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갬성꿈나무 Aug 21. 2023

30. 여행하는 데 왜 꼭 눈이 보여야만 하죠?

별안간 나의 가슴을 때린 명쾌한 대답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시각 장애인에게 여행은 너무 힘들어. 이번 여행은 포기해야겠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여행하는 데 왜 꼭 눈이 보여야만 하죠?

맞아요. 조금 걱정은 되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그만둘 정도는 아니에요. 제가 여행 중에 포기했다면 놓쳤을 저 멋진 것들을 보세요.

시각 장애 때문에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적은 없어요. 자동차 운전만 빼고요. 저도 운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믿을 수 있는 자율 주행 자동차를 갖게 된다면 누구든 태워주고 어디든 갈 거예요!"


여행하는 데 왜 꼭 눈이 보여야만 하느냐고 되묻는 그녀의 한 마디가 가슴을 마구 때렸다. 최근 들어 이렇게 멋진 인터뷰를 봤나 싶다. 비장애인을 포함해서.


위의 대화를 책《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에서 만났다. 이 책을 관통하는 두 단어는 '삶'과 '죽음'이다.

저자 제임스 R. 해거티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자, 기자로 지냈다. 현재는 매일 2~3시간을 할애해 전 세계의 사망 기사를 찾아 읽고, 그들 중 누군가를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쓴다. 그는 부고 전문기자다.



저자는 사망한 이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작업을 통해 죽음이라는 단어의 무게로 가려져 있던 인생의 의미를 다시 삶의 형태로 바꾼다. 


인터뷰 대상자인 키네웬 킹스미스는 망자(亡者)가 아니지만, 제임스는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이토록 흥미로운 대화는 흔치 않을 거라며 자신의 책에 그녀의 인터뷰 내용을 싣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60대 후반의 시각 장애인이다. 그녀는 노래를 잘해 성악 수업을 하고,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 그녀는 중국에 스물세 번 다녀왔다.


제임스의 질문에는 시각 장애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고난과 시련이 빠질 리 없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 낙담한 일은 없었는지, 단어를 조금씩 바꿔가며 여러 차례 물었다. 나 역시 시련을 겪었을까 궁금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도 당찼다. 


'여행하는 데 꼭 눈이 보여야만 하는가?'

'시각 장애 때문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못한 적이 있는가?'


이 물음에 모두 No라고 답한 그녀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이고 강인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양면성을 지닌다. 낙천주의자 같은 면모를 지닌 그녀는 어느 날 집에서 펑펑 울었다. 교수에게 러시아어를 전공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학생은 원어민처럼 유창해질 수 없으니 교사가 되기도 글렀고. 참, 시각 장애인들은 바구니를 멋지게 만들던데 학생도 그런 일을 해야지."


충격에 빠진 키네웬은 내리 4시간을 자고 일어나 다짐했다. '형편없는 조언은 무시하겠어.'


가시 돋친 말과 행동들은 삶을 통째로 흔들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양분으로 삼았고 한층 성숙해졌다. 그녀의 선택에 의해서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는 데 자꾸만 필요한 도구들을 체크하는 나를 돌아본다. 매사에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내년이 되면, 40대가 되면, 1억을 벌면, 경력을 몇 년 더 쌓으면, 좀 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이런 조건들이 꼭 충족되어야만 할까?


키네웬은 앞이 보이지 않는 건 여행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여건이 변변치 않다고 해서 별 문제될 게 없지 않겠나. 뭐든 해 보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다. 일단 이 글을 마무리하자.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한다고 푸념했던 과거의 조건부 목표설정을 버리도록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조건이 아닌 나의 선택에 의해서 할 수 있도록.




                    

*참고: 제임스 R. 해거티,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29. 하루가 짧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