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은 장인 같다.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하여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 멋지지 않은가? 어떤 식으로든 타인의 눈에 띄어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나와는 달리, 그들은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들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좋다.
유튜브로 알쓸인잡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최초의 우주복을 만든 재봉사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우주복 제작에 난항을 겪고 있던 1960년대의 나사(NASA)는 한 속옷 회사에 우주복을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한다. 심스트리스라고 불리던 여성 재봉사들이 총동원되어 우주복을 한 땀 한 땀 꿰맸고, 시행착오 끝에 21겹, 4000조각을 이어 붙여 비로소 한 벌의 우주복이 만들어졌다. 심채경 천문학자는 "냉각, 가압, 온도유지, 유연성, 대소변 수집장치 등을 갖춘 우주복이야말로 과학 기술의 총집합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우주복의 높은 완성도가 달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심스트리스의 장인 정신이 엿보이는 일화다.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는 '미세아교세포(microglia)'라는 뇌 속 작은 세포를 다룬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 이 세포의 크기가 너무도 미세하여 과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죽은 뉴런이나 먹어치우는 뇌 속의 청소부 정도로 여겼다.
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연구는 고도화했고, 그 결과로 최근 들어 미세아교세포가 뇌뿐만 아니라 몸속 면역계까지 면밀히 정찰하는 보안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얕잡아 보던 일개 세포가 수조 개의 시냅스를 보호 및 복원하고 번성시키면서 뇌 건강을 좌지우지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는 사실은 과학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미세아교세포를 알게 된 후 주위를 둘러보니, 이 놀라운 세포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포트, 백업 중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크고 작은 혁신을 일으켜 변화를 만든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모든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아주 작은 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인체를 관장하는 뇌, 그 속에서 정찰하는 미세아교세포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거인들의 장인 정신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