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친구들이 진지함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2병, 진지충, 설명충. 각 잡고 얘기하려고 하면 '설명충' 그러더라고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지, 덜 진지하게 해야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기를 밋밋하게 깎아가려는 것 같아요.
저는 안타까워요. 왜냐하면 그때 깎여 나가는 것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흔히들 찌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멋지지 않은 모습. 20대는 찌질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때라고 생각해요.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객관적으로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내 감정을 포함해서. 그때 보이는 내 장점이 진짜 장점이고, 그때 보이는 내 단점이 진짜 단점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다림질은 그때부터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아요.
20대부터 너무 다림질하기 시작하면 그냥 보급형, 기성품 같은 사람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 또래 사이에서 멋있어 보이려는 것에 갇혀서, 지금 자기만 갖고 있는 재료들을 털어내려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으셔야 됩니다."
5년 전 청춘페스티벌 강연에서 김이나가 했던 말이다. 찌질한 자신을 좀 더 사랑하라는, 보급형처럼 밋밋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30대 후반 언니의 당부. 이런 조언을 하기까지 그녀 역시 찌질함에 만전을 기했던 시기가 있었으리라.
찌질하다는 건 뭘까? 김이나는 남보다 과잉돼 있거나 결핍돼 있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MBTI가 이 점을 대신 설명해 주고 있는 듯하다. 눈물이 과잉되면 "너 F야?"라는 소릴 듣고, 결핍되면 "너 T야?"라는 소릴 듣는 요즘.
눈물 많고 상처 잘 받게 타고났으므로 매사에 무른 나는, 나다운 나를 몹시도 싫어했다. 내가 '갬성꿈나무'라는 작가명을 쓰고 있는 건 나름의 의지를 담고 있다. 극 F 성향으로 감성은 이미 과잉됐으나, 어느 정도는 조절해 보고 싶다는 하고말고 한 의지.
수년이 흘러 영상을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게 됐다. 저자 인터뷰 촬영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하루동안 촬영 3건을 진행했다. 세 분을 만나 그들의 인생사를 들었다. 신기한 건 분야가 다른 인터뷰이 세 분에게 각각 다른 질문을 했는데, 대답이 거의 비슷했다는 점. 내가 발견한 그들의 공통점은 이랬다.
첫째, 찌질한 나를 인정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임)
둘째, 잘했다고 까불지 않고, 못했다고 죄절하지 않는다. (일희일비하지 않음)
셋째, 도전에 두려움이 따르는 건 디폴트라고 여긴다. (도전 그 자체를 인생의 가치로 둠)
가장 인상적인 게 바로 첫 번째 공통점, 찌질한 자신을 숨기지 않는 수용의 자세였다. 그들은 찌질했던 자신을 사랑했고,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 찌질한 경험이 다른 찌질한 이를 위한 길을 터줄 수도 있겠다는. 결코 숨기거나 지우고 깊은 기억으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듯이, 찌질한 나는 또 다른 찌질한 누군가를 낳고 그 찌질한 이는 또 다른 찌질한 이를 낳는 것. 그렇게 여리고 어렸던 과거의 어리석었던 나를 드러내고 다독이는 것이다.
유흥비에 돈을 탕진하고 600원짜리 매점빵 사 먹을 돈이 없어 먼발치에서 쳐다만 보던 배고픈 찌질함, 새벽녘 전남친에게 ‘자니?’라고 질문하던 아련한 찌질함. 청춘 곳곳에 구질구질한 내가 만연해 있다. 그런 주름진 20대의 내가 있었기에, 30대는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처럼 자신만의 명확한 선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찌질한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나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