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난다. 나는 오후에 출근을 하니깐 비교적 지상철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게 가는 편이다. 내 옆 옆 자석에 블랙으로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젊어 보이는 청년이 자리를 잡았고, 내 옆자리에그의 두꺼운 외투를 얹어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휴대폰에서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리듬이나 박자에 맞추어 몸도 들썩이며 흠뻑 자기의 음악 취향에 취해 보였다. 조금 빠르고 비트 있는 그 장르를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의 볼륨으로 그 음악소리는 지상철 한 칸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내 옆 옆 자리에서 말이다. 나는 조금 상식적이지 않는 상황에 마주하면 직접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의 힘을 빌리는 편이다. 예전 같으면 안내되어 있는 긴급 전화를 해 공사 직원이 와서 민원에 대한 부분을 듣고 해결해주도록 요청하는 편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로 내 자리 옆 옆에 있어서 내가 직접 해결해도 될 문제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요청했다. "지금 음악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데요, 이어폰을 쓰시는 게 낮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있는데, 대중들이 같이 이용하는 공간이잖아요."라고 말을 건넸다. 물론 더 정중하게 요청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상황에서 나도 기분이 안 좋아 그렇게 표현을 해버렸다. 그 청년은 눈을 크게 뜨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잠시 쳐다보며 말을 아끼더니 조금의 정적이 흐른 후에 "네~~~."라고 대답했다. 듣기에 그리 정중하지도 그리 불쾌하지도 않은 진심 없어 보이는 톤으로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보니 마스크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예전 같으면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도 그에게 권유를 했겠지만 차마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역에 내리고 나서도 내가 한 행동은 맞다고 생각되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공질서를 지키는 부분이 아니라 그 청년에 대해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젊고 혈기 왕성한 시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유롭게 듣고 지상철을 탄 순간에서도 그 음악에 대한 감상과 느낌을 끊어버리고 싶지 않아 계속 음악을 듣는 멋스러움에 취해 멈추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질서를 지키는 윤리의식보다 한 음악 애호가로서의 느낌을 더 추구하고 누리고 싶은 자유를 더 선호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게 내 상상이고 추측이니 섣불리 그 청년의 윤리의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당연히 내가 지도하고 있는 중학생들에겐 공공질서 준수라던지,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의식에 관해 얘기했을 것이다.그러나 그 청년도 어엿한 성인이고 자기한테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듣기 싫을 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끼게 하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무한한 자유보다 공동의 안전과 편안함을 위해 스스로 이기적인 행동은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다수의 의견이고 공공의 의견이니 개인별, 소수의 다른 의견도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공공질서 준수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사람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노력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도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서만 바라보고 곧이곧대로 그냥 믿어온 경향이많다. 그러면 너무 내 관점만 옳아서 이면을 볼 생각을 안 했다는것을 뒤늦게 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나중에 알게 되면, 후회가 밀려오는 나를 만나는 순간에 마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