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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본사는 투칸 Jan 20. 2024

반반육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사이좋게 육휴를 반씩 나눠가진 결과는?

나와 남편은 육휴를 사이좋게 반씩 나눠 썼다. 라떼 파파의 나라에서 오신 분이 강력하게 육휴 사용을 원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일본의 육휴 시스템 상, 부부가 사이좋게 육휴를 반씩 나눠 쓰는 게 경제적으로도 가장 유리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육휴 수당 제도에 대해선 이 글에서 다뤘다

https://brunch.co.kr/@cyaana/40


나는 출산 후 6개월 하고도 열흘정도 육아 휴직을 했다. 남편은 내가 복직하기 한 달 전부터 육휴에 들어가, 아이가 보육원(어린이집)에 입소한 4월부로 복직을 했으니, 8개월간 육휴를 썼다. 오히려 나보다 남편이 육휴를 더 길게 쓴 것이다.


육휴 전부터도 이미 육아 참여도가 상당히 높은 라떼 파파님이었기 때문에 아이의 케어면에서는 큰 걱정이랄 게 없었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주양육자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정서적, 애착 형성면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점은 걱정이었다. 이 때는 나 역시도 아이와의 분리 불안이 절정을 찍던 때라 더욱 마음이 심란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잘 지냈다. 아빠의 육휴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아이는 막 기어 다니려고 배밀이를 하던 무렵이었는데 아빠가 온몸으로 신나게 놀아주면 그녀는 매우 만족하며 까르르 웃었다. 쫄보이자 게으름뱅이인 나는 절대로 시도하지 않을 맨발로 잔디밭 기어 다니게 하기나 비행기 태우기, 한국 할머니가 보내준 김장매트에서 물놀이하기 등, 체력을 갈아 넣어야 할 수 있는 온갖 놀이를 그녀에게 선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놀이 레퍼토리는 고갈되어 버리기 마련인데, 그간 엄마가 놀아준 방식과 전혀 다른 놀이를 아빠와 함께하며 아이는 그저 즐거워했다.


식(食)의 측면에서도 그의 정성은 대단했다. 막 이유식을 시작할 타이밍에 육휴를 시작한 그는 어떤 식재료를 어떻게 접하게 할지 궁리하며 정성껏 이유식을 만들어 딸의 입에 넣어줬다. 아빠가 정성을 쏟아 만든 식사를 먹지 않고 뱉어내는 딸을 보며 상처받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육휴 반년째, 아이의 보육원(어린이집) 입소가 결정된 날 그는 내심 떨어져서 1년 더 같이 지내길 바랐다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눈물 나는 부정(父情)이 아닐 수 없다.


엄마는 게을러서 유모차에 태워서 돌아다니기만 했으나 아빠는 달랐다.

 



이러한 눈물의 대서사를 걸쳐,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육원(어린이집)에 입소하고 그가 복직을 하면서, 그의 직장이 먼 관계로 등하원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늘긴 했지만 여전히 아빠와도 잘 지내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아침에 눈 떠서 오전을 함께 보낸 게 누구이냐에 따라 그날의 아이의 최애(?)가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주말 아침에 내가 약속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가 오후에 귀가하면, 그녀는 아빠 껌딱지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오전 시간을 아이와 함께 지내면 그날은 엄마 껌딱지 확정이다. 일본의 연말연시 연휴기간 동안 남편이 나보다 육아 참여가 높았는데, 그랬더니 귀신같이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이 아이의 주양육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비록 그녀가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아빠와 보낸 반년이 아이에게 있어 즐겁고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양육자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반반육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누구 하나가 외출이나 출장 등으로 부재하거나, 병으로 육아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걱정이 없다. 둘 중 누구라도 아이를 눈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케어할 수 있다는 점은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둘 중 하나가 밤에 잠깐 외출을 즐기러 갈 때도 걱정이나 죄책감이 덜하다. 아이는 둘 중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육아 중에 소소하게 상처받거나 기운이 빠질 일이 생기면(대부분 애가 잘 안 먹거나, 잘 안 자거나로 인한 것들이다)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둘째가 생기더라도 육휴를 남편과 나눌 것이냐 묻는다면 정답은 당연히 YES이다. 여건만 된다면 나누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빠도 육휴를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모든 아빠가 육휴를 쓰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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