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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ug 31. 2023

35. 일과 돈에 앞서, 사람이 좋아서

회사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사람, 내가 할 업무의 생김새와 연봉은 그다음. 같이 일할 사람이 좋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Go 한다.


6~7군데 회사를 다니면서 근속연수가 최소 1년 이상인 내가 유일하게 3개월도 못 가 때려치운 회사가 있는데, 그곳의 가장 큰 특징이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본받고 싶은 점이 거의 없는 사람이 있는 회사.


배울 점 찾기가 꽤 힘들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거 어디서 배우기 힘들어. 나랑 일할 때 잘 배워 둬.”


그는 어떤 아날로그 기기 앞에 서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작동법을 알려주었다. 확실히 그 기기를 다루는 법은 그가 아니면 어디서 배우기 힘든 게 맞았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가 알려준 소중한 스킬은 단 한 번도 활용해 보지 못한 채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는 또 지각을 밥 먹듯 했다. 녹화가 2시면 2시 5분쯤 전화가 왔다.


“차가 막혀서 30분 정도 늦는다고 감독님들한테 말해 줘.”


모든 세팅을 끝내고 녹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출연자와 스태프들에게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짜증 섞인 한숨과 따가운 시선 속에서 30분을 견디는 일이 그와 일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그는 또 핑계를 잘 댔고, 자신이 할 일을 내게 떠맡겼다. 비효율적으로 일을 했고 자주 새벽까지 일했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내 감정이 폭발했던 그날은 방송사고가 난 후였다.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가선 안 될 자막이 들어갔고 이 일로 책임자에게 야단을 맞았다. 우리 팀이 실수를 했으니 혼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책임자 앞에서 나를 꾸짖었다. 부사수인 내가 사고 친 걸 사수로서 수습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책임자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경황이 없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사무실을 나오고 혼자 있게 되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억울해서 화가 났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그가 떠넘긴 일을 또 꾸역꾸역 했다.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녹화는 녹화였다. 깽판 치고 싶었지만 성실히 일했던 내 이미지를 깎아먹는 건 곧 죽어도 싫었다. 나는 철저히 그에게만 화를 내고 싶었다.


나는 퇴사 의사를 밝혔고 몇 주 후 이직하게 되었다. 그에게서 떠나 자유를 얻었을 때의 기분은 뭐랄까, 군더더기 없이 짜릿했다. 그리고 그를 떠나고 나자 비로소 배우게 되더라. ‘그런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 참된 교훈을 얻었다.


“저는 여기 (회사)분들이 좋아요.“


최근 직장동료가 내게 말했다. 사람들이 좋아서 출근할 맛이 난다는 그분께 말하고 싶다. 저도요.


역시 사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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