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짧았다. 잠에 휩싸인 하루였다.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어젯밤 9시 45분에 잠들었으니 13시간 넘게 잔 셈이다.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불안감을 느낄 때, 그러니까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자주 꾸는 꿈이 있다. 학교에 가는 꿈, 지각하는 꿈, 교실을 찾지 못하고 복도를 헤매는 꿈. 늘 패턴이 비슷해서 익숙해질 만도 한데 꿈속에서 늘 최선을 다해 목적지로 향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혼잣말을 반복하며.
하루가 짧았다. 주말마다 카페에 갔는데 그 루틴을 깼다. 가기 싫었다. 카페에 갈 때의 단점들이 장점을 이긴 것이다. 집에서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오후에 잠이 쏟아졌고 3시간 낮잠을 잤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계획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하루를 써버릴 때면 스스로를 한심한 인간으로 치부했다. 가치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고 그렇게 자주 잠에 허우적대곤 했다. 할 일에서 도망치는 방법으로 잠에 빠지는 건 달콤했다. 잠이 들면 한심한 나를 잊을 수 있었다.
하루가 짧았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잔 날이었다. 작년까지 나는 이런 날들과 꽤 자주 마주했다. 16시간을 잘 때도 있었다. 종일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유튜브를 봤고 어떤 날은 게임을 했다.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올해도 그런 날은 있었다. 변한 게 있다면 그런 날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80% 이상 줄였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햇빛을 쬐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제때 점심을 먹고, 할 일을 해 나갔다. 학교 가는 꿈을 거의 꾸지 않게 되었다. 조금씩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하루가 짧았다. 오늘은 과거처럼 내가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난주부터 잠을 잘 못 자서 그래.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래. 요즘따라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변화들에 노출돼서 그래. 열심히 살려다 보니 조금 지쳐서 그래.’ 작정하고 나를 변호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내가 나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가 짧았다. 나는 나를 조금 더 아끼게 된 것 같다. 나는 나와 조금 더 친해진 것 같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나를, 이제야 사랑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230820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