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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한집사 Oct 21. 2021

길고양이 구조의 이면

오늘도 길고양이 겨울집을 만든다…

며칠을 열과 기침속에 헤메이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쌓여가는 감기약 빈 껍질들을 보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근처에 사는 지인이 대추차 달인 물을 보온병에 한가득 가져와 주어서 위로삼아 지인의 정성을 마시니 코가 뚫리고 기침도 멎었다…

기침을 많이하면 가슴뼈가 아프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멍울이 맺힌듯 그렇게 가슴이 아파온다.


일상을 되 찾은듯 아침에 일어나 의자에 반쯤 누워 창밖을 보니 겨울인듯한 가을이 온통 흐린 빛으로 가득하다.

‘그래… 지금은 가을이지…’

문득 생각난 듯이 혼잣말을 해보니 겨울옷을 잔뜩 껴입고 있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더워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켰는데… 어느날 갑자가 한겨울 같은 찬바람이 불며 찬란하고 고운 가을이 없어진 것 처럼 보였다.


아무리 창밖이 흐려도 지금은 가을이다.

두건의 꼬리 다친 길고양이 병원비 충당을 위해 드디어 길고양이 겨울집 만들기를 시작했다. 지인들은 모금이라도 하지 라고 권했지만…그러고 싶지 않았다.  많은 동물 구조자들이 아이들을 위한다고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구걸하듯이 글을 올린다.

가끔씩 아는 지인 들의 글에는 나도 후원금을 보내기도 하는데 아직 한번도 후원의 글을 써 본적이 없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나의 한계치 만큼만 하고 싶어서 일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두었기에…

이번 꼬리 다친 노랑이는 구조한 회사에서 십시일반 직원들이 모금한 금액과 나머지는 결국 내몫…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회사 사람들의 마음 가짐이 고마웠다.

사람들은 구조란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정부에서 해 줄수 있는 부분(서귀포시는 다친 아이에게 20만원 지원) 이외에는 모두 구조자가 고스란히 떠 맞게 되어 있다.

먼저 다친 아이를 동물보호센터 병원으로 보내고 수시로 담당 의사 선생님과 통화하며 아이의 근황을 듣는데 의사 선생님은 그곳에서는 돌볼 아이들이 너무 많아 최소한의 진료만 해 준다고 만일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면 데리고 나와 일반 동물병원에서 치료하라고 솔찍하게 이야기 해 주신다.

그래서 보낸 아이를 다시 데리러 보호센터에 간다. 가서 보면 들어갈 때보다 더 안좋은 상태로 보여 여기 있어서는 그냥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데리고 오는 내내 구조틀 안에 있는 길고양이에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를 계속해서 읍조리며 나와 길고양이의 처지가 같은 것 같아 매우 가슴이 아프다.

방파제에서 구조한 새끼고양이도 꼬리를 다쳐서 보냈는데 다시 데려오지 않았다면 후회할뻔했다.

구조요청자는 그저 구조만 요청할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외면할 수가 없어 구조용 노란틀을 가지고 나서면서 고양이에게는 항상 돈주머니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씁쓸해진다.

다행히 시지원 20만원 확보… 입원 18일..

엄청 많은 병원비를 예상했으나 병원에서 나의 처지를 아시고 매번 최소한의 금액만 받으신다…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이번 방파제 길고양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년 해오던 길고양이 겨울집 만들기를 공개적으로 하기로 했다. 재료는 내가 다 사고 스치로폼 박스는 재활용센터에서 가져오고… 그래서 단돈 만원 ㅎㅎ

재료비가 거의 70% 이상을 차지하지만 많이 팔면 길고양이들도 따뜻한 겨울을 맞을 수 있고 내 통장 마이너스도 줄일수 있겠지~~~

스치로폼을 소독한 후 구멍을 내고 안쪽에 내열단열재를 붙이고 마감 후 검정 뽁뽁이와 두꺼운 비닐로 이중 감싸기 ㅎㅎ구멍에는 장판으로 둥글려서 비와 바람이 덜 들어기게 하고 오묘한집사표 안내문을 붙인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포근한 담요에 캣닢가루를 뿌리고 심심하지 않게 마따따비까지 넣어주는 센스 ㅎㅎㅎㅎ

이것이 바로 오묘한집사표 길고양이겨울집이다.

현재 3개 팔고 주문도 20개, 아마도 60개는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ㅠㅠ


흐린 가을 하늘에

지독한 감기까지….최악의 상태이지만

현관에 쌓여있는 스치로폼 박스로

오늘도 길고양이 겨울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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