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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Oct 27. 2023

사회가 만든 괴물, 내향인의 삶

오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향인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나의 궁극적 삶의 목표는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와 쇼츠 영상 보며 낄낄거리기. 하지만 매일을 그렇게 살면 월 구독료 결제는 누가 해 주나. 결국 목표(=소파와 한 몸 되어 낄낄대기)를 위해 월요일이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출근한다.


집 밖을 나와 종종걸음을 하며 하품을 수시로 하고, 눈꺼풀의 약 20%는 영원히 걷히지 않을 심산이다. 게슴츠레 썩은 동태의 눈을 한 채로 경제활동을 촉진하며 살기를 택한 나는, 사회가 만든 괴물 내향인이 맞다. 책상 앞에 좀비처럼 걸터앉아 조용히 읊조린다. 아, 집에 가고 싶어.


오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향인.


집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실내의 시대가 될 것이다."
"실내 시대의 역설적 낭만은 한층 짙어졌고, 모태 같고 요람 같은 집의 위엄은 더욱 높아졌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책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에 나온 문장이 공감됐다. 집 안에서의 삶을 중시하는 나에게 집은 곧 요람이다. 


집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물론 나 또한 쓰레기장이 된 집안을 딱히 치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나 역시 집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이이므로 애정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집을 비우고 외출을 할 때면 내면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감돈다.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지만, 사람 구실을 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 모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집 밖을 나오면, 금세 집에 가고 싶다. 


높은 애정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게 맞는 삶일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쫓기듯 집 밖의 일과를 보내고 난 뒤 집에 틀어박혀 은둔자처럼 격리된 주말을 자처하는 이 삶을, 괜찮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자기 방을 떠나려 하지 않는

무기력의 시대


"앞으로는 인간의 모든 불행이 자기 방을 떠나려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이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바이러스보다는 무기력이요, 질병의 위험보다는 죽음과도 같은 권태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의 저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프랑스 철학자로 세계적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책에서 모험을 회피하는 삶, 실내에 머물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 스마트폰에 종속된 권태로운 삶의 예시를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화장실에 갈 때도 폰을 가지고 들어가는 나에게 저자는 일침을 가했다.


"무기력의 시대에 직면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당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에 매력을 느끼는가? 당신은 무기력에 익숙해져 있는가? 모험하지 않는 삶은 어떤 삶인가?"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한다.


"스마트폰은 일종의 영원한 잡념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화장실에 갈 때도 폰을 가지고 들어가는 나에게 저자는 일침을 가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을 때에는

균형 잡힌 삶을 떠올린다


"슬리퍼 차림의 영웅, 모험가, 특파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슬리퍼를 벗을 일 없는 삶은 구두나 스니커즈를 신고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만큼 흥미롭지는 않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안전한 실내에 있을 때의 나와 외부의 모험에 직면하는 나, 어느 쪽이 진짜 나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쪽이든 진짜 나였다. 


인간은 본래 다중적이고 모순적인 동물이므로, 한쪽으로 치우치면 권태로움을 느낀다. 경계를 넘나들며 안전과 위험을 번갈아 맛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놀아도 더 놀 수 있고, 영원히 놀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놀다 지치면 일이 하고 싶고, 일하다 지치면 놀고 싶다.


인간이 사는 이유를 저울에 빗대면 재밌다. 고유의 경험을 삶에 저울질하는 삶, 계속해서 수년 간 다양한 경험으로 무게감을 익혀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삶이 인간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안전한 실내에 있을 때의 나와 외부의 모험에 직면하는 나. 어쩌면 최근 전자에 무게를 과하게 실어왔던 게 아닐까? 무기력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던 건 그 때문인 것 같다.



마치며


"행복은 적어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싶은 확장의 행복, 반대로 창을 걸어 잠그고 싶은 수축의 행복. 탐험의 정신과 칩거의 정신이 지금처럼 치열하게 대립한 적은 없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영화 <오펜하이머>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한 선택은 결정하기까지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누군가 간단한 답을 원한다면 역사를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영화는 그들을 판단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들은 당시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이해하기 위함이죠."


밖으로 나가 도전이 가득한 모험을 즐기는 삶을 살 것인가, 집안에 나만의 성을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누릴 것인가?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을 읽으며 내게 던져진 그 질문들에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둘 중 무엇이 맞고 틀린가를 판단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나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눈감는 그 순간까지 삶의 균형을 잘 잡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문득 엄마가 자주 하던 익숙한 대사가 떠오른다.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나가서 뭐라도 좀 해!" 내 등짝에 압력을 가하며 샤우팅을 하던 우리 엄마는 알았을까? 생각보다 엄청난 통찰력을 품은 대사였다는 것을.



*참고: 파스칼 브뤼크네르,《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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