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본사는 투칸 Oct 28. 2021

편식쟁이 엄마라 미안해

스웨덴 남자의 식육론(食育論)과 나의 잔반 트라우마

그는 아주 아주 아주 육아에 관심이 많다. 직업적 영향도 있겠으나 그걸 감안해도 많은 편인 것 같다. 요즘은 한국 아빠들도 육아 관심도나 참여도가 높은 편이라 그가 스웨덴 남자라서 특별히 육아 관심도가 높다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관심이 아주 많다.


특히 그는 식(食)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고,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대부분의 식사는 그가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자마자 그가 가장 관심 있어한 분야가 바로 이유식일 정도다.


애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버님




일본에서는 아이들의 먹을거리 교육을 식육(食育)이라고 하는데, 그는 벌써부터 이 식육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 왜냐면 엄마인 내가 입 짧은 편식쟁이라 아이만큼은 다양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것.


사실 나는  자신이 무던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30 넘게 살아왔는데, 스웨덴 남자와 살면서 내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먹을 것에 대해선 편식도 심하고 입맛도 까다로운, 쉽게 말해 주는 대로 받아먹지 않는 사람이란  비로소 알게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채소는 거의 입에 대지도 않는 극도의 편식쟁이였어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시긴 했는데, 자라면서 오이를 빼고는 대부분의 채소는 다 먹게 되었으므로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스웨덴 남자는 채소 조리를 최소화하는 걸 선호하는데, 그래서 그는 생채소 혹은 데치거나 구운 채소를 주로 식탁에 올리곤 한다. 그리하여 내가 식탁에서 마주한 것은 바이킹처럼 호쾌한 사이즈로 잘라낸 데친 브로콜리와 데친 시금치, 생당근 등등이었다. 이것들을 오만상을 쓰며 입에 집어넣으면서 나는 조리방법의 문제라고 항변했고, 스웨덴 남자는 편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해서 초장을 보내달라고 울부짖었다.)


채소 편식뿐만 아니라 전날 만들고 남은 음식은 잘 손대지 않는 다던지(그래서 혼자 살 때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양만 만들곤 했었다), 밥에 대해서도 선호하는 조합(대체로 현미 6 백미 4 + 잡곡 조금)이 있다던지 등등 나는 의외로 입맛이 까다롭고 입도 짧은 편이었다는 것을 스웨덴 남자와 살면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스웨덴 남자는 우리 아이만큼은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로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진실을 말하자면 이에 대해서 나는 100% 동의하는 편은 아니다. 요즘 세상에 좋은 영양제며 대체 식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싫어하는 음식을 영양가론을 내세우며 입에 대야 하나? 하는 것이 나의 생각.


이런 생각은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생성된 나의 트라우마와도 연관되는데, 당시에만 해도 영양사 선생님이 출구를 지키고 서서 급식 지도라는 이름으로 잔반 확인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편식쟁이인 나에게 급식시간은 즐거움보다는 괴로움과 고통에 가까웠고,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잔반통에 버릴 수 있을지를 매일같이 고민해야 했다. 입에 물고만 있다가 출구를 나서서 쓰레기통에 뱉어내는 방법도 시도해봤으나, 이를 간파한 영양사 선생님은 입 안의 음식을 씹어 삼키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노라며 장판교의 장비처럼 버티고 섰다. 그리하여 어린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먹지 못하는 오이김치를 억지로 삼키고, 화장실로 달려가 그날 먹은 급식을 그대로 게워내고야 말았다. 지금 같으면 학대라고 학부모 항의가 빗발칠 행위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무튼 그때부터 나의 마음 한편에는 우리 아이만큼은 절대로 싫은 음식을 먹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리한 것 같다.




나는 이 뜻을 그에게 전했다. 그 역시 싫은걸 억지로 먹여선 안된다는 생각엔 동의했다.


다만 그는 한 번 먹어봐서 싫다면 다른 조리 방법으로, 혹은 다른 식자재를 섞는 조합으로 시도해봐야 한다고 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다음에 조금씩 본연의 맛도 즐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는 이미 다 큰 어른인 나에게 생당근을 먹이기 위해 당근을 갈아서 폰즈를 뿌리는 시도도 해본 사람이다. 내가 입을 대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샘솟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이율배반적인 면을 드러내는 영역은 있었으니 바로 달다구리에 대한 것. 그는 초콜릿과 젤리 같은 달다구리를 아주 좋아하는데 아이에게도 달다구리를 맘껏 먹일 수 없는 노릇이란 것은 그 스스로가 더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과자나 초콜릿은 금지야. 간식은 과일을 먹일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도? 정말 하나도 안 먹을 거야?


그는 크리스피 크림의 신상은 절대 놓치지 않는 달다구리 애호가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회사 데스크 서랍에는 초콜릿과 젤리를 넣어두는 치사한 어른이 되기로 했다. 어쩌겠니 딸래미야. 억울하면 너도 얼른 커서 어른이 되렴! 그러면 달다구리도 먹고픈 만큼 먹을 수 있고 싫은 음식도 안 먹어도 된단다!(대신 그 모든 섭취의 결과는 너의 책임이 된단다.)




부모도 그냥 사람이라는 사실을 엄마 아빠가 되어보니 알겠다. 우리 엄마도 나의 식육(食育)을 위해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입에 넣은 적이 있을까. 편식쟁이 딸이 편식쟁이 엄마가 되려고 하니 생각이 많아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을 살아가는 임산부와 백신(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