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나에게 무던히도 긴 여름을 견디게 해준 책들이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김영하 『읽다』 같은 책들.
스무 살이 되기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중간이 여러 번 잘린, 제멋대로 편집되어 알아볼 수 없기 되어버린 필름처럼 이따금씩 기억난다. 하지만 스무 살 무렵 시골의 작은 방에서 밤이 깊은 줄도 모른 채 읽어가던 책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내가 지금의 나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세상에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그들과 내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 위로받기 때문이다.
삶에서 몇 번 남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와 고향의 대운동장 둘레를 돌며 자전거를 배운 일이 있다. 소년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부축을 받아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어느새 아버지는 두 손을 놓았고, 나는 제 힘으로 나아가는 것도 모르는 채 열심히 페달을 굴렀다. 한참을 내달리고서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는 저 멀리 작은 모습으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더위와 귀를 울리던 매미소리, 뺨을 스치던 바람과 내리막길을 달려가뎐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봄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
이 시집을 몇 번 더 읽을 수 있을까?
_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얼마 전에 나는 처음으로 장거리 운전을 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앉아 나를 두 시간이나 지도해주셨다. 덕분에 운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집에서부터 천안의 병원까지, 긴 대학생활동안 아버지는 수없이 나를 태우고 그 길을 왕복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며칠에 한 번씩 안부를 전하고, 일년에 얼굴을 보는 날이 손에 꼽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그분에게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지 기대되면서도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깊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