔다. 뛰느라 정신없었던 숨을 고르고 나니,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생경한 관광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타지마할에서 보는 두 번째 일출은 역시나 아름다웠고 꼼수는 역시나 꼼수였다. 그래도 별 것들을 다 시도해 본 뒤에야 모든 미련을 툭툭 버리고 상쾌한 아침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쌀쌀한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우리만의 추억을 차곡차곡 모아두었고, 언젠가 다시 오리라 하는 마음으로 타지마할을 눈 속에 몇 번이고 담았다. 굿바이 타지마할, 다음에는 부디 달빛아래서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