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살 선생님
아이들은 왜 이리 선생님의 모든 것을 궁금해할까. 별게 다 알고 싶구나 싶으면서도 나도 어릴 적 선생님들의 모든 것이 다 궁금했으니 뭐.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어휴 뭐가 그리 궁금해! 하고 묻고 싶어 진다. 그런 아이들이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 중 하나가 내 나이다. 보통 학교의 선생님이나 학원의 선생님들은 30대 초반에서 많게는 4~50대 언저리이니, 상대적으로 젊은 나의 나이가 궁금하기도 할 터. 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아이들은 선생님이 몇 살인지가 그렇게 궁금한가 보다.
한 명한테 말해주면 온 동네 소문나겠지 싶은 마음도 있고 굳이 알려봐야 좋을 일 없다는 나의 결론 아래 나의 나이는 여전히 꽁꽁 숨겨진 비밀이다. 그런 비밀을 아이들이 가만 둘 리 있나. 번쩍 손을 들고 궁금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물어온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이래저래 비밀이야~ 하고 넘어가기도 몇 번. 게 중 꼭 집요하게 물어오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칠판에 내 이름을 썼다. 이름에 들어가는 '오'자를 가리키며,
"선생님은 오백살이야"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씨 성을 가진 아이는 그럼 자기는 이백살이라며 소리쳤고, 나는 그래라 하는 허무한 답변으로 아이를 이겨먹었다. 나는 그게 가장 완벽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선생님 공룡도 봤어요? 언제부터 살았어요? 전쟁 때는 어떻게 살았어요? 하는 초등학생들의 질문에도 능글능글 받아칠 수 있는 나이가 된 나는 내가 정말 오백 살이나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 뒤로 기습적인 질문이랍시고 그럼 선생님 동생은 몇 살이에요? 선생님은 몇 년도에 태어났어요? 하는 질문들도 400살이니 뭐니 하며 받아치자 아이들은 내 나이에 대해 시들해졌다.
그러다 별안간 더 완벽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말에 남자아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전 군대에 가 있겠죠? 마침 혼자 남자였던 그 아이 빼고 반의 모든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웃다가 안 갈 수도 있지, 선생님 동생도 스무 살 넘었는데 안 갔는걸?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엇, 하고 멈칫하더니 그럼 선생님은 몇 살인데요? 하는 질문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입을 떼려는데 옆의 아이가 더 빠르게 질문자의 어깨를 툭 쳤다.
당돌한 답변에 나는 혼자 빵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영문 모르게 멀뚱멀뚱 앉아있었지만, 열한 살의 입에서 나오는 구수한 답변에 나는 고개를 젖혀가며 웃었다. 한참을 웃던 나는 그래 맞아 숙녀의 나이는 묻는 거 아냐. 나를 숙녀로 봐준 것에도 감사해야 하는 걸까? 하고 킥킥 웃으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곱씹을수록 완벽한 답변이었다. 그래, 맞아. 숙녀의 나이는 묻는 게 아니다. 그러니 묻지 말고 책 봐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