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힘에 대하여
불교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소치는 사람 다니야와 부처의 대화가 나온다. 소치는 사람 다니야는 가진 것으로 인해 행복해 안정된 삶의 상태에 대해 말한다. 부처는 이와 달리 가진 것, 즉 얽매일 것이 없는 삶의 행복과 자유에 대해 말한다.
스승은 대답하셨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에는 아무것도 걸쳐놓지 않았고, 탐욕의 불은 남김없이 꺼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뒤에 가서는 신의를 지킬 아내를 둔 사람의 행복에 대해 다니야가 말하는데, 스승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힘에 대해 설법한다. 그러니,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에게서 자라고, 벗을 만나 함께하며, 연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으로 말미암아 행복하더라도, 결국 혼자 있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만 진정으로 주인이 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선종의 화두집을 읽다가 나는 이런 구절을 발견하였다.
무문관 제 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옛날 석가모니가 영취산의 집회에서 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때 대중들은 모두 침묵했지만, 오직 위대한 가섭만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말했다. "내게는 올바른 법을 보는 안목, 즉 열반에 이른 미묘한 마음, 실상에는 상이 없다는 미묘한 가르침이 있다. 그것은 문자로 표현할 수도 없어 가르침 이외에 별도로 전할 수밖에 없기에 위대한 가섭에게 맡기겠다."
_강신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세존의 말에 따르자면 아내나 벗 부모나 자식도 나의 행복과 무관한 사람이며 삶에서는 오로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 진정한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자신의 무대로 만들 뿐, 조연이나 배경이 그의 행복에 간섭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취산 집회에서 세존이 가섭을 보고 기쁨을 느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진정한 벗이란 무엇일까? 벗은 서로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려운 말이나 행동 없이도 한번 눈 마주침에 서로의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이. 그 사이에서는 불가의 미묘한 가르침도 쉽게 오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애써 나눌 벗이 필요 없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 우리의 고민이나 사유를 깊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벗이란 나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나를 능히 짐작했을 테니까.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가 이상적 상태다. 행복이든 괴로움이든 누군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한 차원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진정한 벗이란 누구인가? 서로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서로의 뜻을 한 길 눈짓으로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당신에게는 그런 벗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