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다. 평일 오후에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니. 느긋하고 사치롭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스레드를 통해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을 비정기적으로 기록해 왔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누워서 잠들기 전에, 길을 걷다가 문득 스쳤던 파편화한 생각들. 짧게는 한 문장으로 그치기도 했다. 여과 없이 속으로 느끼는 것들을 쏟아내고 싶지만 브레이크가 걸린다. '이런 글을 쓰면 읽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도망쳤어. 내 속에 있는 그 의심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장태수(한석규)가 한 말이다. 프로파일러인 그는 어릴 적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딸 장하빈(채원빈)을 두고 끊임없이 의심했다. '내 딸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인 건 아닐까?' 그는 그 의심을 딸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가 없어 줄곧 괴로워했다.
나의 삶 곳곳에도 진실을 알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억지로 덮어둔 의심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의 부족한 점을 복기하고 개선해 나갈 의지보다는 내가 가진 능력을 과대포장하는 것.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서운했던 감정을 짜증과 분노로 표출하는 것.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부정적이고 악한 마음을 남몰래 품고 계산하는 것. 모두 내가 나약한 존재임을 드러내지 못해 생기는, 용기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 기간이 반년 넘게 지속됐다. 어느 날은 속으로 욕을 지껄이는 나를 인지하고는 가슴을 쳤다. 내면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내가 봐도 이해되지 않는 미성숙한 모습들, 옹졸한 모습에 거듭 실망하는 몇 개월을 보냈다.
글을 쓰면 좀 더 이성적인 내가 될 수 있다. '그때는 옳았고, 저때는 생각이 짧은 행동을 했구나.' 심적 불안에 놓였던 나를 돌아보며 객관화할 수 있다. 이런 건설적인 사고회로에 감성이 급발진하면 그건 또 그런대로 이렇게 받아들이게. '그 일에 관해서는 이성이고 뭐고, 힘들어서 찡찡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구나.' 아이가 울 때 안아주고 토닥여주는 것처럼 나에게 관대해진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일 년에 적어도 한두 번은 자신의 후진 모습을 꺼내 보일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나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는 경험을 줄이려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