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늦은 가을비가 조금 내렸는지 아침에 창문을 여니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들이 아파트 거리에 떨어져 한가득 쌓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이다. 알록달록 단풍들이 비가 온 다음날 땅에 떨어지고 그 흔적들을 밟아보고 걸어가는 일은 정말 로맨틱하게 생각하는 장면이다. 이 가을향기 물씬 나는 장면을 본 후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사는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주 운치 있고 낭만스러운 이 늦은 가을을 듬뿍 적시러 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도 운치 있는 찰나의 순간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그 찰나의 순간은 많은 여행 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남은 인생이 일 년이라면 또다시 남편이랑 매일 여행을 떠나며 그리고 그 여행 중에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 순간 잠시 멈추고, 남편의 눈을 바라보고 수줍게 미소 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포옹하고 따뜻한 품 안에 기대어 "자기야,사랑해"라고말할 것이다.오늘처럼 말이다.
가을이면 생각나는 여러 영화 중에 만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탕웨이의 카멜색 롱 트렌치코트가 생각나는 영화, 그 영화에서 모든 것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시애틀의 날씨가 나온다. 시애틀은 화창한 날이 연중 55일밖에 되질 않을 만큼 흐리고 축축한 날이 많다. 안개는 악명이 높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만추 영화 속에서 버스 기사 아저씨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 맘 때 시애틀은 늘 안개가 많고 비가 오는데, 지금은 해가 났네요. 햇빛을 즐기세요, 안개가 다시 끼기 전에.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후딱 갑니다. 즐기세요. 마음을 열고 지금 사랑하자고요!
언젠가는 할 거라고 미루기만 했던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남편이랑 14년 정도 참 많이도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해외여행은 자주 다니지는 못했지만 국내 여행은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녔다. 그리고 여행을 가면 항상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고 그 여행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찰나의 순간은 꼭 촬영하고 온다. 그러나 요즘은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그의 모든 사진들이 디지털로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진들은 구글 포토에 저장되어 있는데, 인화를 하여 앨범으로 제작해 놓은 경우가 많지 않다. 언젠가는 여행사진을 그중에서도 찰나의 사진은 꼭 인화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만지고 넘길 수 있는 추억의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다. 이제는 여행 다니는 것을 조금은 줄이고 그 찰나의 감성과 기억을 손으로 만지며 평생의 기억으로 남는 남편과 나의 '여행과 인생' 앨범을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