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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에 Nov 10. 2022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혼자인 나, 더불어 살아가는 나

어제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나는 오후에 출근을 하니깐 비교적 지상철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가는 편이다. 내 옆 옆 자석에 블랙으로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젊어 보이는 청년이 자리를 잡았고,  내 옆자리에 그의 두꺼운 외투를 얹어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휴대폰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리듬이나 박자에 맞추어 몸도 들썩이며 흠뻑 자기의 음악 취향에 취해 보였다. 조금 빠르고 비트 있는 그 장르를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의 볼륨으로 그 음악소리는 지상철 한 칸에 흘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옆 옆 자리에서 말이다. 나는 조금 상식적이지 않는 상황에 마주하면 직접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의 힘을 빌리는 편이다. 예전 같으면 안내되어 있는 긴급 전화 공사 직원이 와서 민원에 대한 부분을 듣고 해결해주도록 요청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내 자리 옆 옆에 있어서 내가 직접 해결해도 될 문제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요청했다. "지금 음악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데요, 이어폰을 쓰는 게 낮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있는데, 대중들이 같이 이용하는 공간이잖아요."라고 말을 건넸다. 물론 더 정중하게 요청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상황에서 나도 기분이 안 좋아 그렇게 표현을 해버렸다. 그 청년은 눈을 크게 뜨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잠시 쳐다보 말을 아끼더니  조금의 정적이 흐른 후에 "네~~~."라고 대답했다.  듣기에 그리 정중하지도 그리 불쾌하지도 않은 진심 없어 보이는 톤으로 짧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보니 마스크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예전 같으면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도 그에게 권유를 했겠지만  차마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역에 내리고 나서도 내가 한 행동은 맞다고 생각되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공질서를 지키는 부분이 아니라 그 청년에 대해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젊고 혈기 왕성한 시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듣고 지철을 탄 순간에서도 그 음악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끊어버리고 싶지 않아 계속 음악을 듣는 멋스러움에 취해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질서를 지키는 윤리의식보다 한  애호가로서 느낌을 더 추구하고 누리고 싶은 자유를 더 선호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게 내 상상이고 추측이니  섣불리 그 청년의 윤리의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단정 지을 수 없다. 당연히 내가 지도하고 있는 중학생들에겐 공공질서 준수라던지,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의식에 관해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청년도 어엿한 성인이고 자기한테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듣기 싫을 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무한한 자유보다  공동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스스로 이기적인 행동은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다수의 의견이고 공공의 의견이니  개인별, 소수의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공공질서  준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사람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노력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도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서만 바라보고 곧이곧대로 그냥 믿어온 경향 많다. 그러면  너무 내  관점만 옳아서 이면을  볼 생각을 안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나중에 알게 되면, 후회가 밀려오는 나를 만나는 순간에 마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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